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OB 특집판 중매媒 몸體 (Media)

<시사인>에 글을 썼다. 외부 필자로서 칼럼을 쓴 적은 있다. 이번에는 '기자' 직함을 달았다.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곳은 <시사저널>이다. 나는 <시사인>이 만들어지기 전에 회사를 떠났다. 그래서 <시사인> 기자였던 적이 없다.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시사저널>은 2006년 경영의 시대착오적인 편집권 침탈에 맞서 1년 넘게 파업을 하다 결국 딴살림을 차렸다. 그게 <시사인>이다. <시사저널>의 거의 모든 기자와 제작부서, 지원팀까지 빠져나왔다. 원해서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가슴을 치고 한탄하며 자랑스러운 회사를 떠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대기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시사저널>은 껍데기만 남았고, 그래서 '짝퉁 시사저널'로 불렸다.

<시사인>은 구성원으로나 편집 정신으로나 <시사저널>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이번에 내가 난데없이 기자로서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사인>은 올해 창간 10주년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10주년 기념 특집의 일환으로, 지금은 현직을 떠난 <시사저널>기자들에게 지면을 열어주는 특집판을 만들기로 했다. (<미디어오늘> 관련 기사: 시사인, 창간 10주년 특집 듀얼 커버스토리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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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배치는 다국어로 편집되는 외국 잡지들이 흔히 그렇듯 절반을 뒤집어 편집하는 형태다.




커버 스토리 "극우정당 닻을 내리다" 쪽이 원래의 지면이고, "다시 길 위에 서다"가 OB 특집판이다. 커버 스토리는 시인인 이문재 '기자'가 지리산을 답사하고 썼다. 특집판은 <시사저널>당시와 <시사인> 창간을 돌아보는 회고형 기사와 현안을 다루는 일반 기사가 조합되었다. '편집국장의 편지'를 써야 할 김상익 '편집국장'은 막판까지 통음하며 끙끙대다 "올드 보이들이 나선 까닭"이라는 제작 칼럼을 써냈다.

과거의 <시사저널>과 현재의 <시사인>에는 양한모라는 미술기자가 있다. 사람의 특징을 기막히게 잡아내어 캐리커쳐로 묘사하는 데 발군이고, 2D에서 그치지 않고 3D까지 나가 '캐리돌'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양한모 선임기자는 오랜만에 지면에 글을 쓴 OB들을 모두 캐리커쳐로 그려냈다.

특집판은 지면 디자인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지금의 <시사인> 지면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옛 지면은 <타임>처럼 빨간 줄이 들어갔고, 기사도 전체 박스 안에 넣었다. 지금 보면 정갈한 느낌은 나지만 조금 답답하게 보인다. 그래도 익숙하고 정겨운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앞뒤좌우가 터진 시원시원하고 트렌디한 디자인이 아니라 글이 박스로 둘러쳐진 구닥다리 스킨을 선호하는 것도 <시사저널> 지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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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정은 <시사저널>이지만, 지금은 그쪽 정체성이 전혀 없다. 나의 과거는 대부분 <시사인>으로 옮겨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경력 증명서를 뗄 일이 있어서 <시사저널>에 연락했더니 내 기록이 없다고 한다. 내 기록뿐 아니라, 과거 <시사저널> 인사 기록이 모두 없다고 했다. 이 소릴 들으면서 나는 지금의 <시사저널>과 마음의 연을 완전히 끊었다.

<시사저널>파업과 <시사인> 창간 때문에 나는 내 경력을 대기가 좀 곤란해졌다. 어디서 전직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때, "<시사인>이 창간되기 전 <시사저널> 출신입니다"라고 말한다. (<시사인>에서는 '원 시사저널'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중언부언해야 하는 일은 피곤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만 하랴. <시사저널> 파업 현장에 있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사인>이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데 감사한다.

특집판의 맨 마지막 '시론'이 실리는 지면은 안병찬 주간이 썼다. 그는 자신이 말하듯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시사저널>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줄도 빼지 않고" 다 읽은 사람이다. 그가 읽은 것은 기사이지만, 또 기자들 개개인이기도 하다. 그런 이라, 그의 정체성 역시 사람과 편집 정신을 따라 <시사인>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그는 이 시론에서, 2007년 <시사인> 창간 때 다른 매체에 썼던 자신의 칼럼을 인용했다.

"시사인, 험산을 올라 설산을 기고 급류를 건너고 대하를 헤엄쳐 이윽고 동녘이 튼다. 서쪽 놀이 져도 그 행진을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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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quez 2017/11/03 00:15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블로그 잘 보고있습니다. 한부 꼭사봐야겠어요. 국내에 들어오셔서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가끔 궁금하기도 한데 ~ 슬로우뉴스에서도 간간히 뵙지만~ 어디서든 부조리한 사회에 의미심장한 역할 충실히 하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 deulpul 2017/11/07 11:05 #

    늘 고맙습니다! <시사인>은 이미 두어 주 지나버려서 해당 호 종이책을 사시긴 어려우시겠네요. 물론 온라인 기사는 언제든 읽으실 수 있습니다. ^^
  • Northshore 2017/11/10 01:22 # 삭제 답글

    뒤늦게 본 포스트입니다. 옛시절이 다시 주마등처럼... 저는 캐나다로 이민 온 이후, 어디에서 일했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 아니 아마도 '전혀' -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사인 10주년 기념호에 숟가락 하나 얹을 수 있었던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조만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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