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뭔가 썼다

"나는 오늘도 쓴다"라고 큰소리를 쳐 놓고, 오늘도 쓰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블로그를 하지 않는 블로거라는 게 있는가 했으면서도 나 자신이 블로그에 충실하지 못한다.

반성합니다.

최순실 때문에 블로그를 다시 살린 분도 있지만, 나는 꼭 그런 건 아니다. 온갖 기기묘묘한 영약들이 뿜어내는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 ** --- ** ---


지난 6월에 한 분이 이메일을 주셨다. (나의 이메일은 오른쪽 사이드 메뉴에 공개되어 있다.) 그동안 들풀넷을 보아온 분인데,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낯선 분을 만나 점심밥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헤어지기 전쯤에 내가 여쭤 보았다.

"블로그를 보아주신 독자로서, 앞으로 제게 바라는 게 있다면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이를테면 글 좀 짧게짧게 쓰라거나 자주자주 쓰라거나 하는 대답 같은 것을 기대했다. 혹은 어떤 인간들이 종종 댓글에 쓰는 것처럼 X선비질 좀 하지 말라거나 X랄쉰내 좀 풍기지 말라거나 하는 대답이 나와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 분은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유명해지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하하 웃으며 가볍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속으론 육중한 쇠뭉치가 마음 바닥에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콧날이 시큰했다.


--- ** --- ** ---


나를 만나시겠다는 이 분이 나를 젊고 예쁜 여성으로 오해한 것은 아닐까 싶어, 이메일로 약속을 잡을 때 미리 경고해 두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년남입니다."

1년 남짓 기간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가름을 하면 셋이다. 첫째, 오랜 친구들을 하나하나 만난다. 상당한 세월을 건너 변함없이 반가워해 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내가 참 지독하게 살았구나 하는 마음을 갖는다.

둘째, 일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다.

셋째, 이 블로그를 통해서만 나를 알던 분들을 만난다. (둘째와 중첩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홀랑 벗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꼴이다. 내가 비록 노출증 환자는 아니지만 더할 수 없이 기쁘고 반가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여기에 깎아 넣은 살과 뼈로서 나를 보아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겁도 없이 지금껏 이런 일을 벌여 왔던가 하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


--- ** --- ** ---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나를 아시는 분들은, 나의 첫인상이 글에서 풍기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말씀을 흔히 하신다. 벌써 여러 차례 그런 말을 들었다.

여러분은 지금 다중인격증 환자를 보고 계십... 블로그에선 지킬이지만 만나면 하이드란다. (거꾸로인가...)

하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쯤, 우연히 여길 알게 된 후배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야 말았다.

"아무개 오빠 블로그 가봐. 아주 다른 사람 같아!"

여보세요... 꼭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잖아...

는 농담이고, 여하튼 읽는 사람은 나름으로 필자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직접 만나게 되면 상상과 실물 사이의 괴리 때문에 까무라치도록 가볍게 놀라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 놀람이 기쁘고 반가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젊고 예쁜 여성은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전 중년남입니...


--- ** --- ** ---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조만간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고 하이드씨로서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뻘쭘하게 인사만 하고 나면 서먹서먹해질 테니까 뭔가 이야기거리도 마련해야겠지요. 생각은 오래 한 일이지만, 몸이 마음을 잘 안 따라주는 저로서는 계속 생각만 하다가는 10년 뒤에 인사드리게 될 것 같네요. 일단 이렇게 사전공지라도 해야 추진 동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밀린 답글도 곧 쏟아져 나옵니다...)

야! 여하튼 오늘은 뭔가 썼다!


Advertisement


 

덧글

  • 윤종대 2016/11/28 12:29 # 삭제 답글

    오! 혹시 팬 미팅? 그런 비스무레한 것을 한다는 의미인가요? 아내와 애들 데리고 저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생업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참 의미 있는 시간이 될 듯..
  • deulpul 2017/01/16 22:58 #

    말씀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ㅜㅜ
  • ice 2016/11/28 21:49 # 삭제 답글

    반가운- 감격스러운 소식이군요 ㅠㅠ 팬 미팅 / 독자와의 시간 / 하이드씨와의 인터뷰 무엇이든 가고 싶은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 deulpul 2017/01/16 22:59 #

    꼭 뵙게 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 Evermarquez 2016/12/03 15:51 # 삭제 답글

    유명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라니 팬으로서 저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가슴이 쿵 합니다. 너무 큰 부담은 필요없으실 듯. 건승을 기원합니다.
  • deulpul 2017/01/16 23:00 #

    네, 늘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