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욕 섞일雜 끓일湯 (Others)

스트리킹(streaking)은 공공 장소에서 옷을 홀랑 벗고 달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원래 streak는 빠르게 달린다는 뜻이었는데,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나체 질주가 횡행하면서 그런 뜻이 추가되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스트리킹은 1970년대 초 세계로 퍼져나가며 젊은층에게는 새로운 트렌드, 기성세대와 당국에게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1974년 3월 13일, 한국에서도 최초의 스트리킹이 감행되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20대 장발 청년 한 명이 옷을 홀랑 벗고 거리를 질주했던 것이다. 그는 안암동로터리 '보성다방' 근처에서 출발해서 알몸으로 안암동 거리를 달리다 제기동 '삼성주유소' 옆골목으로 사라졌다. 거리로 따지면 215m 정도다.

동방예의지국의 정부 당국은 혼비백산했다. 경찰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장발을 자르고 자를 들고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대임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안암동로터리는 동대문경찰서, 안암동 거리는 성북경찰서, 제기동은 청량리경찰서 관할이었다. 청년의 스트리킹 거사 지역에 3개 경찰서가 걸쳐 있었던 셈이다. 이 경찰서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부산하게 대응에 나섰다.

동대문서는 스트리킹 청년을 잡기 위해 긴급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담반을 꾸려 형사 15명을 투입했다. 수사진은 점포 5백 개를 뒤지고, 인근 대학가 하숙집에서 대학생 280명을 조사했으며, 통반장 회의까지 소집해서 주민 840명을 동원하여 샅샅이 수색했다. 성북서와 청량리서도 가가호호 방문하는 특별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점포 수색은 사진관에 집중되었는데, 스트리킹 당시 또다른 청년이 카메라로 그 장면을 찍었다는 제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년을 잡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뒤 며칠 사이에 또다른 스트리킹이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당국이 나체 질주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최초 스트리킹 이후 서울과 파주, 충무 등에서 일주일 동안 7회의 스트리킹이 감행되었다.

최초의 스트리킹으로부터 두 주일 뒤인 3월 27일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스트리커가 등장했다. 전남 여수시 교동 '대전집'의 종업원 김아무개씨(25)였다. 김씨는 술집 주인의 윤락 강요에 항의하는 뜻으로 옷을 벗고 여수 시내를 5백여m 활보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교동 일대는 그녀의 스트리킹을 구경하려는 주민 200여 명으로 인해 10분 넘게 교통 마비가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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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서울 안암동에서 벌어진 최초의 스트리킹 다음날인 3월 14일 <경향신문>에 실린 신문사 칼럼이다. 스트리커를 극단적인 언어로 공격하고 있는데, 신문이 지면에다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욕으로서 최대치라고 할 만하다.

"참으로 통곡할 일" "겨레가 입은 수치" "겨레의 믿음이 무너졌다" "통분하기 그지없는 일" 따위의 말을 듣노라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가 다시 온 듯하고, "가문이 볼장 다 봤다" "쓸개빠진 젊은 세대" "포살(총살)하거나 때려죽인다" "얼간망둥이" "사이비 인간" "인면수심의 망종(몹쓸 종자)" 같은 말에서는 더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진다. 경찰은 애초 스트리커를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단속하려 하였으나, 이러한 여론 때문에 형법상의 공연음란죄로 격상시켰다.


설마 우리나라에서야 그런 일이 없겠지 하고 믿어왔는데 '설마가 사람 죽인다'고, 소위 '스트리킹'(나체 질주)라는 광태(미친 행태)가 급기야 서울 거리에 출현하고 말았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다. 제아무리 '스트리킹'의 광풍이 온세계를 휩쓴다 하더라도 '동방예의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만은 끄떡없으리라고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이 무슨 이변인가. 오직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중략)

여하간 창피하기 짝이 없고 나라 체면에 먹칠을 한 꼴이 되었다. 어느 집 아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집 가문도 볼장을 다 봤으며, 겨레가 입은 수치도 또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것도 양풍(서양 풍습)에 놀아난 일종의 '모방'이라면, 쓸개빠진 그들 일부 젊은 세대들의 앞날이 암담할 뿐이다.

어느 한담하는 자리에서 한 중년이 "만약 한국에 스트리킹이 상륙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에 대해 "뭘 어떡해. 그따위 놈이 있으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포살(총을 쏴 죽임)을 하거나 그 이전에 시민들이 때려죽이고 말 거야" 하고 극언을 하면서도, 이 친구는 '설마' 그런 일이야 일어나겠느냐는 듯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한데 이러한 겨레의 믿음은 허무하게도 무너지고 말았다. 실로 통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새벽거리에서 아닌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나체 질주를 하고 달아난 괴청년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따위 얼간망둥이는 전 수사력을 풀어서라도 잡아다가 혼을 내줘야 하겠다. 경범죄 정도는 간에 차지도 않고 임시조치법이라도 만들어 일벌백계가 되도록 엄중히 다스려야 할 일이다. 이열치열이라고, 비상한 때는 비상한 수단으로 다스릴 도리밖에는 없는 것이다.

자고로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은 '만물의 영장'이란 자존뿐만 아니라 '인격'을 갖추고 '양식'을 지키는 데 있다. 하물며 인간이 남 앞에, 그것도 대로상에서 '알몸'을 휘젓는다는 것은 벌써 인간의 탈을 벗은 짐승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풍기 이전의 문제요, 법 이전의 인륜 도덕에 속하는 문제이다. 이따위 세기말적 사이비 인간, 즉 인면수심의 망종(몹쓸 종자)들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어쨌든 한심한 세상이 되었다.


옷 벗고 거리를 달렸다고 나라가 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죽여 마땅한 놈이라고 몰아세우는 데에서, 우울하고 딱딱했던 국가이데올로기가 넘실거리던 전체주의 시대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옷 벗고 달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그런 세상에 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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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대사 2017/07/21 10:02 # 삭제 답글

    저 시대가 미래에 더 잘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던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가장 황금시대였고 희망이 없는 현 시대의 젊은이들이 훨씬 불행하다고 주장하는 20대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서 지금이 좋은 시대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꼰대 취급하죠.ㅋㅋ..
  • deulpul 2017/10/08 12:03 #

    세상에 깡그리 좋거나 깡그리 나쁜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게 마련이겠지요. 또 기성세대든 신세대든 자기 시대의 불행을 체험적으로 과장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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