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조동진, 마광수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 영혼의 죽음은 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대개의 죽음은 그 자신이 주인공인 주관적인 세계의 종말이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그 영혼이 쌓아올린 외부의 세계가 끝나는 양상이 되기도 한다. 그 세계가 크고 넓을수록 종말의 아쉬움이 크다.

지난 몇 달 간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이 그러하였다, 적어도 내게는.


1. 박상륭, 2017년 7월 1일 타계



소설가 박상륭은 자신이 살던 캐나다에서 죽었다. 이 세상에서 박상륭만이 쓸 수 있는 신비하면서도 수다스럽고 해학 넘치는 글들을 이제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좀처럼 대안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세계의 완벽한 종말이다.

그가 남긴 글들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겠지만, 그런 글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의 죽음 자체만큼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는 웅공자도, 땅 위에 사는, 그 나이 또래의 젊은네들 중의 하나였다. '위(爲, 프라브리티)'가, 망석중을 놀리는 손이며, 동시에 줄 같은 것이 되어, 그의 사지도 또한 억세고 단단하게 묶고 들었으며, 그것의 끈들거림에 좇아 그도, 많은 것을 욕망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며, 질투, 증오 같은 부정적 감정에도 당해, 자기가 동시에 지옥 자체라는, 참으로 괴롭고도 불쾌한 체험을, 간단없이 해오고 있다. 이 위爲의 새끼줄을 놀리는 손은 웅공자도 물론,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젊은네들과 마찬가지로, 우주간, 다른 누구도 아닌, 하필 자기 자신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 (중략)

웅공자의, 자기만의, 그럼에도 그것이 모든 인식하며 사는 유정들의 것인, 삶의 고통, 병, 암흑, 죽음 등과의 상면은, 그렇게 이뤄진 것인데, 웅공자는 운명처럼, 어쩌면 그보다도 더 강인하게, 자기에게 부착해버린, 명도용 장옷에다, 많은 이름을 부여했는데, 그중에서도 그중 많이 쓰여져 보편화된 것들 중 하나가, '그림자'였다. ... (중략) 그림자, 그래서 그것은, 그것 자신의 무게 탓에도 노상 흘러내리면서도, 그럼에도 그것은 결코, 그것에 입혀진 자로부터, 그 피륙의 실 한 오라기만큼도 벗겨져나간 일이란 없다. 모든 젊은 몸을 숙주 삼아, 그 젊음을, 삶을, 빨아 사는, 이 늙은 '그림자'란, 고통이구나, 저주구나, 고통이겠는가, 저주겠는가.

(<산해기>중에서)


박상륭을 다른 분들과 함께 읽어보려는 오랜 소망이 있다. 기회가 되는 대로 현실화할 생각이다.

- 과거 글: 박상륭의 환멸
- 과거 글: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괄호로 비워두고
- 과거 글: 나는 우매하여 그럴 줄을 모르니
- 과거 글: 죽음의 한 연구


2. 조동진, 2017년 8월 28일 타계



조동진의 음악 세계는 특이하고도 넓다. 그런 세계에 들어선 음악인들을 '조동진 사단'이라고 한다. 그의 타계를 놓고 한 세계가 끝나는 죽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비유이기도 하고 또 완벽한 현실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부터 조동진을 좋아한 건 아니다. 그의 노래는 너무 심심했다. 그런데 음색이 나와 맞았다. 조동진 노래는 부르기가 너무 편하다. 심심한 탓일 것이다.

듣다보니 좋다. 그의 노래는 자극하지 않고 어루만진다. 수채화 물감을 연하게 입힌 명상음악 같다. 천천히 끓인 무국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위안이 된다.


누구인가 귀익은 발자욱 소리에
가만히 일어나 창문을 열면
저만치 가버린 낯설은 사람
무거운 듯 걸쳐 입은 검은 외투 위에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어린 나무 가지 끝에 찬바람 걸려
담 밑에 고양이 밤새워 울고
조그만 난롯가 물 끓는 소리에
꿈 많은 아이들 애써 잠들면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한겨울 바닷가 거친 물결 속에
잊혀진 뱃노래 외쳐서 부르다
얼어붙은 강물 위로 걸어서 오는
당신의 빈 속을 가득 채워줄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조동진 작사/작곡, '흰눈이 하얗게')


따뜻한 단어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썼고, 은연히 드러낸 마음도 따뜻하다. 흰 눈을 하얗게 덮어쓰더라도 한없이 포근해질 것 같다. 손이, 마음이 텅 빌수록 위안이 되는 노래다. 그의 노래들이 대개 그렇듯.


3. 마광수, 2017년 9월 5일 타계



마광수는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은 그가 시대를 앞서 살았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 그는 시대를 솔직하게 살았을 뿐이다.

- 과거 글: H에게 보내는 마광수의 편지

마광수는 앞의 조동진과 함께 서울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가객 김광석도 대광 출신이다. 모두 또다른 세계에서 큰 빛[大光]과 함께 하기를 빈다.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