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마초 들풀! 섞일雜 끓일湯 (Others)



장미꽃이다. 말라서 검붉게 되었지만, 한창일 때는 빨갛게 예뻤다. 이 사진은 2014년에 내가 딸애 방의 짐을 정리하면서 찍은 것이다.

"아빠, 피가 나."

어느 날 아침 나의 딸이 초경을 하고 당황해 할 때, 나는 애와 나 자신을 진정시키고 마트로 달려가서 생리대를 사왔다. 진열대 선반을 가득 채운 여러 가지 중에서 오버나이트처럼 큰 것들 말고 작고 예쁜 것을 샀다. 이 생리대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가르쳐 준 것도 나다. 딸은 첫날 서너 개를 썼다. 물론 불편하고 불안해서였을 것이다. 버린 것들을 보니 아주 약간씩 혈흔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좀 불편하겠지만 그렇게 자주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해줬다.

그날 저녁 나는 딸에게 장미꽃 다발을 사주었다. 바로 위에 있는 마른 장미다. 돈이 없어서 풍성한 다발로 사주지는 못했다. 생일도 아닌데 왜 그런 걸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딸에게 그 의미를 말해 주었다. 딸은 장미꽃을 침대 발치에 잘 모셔두었고, 꽃은 그렇게 말랐다. 이사를 하면서 이 꽃을 처리해야 할 때, 나는 거듭 아쉬워하다가 저 사진을 찍었다.

나는 지금 딸과 떨어져 사는데, 아직 어린 딸과 나는 종종 그애의 생리가 순조로운지, 많이 힘들지 않는지 자연스럽게 묻고 답한다.

같잖은 인간들로 인해 네 소중한 이야기를 이렇게 공개하게 되어서, 딸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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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의 생리에 특정하여 갖는 독특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으며, 기본 복지의 일환으로 저소득층에 생리대를 지원하는 방안을 지지하며, 그러나 똥, 오줌, 정액, 생리혈 같이 개인 위생과 관련한 사항들은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방식이 아니라 개인이 적절히 처리하는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인간의 몸이 배출한 똥, 오줌, 땀, 가래침, 콧물, 피, 귀지, 터럭, 토사물, 굳은살 껍데기 등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 취향을 갖고 있으며, 오로지 여자가 배출하였다는 이유로 그런 취향이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다.

어떤 캠페인이 '화끈하게 한풀이 한번 하겠다'라는 자위적 목적이 아니라 '인식을 바꾸겠다'라는 대외지향적 목적을 공개적으로 내걸었다면 그에 적합한 전략 전술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생리대에 붉은 칠을 해서 대로변에 내다 붙이는 것은 그런 고려가 없는 마인드의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반복하지만, 인간의 배출물 일반에 대한 거부감과 생리 및 그것이 상징하는 여성성에 대한 거부감을 혼동시킨 것이 이 우스꽝스러운 일의 가장 큰 삽질이다.

깔창 생리대는 근본적으로 사회 저소득층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다. 그렇게 고통을 겪는 소녀들이 군것질은 실컷 해가면서 단지 생리대 사기가 부끄러워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년들도 생리는 아니지만 또다른 형태로 빈곤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저소득층의 기본 생존을 보장하는 데에 무력하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긴급 지원도 좋지만 본질적으로 기본소득 보장 같은 방식을 통해 해소해 나갈 수 있는 문제다. 이것을 생리에 대한 인식의 문제('생리혈은 파란가요?')와 뒤섞은 것도 스펙터클한 혼동이 아닐 수 없다.

'서울 도심 벽에 붙은 생리대'는 이와 같은 생각들을 바탕으로 썼다. 며칠 동안 생각하고 난 뒤 쓴 글이다. 물론 글의 제목은 내가 붙인 것이 아니라 신문기사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노.소.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어디나 늘 일정 비율로 있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이 오로지 내가 남자의 성기를 달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보는 인간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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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을 쓴 즈음에, 주변 여성 몇 명에게 거리에 생리대를 붙인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20대, 30대가 각각 한 명이고 40대가 두 명이었다. 세 명은 구두로 물어보았고 한 명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물었다.

이들 중 세 명은 내가 블로그를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한 명은 알기는 알지만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질문을 할 때, 나는 나의 생각을 철저히 감추고 기사 내용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의견을 물었다. 메신저로는 기사 링크를 보내주고 물어보았다.

네 명 모두 부정적인 의견을 가졌다. 한 사람은 욕설에 가까운 심한 말을 했다. 구두 의견은 옮길 수 없고, 메신저 대화는 이랬다.




물론 이것은 전수조사도, 과학적 표본추출도 아니다. 그러나 심지어 일부 여성조차 이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성기를 달고 있고 따라서 무슨 생각을 하든 근본적으로 마초남(男)이요 여혐종자니 그렇다고 치자. 저 여성들은 뭔가? 내가 남자를 여자로 잘못 알고 있었나? 아니면 트랜스?

나로드니키녀(女)들은 이런 동료 여성들을 보고 개, 돼지 같은 민중이요 견인 대상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적지 않은 사람의 정서라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을 하려면 그런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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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을 받아왔고 이러한 차별이 종식되고 성평등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은 각각 명확한 사실과 명확한 당위다. 이러한 문제의식, 이러한 당위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개, 돼지가 아니라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공동체 구성원 중 일부가 다른 일부를 차별하고 억압하고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천부인권을 가진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일들의 일부에서 이러한 측면을 찾기 어렵다. 분노하고 탄원하고 고발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감추인 분노와 두려움이 양지로 나온 것은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백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추스려 나갈지를 생각해야 할 사고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 real change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풀이 한 판을 하는 듯하다. 어렵게 분노를 표출하고 나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분노하는 사람에게 가장 불행한 결과일 것이다.

얼마 전에 홍상수 감독이 뜨거운 화제가 됐다. 남 개인사를 놓고 찧고 까불기 좋아하는 매체들이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홍상수보다 조금 앞서 입길에 올랐던 홍성수가 더 화두였다.

그저 시류에 영합하려 입발린 소리나 맥락없이 늘어놓는, 이를테면 이런 남자 인간들, 또 입으로 내놓는 말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인권주의자요 자유주의자(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당연한 듯 일삼고 그에 대한 죄의식도 없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인권주의자요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인간)들 빼고, 한국 남자 중에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가장 세심하고 진취적인 사람 몇 명을 꼽으라면 홍성수 교수는 그 중 하나로 들어갈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여성의 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유는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텔레비전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에 등장한 딱 한 단어 때문이다.

'남자를 바꾸어야 한다'는 취지도 맥락도 제쳐놓고 단어 하나를 끄집어 내어, 자신들이 연대해야 할 최초의 남성이랄 수 있는 사람을, 그의 성기에 내재하던 본색이 드러난 위장마초남으로 몰고가는 행태를 보면, 지금 벌어지는 양상은 이성이나 합리나 무엇에 대한 희구나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한바탕 한풀이 이벤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장구한 기간 일방적 기득권을 누려왔고 심지어 친인척을 성폭행해도 무사히 넘어가는 세상에 살아왔던 견고한 상대와 그런 문화를 대상으로 하여 한풀이를 하는 일이 무엇을 성취하여 줄지 나는 모르겠다.

홍 교수가 이런 기막힌 조리돌림에 항변하지 않고 진지하게 사과하고 설명한 것은 그의 그릇됨[度量]을 보여준다. 그의 인식이나 사고의 정체성이나 도량 따위는 조리돌리머들에게는 어차피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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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의 선전부장관 괴벨스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이것이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누가 한 말이든, 선동가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좌우명이 아닐 수 없다. 맥락을 빼고 취지를 무시하고 한 문장, 한 단어로 트집잡기로 한다면, 이 세상 누구도 범죄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비슷한 말로 내가 직접 들은 것도 있다. 교통경찰관이 '자동차 바퀴 네 개가 땅에 닿아 있는 한, 딱지를 끊으려면 끊을 수 있다'라고 하더라.

등신같지만 아주 유효한 이런 기술은 원래 꼴보수나 전체주의자들의 전매특허였다. 합리적인 논증과 탄력적인 사고에 천착하는 반대쪽에서는 도저히 쪽팔려서 쓸 수 없는 기술이다. 보수 매체가 최장집의 발언을 짜깁기 왜곡하여 김일성주의자로 붉은 칠을 함으로써 꼴보수 세력의 공공의 적을 만든 것이나, 역시 보수 매체가 박원순의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앞동뒷동 자르고 되씹어뱉아서 김일성만세주의자를 만들어 버린 게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실제 기사):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대화는 이름을 불러야 시작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남북 대화를 시작하면서다.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1972년 7월4일, 기자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었다. “앞으로 북괴라는 용어 및 호칭, 김일성이라는 호칭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이 부장은 대답했다. “우리가 북한 괴뢰니 하고 북한에서는 남조선 괴뢰니 하는 용어는 다른 좋은 표현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이 시각 서울 성북 전매소 판매계 직원 이병진씨는 담배 가게에서 텔레비전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흥에 겨워 “잘한다. 이제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누가 잡아가겠느냐”고 말했다. 웬걸, 이씨는 바로 잡혀갔다. 담배 가게에 함께 있던 시민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담배 가게에 함께 있던', 앞뒤는 못 재고 신고 정신만 투철한 인간들이 지겹게 연출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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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남탕(혹은 여탕)에 들어가는 인간인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인간들이 있고 또 그런 인간들을 부추기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대화나 토론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외마디 비명만 뱉아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는 대신 범죄자를 만들 단어와 문장만 열심히 찾는다. 남(여)성기를 가진 사람에게 그런 성기를 가졌다고 욕하면, 욕 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나는 (자신이 남자이므로 대접받아야 하고 우월해야 한다고 믿는 인간들과 흡사하게) 이렇게 인지 발달이 남근기에서 멈춰버린 편협한 인간들을 설득하거나 이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런 인간들이 나를 꼴마초라고 한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꼴마초가 될 것이다. 이들이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나는 그들의 위대한 인식과는 독립된 나[我]이기 때문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는 시간 많고 정의감 넘치는 인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Macho, macho man! I gatta be a macho man! (주의: 병맛 혐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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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슈3花 2016/07/25 09:27 # 답글

    저에게는 참 좋은 글이었고, 이해가 쉬운 글이었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욱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상생하는 방법을 제시한.. 바람직한 사회의 지향을 담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혹은 그 손등에 나 있는 듬성듬성한 털)을 보고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더라고요. 그것을 재확인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살기 힘들다는 사회 구성원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사회 시스템도 문제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같잖은 인간들 덕분에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 deulpul 2016/08/14 23:57 #

    뒤늦게, 감사합니다!
  • G 2016/07/25 10:52 # 삭제 답글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글로 그들이 이해하고 달리 생각할 수 있다면 애시당초 문제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듭니다.
  • deulpul 2016/08/14 23:59 #

    그렇겠지요. 그래서 그런 기대는 원래 하지 않습니다. 개인 블로그의 정체성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할까요...
  • 회자정리 2016/07/26 00:25 # 삭제 답글

    역시 들풀님이네요.
    이 글은 그들을 이해시키려거나 납득시킬 목적이 아니고(불가능하니까 또는 관심없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세밀하게 정리하는 겸 입장을 좀 더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훌륭합니다. 꽤 오랫동안 들풀님 글을 RSS로 받아보는 입장에서 안심이 되네요.
    그리고 혹시 미국대선 글은 기약이 없는건지 아님 1편으로 마무리가 된건지 궁금하긴 하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deulpul 2016/08/15 00:02 #

    공화 민주 양당의 전당대회가 다 끝나버려서 늦어지긴 했습니다만, 완전정복 핵심체크로 꼭 정리해 보겠습니다!
  • 2016/07/31 22:3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6/08/15 00:03 #

    고O덕 변호사의 그 필수요소 이미지를 넣을까 고민하다, 너무 가벼워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습니다만, 정말 그런 심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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