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늬우스 01: 토론, 성형미인, 심상정 때時 일事 (Issues)



1.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토론

두 차례 대선 토론이 열렸다. 첫 번째인 4월13일의 SBS 토론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했고, 두 번째인 4월19일의 KBS 토론은 그동안의 틀을 깬다며 '서서 하는' 방식으로 했다.

그동안의 한국 대선 토론은 너무 답답했다. 할 말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분 단위,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후보자들을 압박했고, 사회자가 끊임없이 끼어들며 네가 물어라, 네가 대답해라 하고 교통정리를 해주곤 했다. 이야기할 주제도 시시콜콜하게 다 정해주고 그 이야기만 하도록 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란 누가 손을 잡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제 코도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선 토론이 이렇게 극단적 형식주의로 흐르게 된 것은 1) 토론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주최측의 명분과 2) 토론에 익숙하지 않고 홍보에 바쁜 후보자들이 효율적인 토론을 전개하지 못한다는 사정이 병합된 탓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론은 주최측이 짜놓은 틀에 맞춰 제 키를 늘리고 줄여야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 침대에 올라 짜맞춰진 모습을 보여주는 후보자들로부터 진면목을 보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KBS 토론 방식은 신선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토론 이후 제기된 비판들은 그 형식이 낯설다는 점, 또 과거와는 달리 후보들의 진면목이 생생히 드러나는 데 대한 (특히 지지자들의) 불편함 같은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홍보로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서서 하는'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럴 바에야 그게 꼭 필요한지 재고해볼 일이다.

아울러 주최측이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유권자들은 토론 사회자의 하나마나한 이야기, 투표가 중요하다거나 현명한 선택을 하라거나 하는 지청구를 들으려고 TV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시간을 재고 줄여야 할 것은 사회자의 군소리다. 그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후보자들 이야기는 못 듣게 되기 때문이다.


2. 문재인은 여성차별주의자?

문재인이 19일 춘천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여성차별주의적인, 혹은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자연미인" 발언, "불편했을 여성분께 사과"
문재인 “북한응원단 자연미인이었는데…” 외모 발언 구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양자가 환담(歡談, 정답고 즐겁게 서로 이야기함)한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 옛날 부산아시안게임도 대회 직전까지 입장권이 안 팔려서 완전 초상집 같았는데 극적으로 북한응원단이 내려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고 흑자 대회가 됐다. 국민들도 처음으로 북한응원단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응원단 자체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남북관계에도 기여를 많이 했다.

최문순: 이번에도 미녀응원단을 보내달라고 했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다음 정부에는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길 바란다.

문재인: 그땐 북한응원단이 완전 자연미인이라고 했는데, 그 뒤에 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성형수술도 하고 그런다고 하더라.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위 두 신문을 예로 들면, <경향신문>은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여성차별적 발상이다"라고 했고 <한겨레>는 "여성을 미모가 우선인 존재로 대상화하는 발언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라고 썼다. 나는 문재인의 말에서 대체 어디가 여성차별적이고 어디가 미모지상주의적인지 모르겠다.

문재인의 말은 사실의 서술, 혹은 그러한 서술의 인용이다. 여기에 여성차별이 어디 있고 미모지상이 어디 있는가. 여성은 설거지나 전담해야 한다는 개소리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재인의 발언에서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성형만 언급하면 모두 죽일 놈이 되는가?

문재인의 말 중 '자연미인'이라는 말을 문제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이든 성형이든 그냥 미인은 미인으로 봐달라는 말인가? 그런 사고방식에는 미모지상적 마인드가 들어있지 않은가? 혹은 성형수술에 대한 폄하가 들어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재인의 발언은 당연히 북한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 것이고, 따라서 "요즘은 용감하게 성형수술도 하고 개방적이어서 아주 좋다"라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은가? 성형수술을 말하기만 하면 성형수술 폄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성형수술을 폄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왜곡된 PC에 도취되어 논리도 상식도 내팽개치고 목소리만 높이는 현상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맥락도 없이 덮어놓고 항의해도 표가 걸려 있는 탓에 사과부터 해야 하는 후보 노릇,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정작 문제는 최문순의 말이다. 그는 '(보통 외모, 혹은 추녀가 아니라) 미녀 응원단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한 것'이고 '여성을 미모가 우선인 존재로 대상화한 것'이다. 그런데도 위 두 신문을 비롯한 언론, 그리고 외눈박이 비평가들은 정작 문제로 삼을 발언은 외면하고 엉뚱하게 문재인에게 어거지 혐의를 덧씌웠다. 왜일까. 대선 주자는 무조건 까야 제맛(혹은 흥행)이란 심사가 아니라면, 그 같은 기행이 왜 나왔는지 알기 어렵다.


3. 정의당 속의 홍준표

두 번째 토론에서 심상정이 문재인을 비판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심상정 소속 정당인 정의당 당원 일부도 포함된다고 한다. 이 당의 구성과 연원을 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그 사고방식의 반민주성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상정은 문재인을 실드쳐 주려고 대선에 출마한 사람이 아니다. 심상정은 문재인과 똑같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공약을 들고 나와 애쓰는 대선 후보다. 후보자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지 말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2중대로 자빠져 있으라는 것과 똑같다.

별별 현실적인 이유로 문재인을 지지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을 지지하면서도 정의당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혹은 문재인보다 좀더 진보적인 지향을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지향을 가진 사람이, 자기와 정파성이 부분적으로 겹치는 유력한 차선 후보에게 해야 할 일은 진보적 아젠다를 계속 요구하고 심어넣는 것이다. 그가 우향우를 하거나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꼴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선거가 어떻게 초래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한다. 이 선거는 바로 얼마 전까지 몇 달 동안 국민이 찬바람을 뚫고 거리에 나서 싸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촛불 혁명의 적폐 청산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주판알 튕기기와 그로 인한 회색질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문이든 안이든 다음에 들어설 정부에 대해 개혁의 대의와 그를 실천할 구체적 방안을 강제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다. 지난 겨울 내내 갈팡질팡하는 정치인들을 끌어왔던 것이 촛불이었듯이 말이다.

두 번의 토론에서 홍준표는 자신을 비판하는 보수 후보 유승민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주적은 저쪽이라니까... 왜 나를 까고 그래."

문재인을 비판하는 심상정에게 '적은 저쪽인데 왜 아군을 까느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홍준표의 좌측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이 홍준표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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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르미짱 2017/04/23 13:30 # 삭제 답글

    문 지지자들이 심상정을 비판하는 데는 물론 '같은 편끼리 왜 그래'라는 서운함도 있겠지만 선거 때마다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는 정의당의 대통령 후보가 그 노무현 정신을 승계하는 이에게 참여정부 실패하지 않았냐, 실패 책임 져라-라고 말한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 deulpul 2017/04/23 17:27 #

    심상정은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노무현 당시와 이후에 꾸준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예컨대

    "그러면서 “참여정부 내내 저와 제가 속한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부의 비판자였다. 한미FTA, 비정규직법 등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했다”면서 “노동자,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의 사명이고,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당시 정치적 판단과 행동이 잘못이라 생각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2016년 5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523500054

    정치인이 무엇을 해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상식적인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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