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번거롭다 말씀言 말씀語 (Words)

블로그 글이 만일 돈을 받고 쓰는 것이라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단어를 자르고 문장을 깎고 단락을 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글은 모자라서 나빠지기보다 넘쳐서 나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좋은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는 믿을 만한 지침서들이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를 것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령 서점 글쓰기 코너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On Writing Well)>는 (서론격인 제1장을 제외하면) '간단하고 쉽게 쓰는 글이 좋은 글이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두 장(챕터)으로 책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살다보면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장식, 무의미한 전문용어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 생각쓰기> 19쪽, 이한중 옮김)


글은 쉽고 간단하게 써야 한다는 것은 평범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실존적 이해, 즉 자신을 설명하거나 구현하려는 (넘치는) 욕구가 글쓰기를 이끈다는 데 대한 이해, 그리고 그러한 욕구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실증적 이해 같은 것들이 종합되어 들어 있다.


가지치기는 자연을 돕고 글치기는 작품을 돕는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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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간단하다'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이다. 첫 개념인 쉽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의 반대이고, 두 번째 개념인 간단하다는 것은 복잡하거나 길다는 것의 반대이다.

둘을 놓고 굳이 경중을 말하자면, 복잡하고 긴 글보다 불필요하게 어려운 글이 훨씬 더 버텨내기 어렵다. 전자는 실수나 요령부득에서 나오지만 후자는 의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어려운 글은, 오직 그렇게 어려운 방식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어려운 글을 만들어 과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세상에 나온다.

혹은 주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할 때에도 글은 그렇게 된다. 알면 쉽게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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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사복이 말을 못하다(蛇福不言)'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 과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열두 살이 되도록 말을 못 하고 서지도 못해 뱀아이(蛇童)라고 불렸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자 사복은 원효에게 가서 '불경을 지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으니 자네와 내가 함께 장사를 지내자'고 했다.

원효가 사복의 어미 앞에서 추도를 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수계를 해달라고 했다. 원효는 시신 앞으로 가서 빌었다.

"태어나지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구나. 죽지 말지니, 태어나는 것이 괴롭구나."

사복이 말했다.

"말이 번거롭다."

그래서 원효가 다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괴롭구나."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 동쪽 기슭으로 갔다.

(<삼국유사>, 김원중 옮김)


말하자면 원효가 과시체로 쓴 글에 편집자 사복이 빨간 줄을 북북 그어 허세를 쳐내버리고 쉽고 간단한 글로 만든 것이다. 깎아내고 쳐내 좋은 글을 만드는 노력의 미덕이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음을 상징하는 것 같아 아주 좋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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