프리미엄 고속버스 소식에서 빠진 것 중매媒 몸體 (Media)

프리미엄 고속버스 타보니…"집소파 누워 영화보며 고향 간다"

기존 고속버스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그리고 값비싼) 새 버스가 나왔다는 얘기다. 위 기사뿐 아니라, 정부에서 마련한 시승식 행사에 가본 기자들이 쓴 비슷한 내용의 체험기가 여러 매체에 올라왔다.

매체에 실리는 수많은 기사 아이템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런 기사는 대중매체의 눈높이가 무의식적으로 어디쯤에 맞춰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교통수단을 타기 어려운 계층에 대한 고려나 관심을 보인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사들에 나온 '프리미엄 고속버스'의 값(편도)을 기존 고속버스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부산

서울↔광주

일반

23,000

17,600

우등

34,200

26,100

프리미엄(예정)

44,400

33,900



새 버스 삯은 보통 고속버스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이런 차이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표를 예매할 때 값을 따져보아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넷에 따르면, 이 시승 행사에 나왔다고 하는 국토교통부 차관의 연봉은 1억1천만원 이상이다. 그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기사를 쓴 기자들의 연봉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들도 대체로 몇 만원의 차이가 크게 부담되지 않는 계층일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 내 이웃들 중 다수는 교통편을 선택할 때 새 버스의 안락함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삯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을 사람들이다.

물론 이 버스를 쉽게 타기 어려운 사람들도 새 버스의 특색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못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흥미를 가지지 않겠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못 사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낡은 집에서 보잘 것 없는 반찬으로 저녁밥을 때운 극빈 독거 노인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재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바람직한 일이다. 버스 등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력이 되고 안락함을 원하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을 줄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사들에 따르면 저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올 추석 때 27대가 투입되고, 내년에 대수와 노선을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새 버스는 기존 편성에 추가가 되는 형태가 되어야지, 수요와 상관없이 기존 노선을 줄이는 형태로 투입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새 버스를 타기 어려운 사람들은 버스를 시간 맞춰 이용하기가 곤란해지거나, 타더라도 혼잡도가 높아지거나, 아니면 무리하여 비싼 버스를 탈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누워 영화보며' 고향을 가도록 하기 위해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불편과 고통을 겪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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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대사 2016/06/16 10:57 # 삭제 답글

    고향에 '누워영화보며' 가는 고속버스가 투입되면 기존 고속버스 승객 중 일부를 흡수하겠지요. 그러면 기존 고속버스 승객이 줄어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노선을 유지하라는 것은 버스회사의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수요와 상관없이' 란 말씀을 붙였지만 문장 전체로 보면 오히려 '수요와 상관없이'(기존 고속버스 숭객이 줄어들건 말건) 기존 고속버스노선을 유지하라는 (제언을 빙자한) 압력 내지 일방적인 요구로 밖에는 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 그 '수요' 를 판단하는 것도 버스회사가 할 일이지 아직 운행하지도 않은 버스 가지고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 deulpul 2016/06/17 23:43 #

    밑에 다른 분들이 적절히 말씀해 주셨고, 그에 약간 덧붙입니다. "수요와 상관없이 기존 노선을 줄이는 형태로 투입되어서는 곤란하다"라고 한 것을 '수요가 있는데도'라고 읽지 않고 '수요가 없더라도'라고 읽는 것은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저렴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겪게 될 불편이므로, 수요가 없다면, 즉 그런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제정신을 가진 제가 당연히 "압력 내지 일방적인 요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버스 편성 및 운행이 버스회사의 경영적 판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계신 모양인데, 실제로는 정부(중앙 및 지방) 방침의 긴밀한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버스회사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제가 아니라 정부가 지금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당연한 일인 이유는 '노선여객자동차 운수사업'이 가진 공공성 때문이기도 하고, 버스회사들에 지급하는 막대한 지원금(매해 약 1조5천억원 규모)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버스회사에 대하여 강제 운행 '명령'이나 노선 변경 '명령'을 하기도 하고, 또 그래서 승객은 별로 없지만 꼭 필요한 노선을 다니는 버스들이 존재합니다. 막대한 돈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어수룩한 시장근본주의자라도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ㅇㅇ 2016/06/16 12:11 # 삭제 답글

    공공운송사업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과도한 간섭이라 생각하진 않네요. 누워서 영화보면서 가려면 좌석수는 필연적으로 줄어들고 버스 숫자를 증차하지 않고 저걸로 대체한다면 주요시간대에 저렴하게 버스노선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수요와 상관없이? 그 말 자체도 자의덕 수요판단이 들어간거 같은데 ㅎㅎ. 그리고 공공운수 수요 판단을 왜 버스회사가 일방적으로 할 일도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습니다.
  • Re 2016/06/16 15:24 # 삭제 답글

    고속버스 종종 타곤 하는데 지금도 우등 예닐곱대당 일반 하나 정도로 크게 치우쳐져 여간해선 우등을 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지요. 프리미엄 노선의 추가가 과연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겠으나 본문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 ariel 2016/06/16 23:49 # 삭제 답글

    맨 윗 댓글을 다신 분은 어떻게 그런 뜻으로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의 주된 겨냥이 되는 것은 고속버스 회사가 아니라 "대중매체의 눈높이"인 것 같습니다. 막말로 고속버스 회사가 무슨 사업 결정을 내리든 이해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집에서 인터넷 뉴스보던 A씨"가 아닌 대중매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더군다나 소비자의 선택권에 자칫하면 가해질 수도 있는 침해에 관해서는 아무도--심지어는 교통부 차관이나 언론까지도--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은 분명 정당해보이는데요. 이런 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가리켜 보통은 '시민'이라고 부르죠.
  • deulpul 2016/06/17 23:42 # 답글

    제가 드릴 말씀을 미리 해주신 ㅇㅇ, Re, ariel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G 2016/06/20 23:38 # 삭제 답글

    들풀님의 걱정이 그저 기우이길 바라봅니다..
  • deulpul 2016/06/23 19:30 #

    그런데 무엇을 상상하든... 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초현실적 현실에 살다 보니 무언가에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네요.
  • 2016/06/21 1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6/23 19: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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