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대통령을 대하는 국회의원의 자세 때時 일事 (Issues)

한국 대통령은 취임할 때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헌법 제69조에 규정된 내용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렇게 국민 앞에서 엄숙히 선서하고 약속한 자가 헌법을 헌신짝처럼 짓밟고 국민을 돌보지 못했으며 거짓말을 일삼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런 대통령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랍시고 권부에 틀어앉아 있는 모양을 보는 마음은 참담하다.

실망, 짜증, 분노, 혐오, 증오… 박근혜를 대하는 국민 대다수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마음은 매우 복잡할 것이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대표였고 새누리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여전히 핵심 당원이다. 총선에서 표가 아쉬울 때마다 등장하여 표를 몰아줬고 허무맹랑한 이명박 정권이 야당에게 집권을 허용하여 권력을 뺏기는 일을 막아줬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일이다. 지금 박근혜는 새누리당 지지자를 포함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다. 대통령이 무자격임이 드러나고 범죄에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나는 마당에서 명색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국정 농단 사태의 적극적/소극적 원조자였거나 적어도 방관자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국민과 역사가 엄히 따져 물을 것이다. 그에 앞서 나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다. 국회의원이란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 운영을 감시하며 국민을 대표하여 법안을 만들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존재라는 매우 상식적인 원칙 말이다. 그리고 자존감 있고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상식적인 국회의원이라면 당 소속에 상관없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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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침몰했다. 대통령이 이 추문에 연루되었으리라는 의심에서 시작된 사태는, 그가 수사를 방해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을 흔들려 했고 국민을 상대로 거짓 해명까지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종국으로 치달았다.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이런 일이나 벌이는 인간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사기꾼(crook)이었다는 사실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 이 ‘국민’에는 의회 의원들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닉슨과 같은 당 소속인 공화당 의원들도 포함되었다.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은 압승을 거두었다. 공화당도 대거 약진했다. 대선과 같이 치러진 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12석을 늘렸다. 선거 결과 공화당 242, 민주당 192석이 되었다. 무소속 한 명까지 포함해 모두 435석 중 공화당이 55.6%를 차지하는 다수당이었다.

정원 100명인 상원은 민주당이 56석, 공화당이 42석을 차지하여 민주당이 다수당 위치를 지켰다. 그러나 여전히 공화당 의원 수는 적지 않았다.


닉슨에 대한 탄핵 추진 당시 의회 상황



하원

상원

공화당

242

42

민주당

192

56

무소속

1


435

100



닉슨을 탄핵하려는 의회(민주당)의 노력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닉슨의 구체적인 연루가 밝혀지기 전인 1973년 7월에, 백악관 참모들이 스캔들에 가담했음이 드러나면서 탄핵안(H.Res.513)이 발의되었다. 이 탄핵안은 하원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의혹과 불신을 파헤치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1973년 2월에 상원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정식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안(S.Res.60)은 77 대 0, 투표에 참가한 의원 전원이 찬성한 가운데 통과되었다. 공화당 의원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워터게이트에서 닉슨의 개입 혐의가 짙어지고 닉슨이 특별검사를 해임함으로써 법무장관 등이 함께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의회는 닉슨 탄핵을 위한 검토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74년 2월 6일, 미국 하원에서는 법사위원회가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및 탄핵 검토와 관련한 전권을 갖도록 하는 안(H.Res.803)이 발의되었다. 표결 결과는 410 대 4였다. 민주당-공화당을 통틀어 단 4명의 의원만이 반대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 1974년 2월 7일자. 하원의 표결 결과가 나와 있다.


이 표결을 앞두고 당시 하원 법사위원장이었던 피터 로디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든, 우리는 국민 절대 다수와 그들의 아이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도록 모든 주의를 기울여 철저히 조사함으로써 품위와 명예를 지켜야 한다. “그래, 이게 옳은 길이야. 다른 방법은 없어”라고 말이다."

법사위원회는 5개월 간의 조사를 거쳐 닉슨에 대한 탄핵안을 만들어 냈다. 각각의 혐의에 따라 작성된 세 가지 문건이 사흘에 걸쳐 차례로 나왔다. 첫째는 수사 방해 혐의, 둘째는 권력 남용, 셋째는 국회 모독이었다. 권력 남용 부분에서는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문구가 분명하게 박혀 있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각각의 문건의 통과 여부에 대해 투표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모두 찬성했으며, 공화당 의원들은 각각의 문건에 대해 찬반 뜻을 달리 했다. (결과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공화당 소속 10명은 세 문건에 모두 반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닉슨의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존재했던 셈이다.

법사위의 탄핵안이 완성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7월 24일, 닉슨 측이 그동안 감추어 왔던 녹음 테이프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떨어졌다. 이렇게 공개된 테이프에서는 닉슨이 수사를 방해하려고 한 결정적인 증거, 이른바 스모킹 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대통령이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 왔음이 입증되자, 그때까지 탄핵에 주저하던 공화당 의원들마저 돌아섰다.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공화당 소속 의원 10명은 모두 탄핵이 발의될 경우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범죄에 연루된 부정직한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 이것은 당파성을 넘어서 그야말로 미국의 자존심, 미국 국민의 명예를 지키는 문제가 되었다.

상하 양원이 모여 진행하는 탄핵 표결이 다가오자 닉슨 측근 의원 몇몇이 백악관으로 달려갔다. 공화당이 42명인 상원에서 닉슨을 지지하여 탄핵 반대표를 던질 의원이 15명도 채 되지 않으리라는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이틀 뒤인 8월 9일 닉슨은 사임을 발표했다. 의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는 불명예가 벌어지기 직전에 제 발로 백악관을 떠남으로써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열흘 정도 지난 8월 20일에 하원은 법사위가 만든 탄핵안(H.Rept. 93-1305)을 정식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것도 표결에 붙였는데(H.Res.1333), 결과는 412 대 3 이었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과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는 것은 대통령은 범죄를 저질러도 좋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부정직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는 것은 대통령은 부정직하고 거짓말을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이 탄핵을 원하는데도 탄핵에 반대한다는 것은 국민의 뜻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우리가 워터게이트와 닉슨과 당시 의원들의 행동을 역사로 기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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