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우상화 때時 일事 (Issues)

1월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며 광역 행보를 펼치고 있다. 그를 대하는 국민의 마음을 투박하게 셋으로 간추리자면 ① 무조건적인 추앙, ② 관망-유보 혹은 무신경, ③ 비판이나 혐오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앙'에 무조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반기문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가 무엇을 해 왔나'와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반기문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하고 또 거의 유일한 이유는 그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런 자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외국 언론은 '반기문이 유엔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한국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다.(1)

'지지'라는 말 대신 '추앙'이라고 표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추앙 자체가 무조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건부 지지나 비판적 지지라는 말은 있어도, 조건부 추앙이라는 말은 잘 성립하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지지는 추앙이라는 말로 더 잘 표현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또 한 가지 말이 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반기문 우상화'라는 말이다.

우상화란 우상을 만든다는 뜻이고, 우상이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우상화하는 것은 비유적으로 수긍할 수 있지만, 선출직 공직자가 되겠다는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것은 썩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정치인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 어린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도 잘못할 때 비판할 수 있다.

'반기문 우상화'의 산실로 따가운 비판을 받은 곳은 그의 고향인 충북 음성이다. 이 곳에는 진작에 사라진 반기문의 생가를 복원한 집이 있고, 그를 배었을 때 꾸었다는 태몽을 벽에 적고 그 상상도를 그려넣은 기념관이 있으며, 동상이 서 있는 널찍한 기념 단지가 있다(외국 언론은 '반기문 complex'로 표현한다). 시가지에는 크고작은 반기문 조형물이 서 있다.




우상화 논란이 일자 지난 9월에 음성군은 반기문 동상 등을 철거했다고 한다. 사실 음성군이 반기문 단지를 조성하고 관련 사업을 벌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추앙이나 숭배의 차원이라기보다 지역 마케팅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지자체들은 내세울 것이 조금만 있어도 이를 지역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그 덕분에 전국에서 별별 아가씨 선발대회가 다 열리는 판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일부 국민이 가진 '마음 속의 우상화'이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허황된 말을 믿는 국민에게 반기문은 동상이 있든 없든 우상이다. 우상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시궁창 속에 들어있는 발이 썩어나가도 달콤한 손가락만 빨며 이를 잊도록 하는 게 우상의 역할이다.

어느 때보다도 어이없고 실망스러운 현실이 낱낱이 드러나 있는 것이 지금의 엄혹한 현실이다. 한편 국가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개조할 좋은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포장지에 속지 않는 것은 어느 때나 중요한 일이지만, 국가의 기틀과 기풍을 뿌리부터 다시 다져야 할 이 개혁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아래는 이미 꽤 알려진 <워싱턴 포스트>의 반기문 고향 방문기이다. 작년 8월에 나온 기사다. 한국의 '반기문 우상화'가 외부에는 어떻게 비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기사에 나오지 않고 참고로 넣은 사진에는 출처를 달았다.


반기문 대선 출마설에 들뜨는 고향

[한국 음성] by Anna Fifield (2016년 8월 15일)

(충북) 음성이 반기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흡사하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강도를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울 남쪽의 한적한 시골인 이곳에 열차로 도착하면 다음과 같이 쓰인 대문짝만한 현수막이 방문객을 맞는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역입니다."


사진: 나무위키


만일 자동차로 도착한다면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한 손엔 유엔이라고 쓰인 가방, 다른 손엔 글자 그대로 세계를 들고 있는 반기문의 큰머리 동상에서 우회전하면 '반기문 거리'를 지나게 되고, '반기문 플라자'를 거쳐 읍내 중심부에 이른다. 이곳에는 반기문이 웃고 있는 커다란 광고판이 있고, 곧 열릴 태권도대회를 홍보하는 현수막도 있다. 이 대회는 '반기문컵' 대회다.




우회전을 하지 않고 직진하게 되면 반기문 생가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그가 살았던 집이 복원되어 있는데, 그 문 하나에는 "반기문이 태어난 방"이라고 씌어 있다.

게다가 반기문의 일생을 늘어놓은 전시관도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세계 평화에 새로운 장을 썼다." 반기문이 말했다는 명언 19개를 모아둔 팜플렛도 배포한다. (14번은 "겸손한 것이 미덕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이것은 남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북한을 방문하여 초대 주석 김일성을 찬양하는 기념관과 동상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휴전선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여전히 북한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쇠락한 촌락이 이런 일을 벌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인 반기문이 여기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활용하기 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 온화한 성품의 외교관이 대통령으로 나설 것을 모색함에 따라, 반기문 대잔치(Banstravaganza <- extravaganza로 만든 말)는 음성에게 유례 없는 돈벌이가 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2016년) 12월에 끝난다. 한국 대통령 선거는 그 1년 뒤에 치러진다. 한국 국내 정치는 혼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을 두드러진 보수파 후보는 없으며, 야당은 이전투구중이다.

반기문과 박근혜는 사무총장과 대통령으로서 다자간 회의가 열릴 때마다 만났다. 특히 2016년 초에는 뉴욕에서 오랜 시간 만났는데, 한국 언론은 두 사람이 대권 계획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본다.

올해(2016년) 72세인 반기문은 5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회합에서 '유엔의 임기가 끝난 뒤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의심을 부채질했다. 반기문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침묵하던 행태를 깨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년 1월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국 국민이 된다. 바로 그 때 나는 한국 국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결정할 것이다."

한국 정치 분석가들은 반기문이 대선에 나서면 거의 확실하게 승리할 것으로 점친다. 지명도와 명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를 잘 하는 한 인사는, 반기문의 대선 출마는 개인적 야심에서가 아니라 채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2013년부터 유엔 대사를 지냈으며 그 뒤 반기문의 측근이 된 김숙은 "그는 한국과 그 국민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은 그가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기문은 정치가가 아니며, 대중을 열광시키는 성격을 가지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기문이 유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남이 싫어하는 말이나 일을 하지 않은 덕이 크다. 유엔에서의 성적표도 별로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곳 음성에서 그는 동네 영웅이다.

이 동네 철도역의 부역장 양만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단하다. 외무부장관이었으며 유엔에서 멋진 일을 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음성 군민은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반기문 기념관을 관리하는 우춘자 씨는, 반기문이 5월 (한국을 방문하여) 연설한 이래 생가와 기념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두 배로 늘어 주말이면 5백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방문자들은 지난 번 반기문이 찾아와서 앉았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반기문컵 영어 말하기 대회나 반기문컵 마라톤 대회에 대해 알아볼 수 있으며, "사랑해요, 반기문"이라는 쪽지들이 붙은 게시판에 메시지를 적어 붙여놓을 수도 있다.

우씨는 "반기문이 대통령에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음성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지만, 많은 사람이 세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을 보러 온다고 생각한다."

음성군수 이필용은 반기문 생가가 젊은이들이 그의 뒤를 따르도록 고무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군수의 명함에도 "반기문의 고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그의 사무실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어린이들이 큰 꿈을 갖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곳이 개인숭배의 양상을 띤 것에 대해 질문하자, 이 군수는 북한 상황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곳을 조성할 때는 그가 대통령으로 나선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이곳에는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다"라고 말했다.

반기문의 참모 한 사람은 그가 이렇게 숭배 대상이 되는 데 대해 반기문 자신은 "불편해한다"라고 말했으며, 그러나 지방정부가 결정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기문이 뭐라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주중의 어느 날 이곳을 찾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다. 울산에서 가족과 함께 온 박경하 씨는 반기문이 그냥 은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건강과 관련해 걱정이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잘 할 것으로 믿는다."

그녀의 딸인 강지연(14) 양은 이곳을 즐기는 중이다. 강 양은 "재밌어요.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 강현석(16) 군은 약간 회의적이다. "학교에서 반기문에 대해 읽은 적도 있고 그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잘 알긴 하지만, 여기 오니 좀 낯선 느낌이 나네요."




(1) 영국 매체 텔레그레프 기사에 실린 이 말은 사실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가 한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다.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주영 및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가 유엔 같은 데서 어떤 성적을 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뽑혔다는 사실 자체를 성공으로 볼 뿐, 그가 직면하고 있는 비판 따위는 기꺼이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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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rthShore 2017/01/18 02:40 # 삭제 답글

    반기문 현상은 실로 우려할 만합니다 (pun intended). 스스로 다짐한 '정치 교체'의 대상 중 하나가 자신임을 모르고 있는 데서 한 비극을 발견합니다. 반 씨가 귀국 순간부터 보여주는 온갖 코스프레와 전시성 행태는, 지난 수십년 간 되풀이되어 온 구태정치의 전형이자 재현이었죠. 바로 그런 구태와 위선과 거짓을 걷어내자는 게 촛불 민심에도 들어 있었다고 믿습니다. 반기문은 가면만 바꿔 쓴 이명박근혜이자,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노스탤지어에 젖어 있는 일부 유권자들의 대변자로 보입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저 '일부 유권자'의 '일부'가, 자칫하면 과반수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 유권자 전반의 낮은 '선거 아이큐'입니다. 낮다는 단정은 지난 선거 결과에 근거를 둔 것이고요.
  • deulpul 2017/02/15 22:09 #

    반기문은 결국 출마를 접었지만 반기문 현상의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되었지요.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반기문을 '세계 대통령'이라는 황당한 말로 치장하며 국민을 기만해 온 탓이 크고, 대선 시기에 보수의 대안을 갖지 못한 정세 상황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유권자 과반이 뭔가를 선택한다면, 그러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 측은 자신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왔나부터 돌이켜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맞상대해야 할 이데올로기나 경향성이 상수에 가까울 정도로 고착화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다행히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다양한 원인과 방식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바처구처 2017/01/21 16:40 # 삭제 답글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씨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습니다.​​마침 초상집 같은 한국 정치 분위기에 이 나라를 이끌 혜성처럼 나타난 참신한 인물이 아닌가 내심 기대 했었죠.그러나 그런 기대는 물거품 같은 꿈이 되고 있습니다.​저는 그런 반기문씨를 "간쓸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임기를 마친 유엔 총장으로 집에 앉아만 있어도5천만 국민의 추앙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 귀국 후 행보를 보십시오.​무슨 대통령을 하겠다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이 정당 저 정당 눈치 보는 꼴이 무슨 소신이 있고 정치 철학이 있어 보이는지!!
  • deulpul 2017/02/15 22:12 #

    대통령은 이해타산에 밝기보다 소신에 충실하고 자신의 정치 철학을 자신의 언어로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 marquez 2017/01/22 09:30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그런데 모바일보전으로 보는 것이 불편해졌어요. 전과 달리 글이 폰 넓이 범위를 넘어가는데요~ 이런..
  • deulpul 2017/02/16 11:13 #

    저는 괜찮게 나오는데, 어떤 접속 환경이신지 궁금하네요. 테이블 태그를 사용한 표에서 간혹 그런 문제가 보이긴 합니다. 글 보시기에 불편할 정도로 문제가 계속되면, 조금 더 자세히 현상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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