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규범의 자해적 구현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아침에 전철역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플랫폼 창쪽 선반에 놓여 있는 커피나 캔음료, 바나나우유 따위 빈 용기다. 누군가가 먹고 남겨두고 갔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넣기도 귀찮았던 모양이다. 본인은 상콤하고 달콤하게 먹었는지 몰라도 뒤에 남긴 쓰레기는 뭇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어떻게 생긴 화상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지 늘 궁금하다.


내용물이 없는 빈 종이컵이다. 이 컵으로부터 쓰레기통까지는 정확히 8걸음 거리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그 빈 용기의 주인을 저주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보기에 거슬리더라도 내가 나서서 치워주고 싶지는 않다. 쓰레기를 버려두고 가더라도 누군가가 치워준다면 그 인간들은 계속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처먹고 아무 데나 버리고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다른 인간들이 끊임없이 챙겨준다는 것은 옳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이런 내 생각은 좀 흔들렸다. 창쪽 선반에는 당연하다는 듯 빈 컵 몇 개가 놓여 있어서, 나로 하여금 어떤 인간이 또 저런 쓰레기를 남기고 갔을까 하고 명상케 했다. 그런데 한 중년남이 계단을 올라오더니 선반에 놓여 있는 컵들을 주워가는 것이다. 차림으로 보아 역 직원이나 미화원은 아니다. 그는 수거한 용기들을 쓰레기통에 툭 던져넣고 차가 들어오자 열차를 탔다. 그런 일을 하는 모양이 전혀 망설임이 없고 무척 자연스러워서,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신선한 모습이었다. 나는 분노와 저주만 하고 있었으나 그는 행동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이웃과 공동체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고, 그는 문제를 싹싹 훑어 없애버렸다. 나는 이를테면 흔한 사람이지만 그는 드문 사람이다. 그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문제를 느꼈을 것이고 나처럼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나보다 훨씬 진화한 개체인 셈이다.

하지만 내가 그이처럼 진화의 길을 밟아갈 것인지는 자신이 없다. 치우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역시 이 세상이 버리는 인간과 치우는 인간으로 고착화되는 일은 견딜 수 없다. 차라리 아무도 손대지 않아 창문 선반에 온갖 쓰레기가 잔뜩 쌓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버리는 인간들도 좀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공공 규범의 자해적 구현이랄까.

그럴 경우,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마저 그런 쓰레기 같은 현실을 함께 체험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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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투기 쓰레기 안 치우는 오산시… 쓰레기와의 전쟁

경기도 오산시는 이번 겨울 몇 달 동안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 아예 안 가져간 것은 아니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놓지 않은 쓰레기를 거둬가지 않았다. 그런 무단 투기가 하도 많아서 채택한 고육책이었다. 그 결과, 도심 곳곳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사진: 연합뉴스(via 위 링크)


거리에 쓰레기더미가 여기저기 형성되었고 통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쌓이는 곳도 많았다고 한다. 보기 안 좋은 것은 물론이고 냄새가 심해 주민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무단 투기 문제가 오죽 심각했으면 이런 자해적 방법을 선택했을까 싶다.

당장 견디기 어려우니 불만도 컸다. 시청에는 항의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고 한다. 짐작컨대 이렇게 항의 전화를 한 사람들은 정당하게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안 그런 철면피들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들이 당하는 불편은 분명 불공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전처럼 비종량제 쓰레기를 함께 수거해 가더라도 선량한 사람들은 여전히 피해를 본다. 시 예산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낭비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인간들은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이래저래 멀쩡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규범의 자해적 구현 효과는 컸다. 오산시의 종량제 봉투 사용률은 60%에서 90%로 올랐다. 얌체 인간들도 악취와 쓰레기 더미는 못 견디겠던 모양이다.

이러한 방법이 먹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간이란 게 한갓 그런 존재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공공 규범은 (적어도 당장은) 구현되었다. 남의 쓰레기까지 친절하게 처리해주는 존재가 등장하고, 그로 인해 버리는 자와 줍는 자가 양분되고 고착되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뭔가 통쾌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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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도리 2017/02/16 13:34 # 답글

    특히나 미처 다 먹지도 않은 음료수병이나 얼음이 녹아 물이 고여있는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커피컵을 볼때는 더 화가 납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액체가흘러나와서 다른 쓰레기와 범벅이 되어 치우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할테니까요. 어떤 인간들은 한갓 그런 존재인 것이겠죠.
  • G 2017/02/16 16:00 # 삭제 답글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공공재를 바라본다면, 저렇게 되는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공재의 발전이 개인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세금을 잘 납부한다던가 아껴쓴다던가..) 가장 합리적인 결과는 개인의 실천 없이(타인의 실천을 통해) 공공재가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deulpul 의 선택 또한 합리적 입니다. '공공 규범의 자해적 구현' 이라니 멋지고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덜 합리적일때 공공재의 발전이 있지 않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시민의식이라 부를만한 것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deulpul 님이 잘못된 선택 혹은 생각을 하셨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저는 한번 실천 해봐야겠다 생각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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