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하다 쓰러진 권영해 장군 때時 일事 (Issues)

권영해 장군이 쓰러졌다.

칼을 빼들고 적장과 맞서 싸우다 쓰러진 게 아니다. 불의불충한 세력을 응징하다 쓰러진 것도 아니다. 부패하고 무능하여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선출직 공직자를 지키겠다고 밥을 안 먹다가 쓰러졌다.

일국의 장군 출신으로서, 그리고 한때 수십만 대군을 호령하던 국방장관으로서 이렇게 조잡하고 불명예스럽게 쓰러지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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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으로 80살인 권영해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대표다. 어용 시위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고 단식을 벌인 것도 이런 자격으로서다.




권영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별 둘을 달고 예편한 뒤, 야합을 통해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김영삼이 잘 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인 군 사조직 '하나회' 정리 때 국방장관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 일을 주도한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권영해 본인은 하나회 숙청이 처음부터 김영삼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한다.


권(영해) 전 장관은 “나를 하나회 숙정의 주역으로 원수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역할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면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계획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내 직책상 한 것이고 피해받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었다”고 말했다.


권영해의 국방장관 재직은 길지 않았다. 1993년 2월에 임명되어 12월에 경질됐다. 국방 비리와 관련한 의혹들 때문이었다.

일차는 무기현대화사업, 이른바 율곡사업이었다. 차관 재직 때 율곡사업 업무를 담당한 그는, 이 사업과 관련한 총체적 비리가 드러나자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동생이 업체로부터 5천만원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적발되었다. 권영해는 사표를 냈지만 김영삼은 이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는 그해 하반기에 터진 포탄도입 사기 사건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비리 의혹 연루설이 제기되자 장관에서 경질되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직후 포탄도입 사기의 은폐 혐의를 받아, 출국 금지된 채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조사 결과는 무혐의였다.

국방장관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권영해 장군은 난데없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되었다. 권투협회나 펜싱협회라면 모를까, 장군과 야구는 워낙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어서 낙하산 주장이 나왔다. 본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야구를 하던 장군은 1994년 12월, 국방장관을 떠난 지 딱 1년 만에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으로 불려갔다. 한 신문은 '현 정권(김영삼 정부)과 끈끈한 유대가 있지만 율곡사업에서 구설에 얽혀 있어서 도덕성에 대한 의문이 각계에서 일고 있다'평했다.

장군이 떠나는 바람에 공석이 된 야구위원회는 검사가 차지했다. 당시 전 법무장관이었던 법꾸라지 김기춘이었다. 권력자들은 의외로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벌인 비리에 대해 수사가 진행되던 도중, 권영해 안기부장이 호텔에서 김현철과 은밀히 만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의 수사를 회피하기 위한 공작을 모의했으리라는 의혹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공작쯤은 애교였다는 점이 그 뒤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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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을 지켜야 한다며 단식을 하다 쓰러진 '탄기국' 대표 권영해 장군. 그러나 그가 대중 앞에서 쓰러져 실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김영삼의 뒤를 이을 대통령을 뽑는 제15대 대선에서는 야당에서 나온 김대중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기존 관료와 여권, 보수 집단에게 극단적 기피 인물이었다. 김대중이 당선되고 난 뒤, 안기부를 비롯한 구 정권 핵심부에서 북한을 이용한 이른바 북풍을 일으켜 김대중을 떨어뜨리려고 공작을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안기부장으로서 이러한 공작을 지휘한 권영해가 조사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한 권영해의 대응은 자해였다. 검찰의 수사를 받던 권 장군은 연필 깎는 칼로 배를 그었다. 행각이 어이없어서 '소심한 자해냐 자살 기도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검찰은 '여론의 동정을 사기 위해 급소를 피해 자살 흉내만 낸 정치쇼'라고 했다.




당시 사건을 보여주는 동아일보의 만평(아래)은 강렬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 20년 전과 오늘날의 장면이 놀랍도록 똑같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비 애국 세력은 거짓 안보를 팔아서 개혁을 가로막고 기득권을 연명한다.




국가 정보조직을 동원하여 북풍 공작을 일으킴으로써 국민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떨어뜨리려 한 권영해는 자해를 벌이며 저항했지만 처벌을 면하지는 못했다. 결기와는 달리 구질구질하게 항소를 하며 법정 투쟁도 벌였으나, 1심, 2심, 대법원까지 징역 5년을 일관되게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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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를 끔찍이 생각하는 척 하는 권영해 장군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적도 있다. 한국인이 북경에서 북한인을 접촉해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여달라고 요청한 일을 보고받고도 깔아뭉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1999년에는 김영삼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할 때 외국 무기상으로부터 받은 21억원을 국고로 넣지 않고 비자금으로 조성해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1997년 대선 때 안기부 직원을 시켜 한국중공업으로부터 2억원을 뜯어내어 대선자금으로 한나라당에 건네준 사실도 밝혀졌다. 안기부 직원들을 '귀향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전국에 풀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을 펴도록 하기도 했다. 안기부 자금 10억원을 빼돌려 동생에게 주는 선심도 썼다.

권영해 장군은 이런저런 비리와 정치공작으로 인해 모두 7년 8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크릿파일 국정원> 저자인 김당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 원세훈이 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지원하고 도청과 미행을 밥먹듯 하며 국가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건이 불거졌을 때, "원세훈의 악명도 권영해에게는 못 당한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전직 안기부장, 대한민국 법원에서 개인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정원장이 보수의 아이콘 행세를 하는 것은 '경계'를 알 수 없는 한국 보수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나는 인간적인 연민 때문에, 80세 노쇠한 육체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쓰러지는 모양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비 보수의 아이콘이 대표하고 있고 몸소 구현해 온 구태와 적폐는 21세기 대명천지에 이 건강하고 뜻 높은 시민들의 눈 앞에서 쓰러져 나동그라지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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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연필소년 2017/03/10 18:33 # 삭제 답글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었군요. 흠냐..
  • deulpul 2017/04/22 14:11 #

    저도 아주 오랜만에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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