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다시 끊으며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미국에서 달려왔을 때는 실질적으로 운명하신 상태였다. 심폐소생술까지 다 해 본 뒤였다. 의사는 멀리서 온 아들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망을 선언했다. 의사가, 그리고 병원이 배려를 해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서류상으로는 임종을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지 못했다. 유언도 듣지 못했다. 실상 병중에 위독하여 돌아가셨으므로 따로 유언 같은 것을 하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상을 치른 이후 담배를 끊었다. 그가 나에게 남긴 값진 유산이다. 1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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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배를 끊기 전,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미 거의 사라졌다. 동료들과 맥주를 마실 때면 나 혼자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때마침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법들도 통과됐다. 덕분에, 추운 겨울날 밖에서 덜덜 떨며 담배를 피우는 낯선 사람들과 잠시 친구가 되었다.

좋지 않은 약물이 몸에 잘 받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담배는 원래부터 잘 받지 않았다. 많이 피우면 곧 표가 났다. 그래서 평소 많이 피우지는 않았다. 깨어 일어나 담배갑을 찾는 일 같은 것은 평생 없었다. 사람을 만날 때면 많이 피웠다. 그러다 헤어지면 쓰러졌다. 글 쓸 때도 많이 피웠다. 쓰고 나면 쓰러졌다. 그런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하루종일 서너 개도 피우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끊어도 금단증상 같은 것은 없었다. 과자가 땡기지도 않았고 살이 불지도 않았다. 무난히 금연에 성공했다. 10년 동안 담배 없이 잘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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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정기검진을 갔을 때 일이다. 병력이나 건강 상태를 스스로 적어 넣는 문진표가 있었다. 흡연 내용을 적는 부분에는 끊은 지 10년 되었다고 썼다.

나중에 검진 결과가 우편으로 왔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 것이 아니었다. 끊은 지 10년이나 된 과거의 흡연이 나의 미래에서 여전히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적됐다. 오래 전의 흡연은 지금 일주일에 3~4차례나 마시는 술보다도, 지금 거의 하지 못하는 운동보다도 더 위험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담배는 끊어도 몸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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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에 한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나의 상사였던 본부장과 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 나오자 그는 담배를 꺼냈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이였다. 아직 담배를 피우냐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그는 자신도 끊었으나 현 직장에 오고나서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담배를 그 의지에 반하여 피우게 되는 것은 분명 어떠한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인 것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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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 오랜만의 일이기 때문에, 어떤 담배가 나에게 맞는지도 잘 모르고 어떤 종류가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냥 술 마실 때나 힘든 상황일 때 잡히는 대로 피운다. 이럴 때 담배는 달고, 피우고 나면 여전히 쓰러진다.

흡연자들의 흔한 합리화, 즉 스트레스 해소로 인해 오히려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어차피 중독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많이 피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 않아야 함을 알거나 싫으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은 중독의 한 양상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피우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것은 거의 없다. 이렇게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유언처럼 남겨준 게 금연이다. 건강을 유산으로 남기신 셈이다.

그동안 힘들다는 핑계로 소중한 줄 모르고 써버렸지만, 이제라도 잘 받들어 지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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