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서를 든 사내들 섞일雜 끓일湯 (Others)



20년 만에 다시 찾은 절에서 세상을 비껴 앉은 부처상을 재회했다. 수십 년 세월에 변함없는 그의 앞에서 세상을 평정심만으로 사는 지혜를 간구하고 싶었다. 휴가철 인파 속에서 그런 일을 하기는 무리였고, 그렇게 얄팍한 알현으론 아무 것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지, 번민은 그날 밤도 계속되었다.

사내들은 언제나 밤에 나타난다. 불을 끄고 누우면 그때가 사내들이 등장하는 때다. 아무 옷도 입지 않은 여나믄 명 사내들은 각자 손에손에 청구서를 들고 일렬로 늘어선다. 나는 그들이 싫고 밉고 무서워서 뒷걸음질친다. 사내들은 혹은 일그러진 얼굴, 혹은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 혹은 사악한 웃음을 띤 얼굴을 하고 지네와 같은 모양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들은 내게 청구서를 내민다. 내가 지불할 것은 고통밖에 없다. 그들의 임무는 나에게서 고통을 징수하는 것이다.

그들이 등장할 때, 옆에 치어리더 같은 여자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들은 사내들이 내게 한 발짝씩 다가설 때마다 박수를 치고 즐거워 한다. 그들은 나체의 사내들이 임무를 근면하게 수행하도록 격려한다. 여자들은 이따금씩 여나믄 명의 사내 뒷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그들의 격려에 힘입어 또다른 사내들이 등장하려 한다.

나는 그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운명처럼 단단하게 나를 움켜쥐려 한다. 전전반측 전전반측, 이리 누우면 사내들이, 저리 누우면 여자들이 나를 에워싼다. 그들이 흘리는 타액과 체액에 나는 익사할 지경이 된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불을 켠다.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사내들을, 여자들을 밀어낼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밤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아주아주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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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것이 나인가! 왜 이것이 나인가! 왜 이것이 나인가!

내 나이 80을 생각해 본다. 70이라도 좋고 90이라도 괜찮다. 부끄러운 삶이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까. 불면할 수밖에 없는 번민은 그에게 손톱만큼의 의미라도 있을까. 아니, 그는 기억이라도 할까.

빨리 늙고 싶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부처님인지도 모른다.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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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7/08/18 00: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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