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약속 시간이 남아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서성이다 제드 러벤펠드의 소설 <살인의 해석>을 샀다.




시작부터 통렬했다.


행복에 있어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 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 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 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의처럼 자신들을 감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정신분석을 소재로 하고 있고 프로이트와 융이 실명으로 등장하기까지 하니,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불행을 만든다'라는 이 서두는 책 전체를 꿰뚫는 핵심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위의 단락은 누구나에게도 아픈 말이다. 오로지 현재를 사는 행복한 사람도 좀 있겠지만, 그들을 뺀 대다수에게 인생은 대체로 행복하기보다 불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잊거나 버리지 못해 그런 불행을 자초하는 원인으로 거론된 것들 중에서 내 눈에 가장 띄는 것은 '거절된 소원'이다.

꿈이나 희망을 가졌다가 좌절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를테면, 로또를 사면 한 주 동안 희망을 지니고 살게 된다고 말하지만 그 대가로 주말마다 씁쓸한 좌절을 반복적으로 겪는 5백만 명의 로또 구입자들, 한국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그들도 여기 해당할 것이다. 로또는 다음주에 다시 시도하면 되지만,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건 소원이 운명에 의해 거절될 때, 사람은 불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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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말이 잘 읽히시는지? 이렇게 소설 초입에 가슴이 콱 막히는 문장들을 박아넣어서, 나는 서두부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의문이 든다. 아니, 이해가 잘 안 된다. 상처, 좌절된 소원, 또 상처가 사랑의 재가 되어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다? 맥락은 알겠는데, 왜 사랑의 재가 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잊고 싶은 상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원문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빨간 줄과 번호는 내가 붙였다.)




원문은 사람이 과거에 고착되어 불행해지는 아이템으로 1) 오래 전에 겪은 상처 2) 거부된 소원 3) 자존심에 입은 손상 4) 멸시나 무관심으로 꺼져버린 사랑의 불꽃 등을 나열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거나, 거꾸로 사람이 이런 것에 달라붙어 있음으로 해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좌절된 사랑은 불행을 초래하는 하나의 사안으로 제시되었는데, 번역문에서는 그 앞의 것들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렇게 명약관화한 맥락을 왜 그렇게 비틀어 옮겼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로 따지자면 좌절된 사랑이 거절된 바람보다 못하지 않는 것 같다. 당장 뉴스에 끊임없이 나오는 "헤어지자는 연인에 칼부림" 같은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반응은 예외로 치더라도, 무시되고 멸시된 사랑은 사람의 심리에 굵고 깊은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번역자는 사랑을 해 보지 않았거나 사랑으로 불행해져 보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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