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글을 못 올려 글감이 쌓였다. <시사인> 관련 글 연속 2회 올리고 이후 정상화 예정, 끙.
11월 20일 저녁, <시사인>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원<시사저널>'까지 포함해 전현직 기자들이 함께 하는 홈커밍 데이 행사가 서울 충정로 <시사인> 부근에 있는 카페에서 열렸다. 1989년 <시사저널>이 처음 생길 때 작업을 했던 대선배들에서부터 지방 출장을 함께 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운전기사실 직원까지 오랜만에 모였다. 머리가 희끗한 퇴직 언론인과 앳된 초년병 기자가 널찍한 카페 공간을 함께 메웠다.
나는 전에 쓴 대로, 예전 기자들이 참여해 만드는 특집판에 한 꼭지를 썼다. 물론 원고료는 받지 않았다. 옛 기자들에게 지면을 열어준 것만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홈커밍 데이에 갔더니 원고료를 아래와 같이 준비해 두었네:
뭔가 두툼하다. 그 안에는 이런 게 들어 있었다.
고제규 편집국장이 쓴 손편지와 1년 정기구독권. 펜으로 쓴 편지는 언제 누구로부터 받아도 감동을 주지만, 펜으로 상징되는 직업 집단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1년 구독권도 함께 들어 있다. (고유번호는 지웠어용.)
파카 수성펜. 제대로 된 표기는 '파커'지만, 이건 파카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연배가 좀 올라가는 세대는 '파카 만년필'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연필을 떼고 공책에 아무 펜으로나 쓸 수 있게 되는 무렵의 꼬맹이들에게 화살형 클립이 달린 파카 만년필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고급 필기구였다. 역시 펜으로 상징되는 집단의 OB들에게는 최적이 아닐 수 없는 아이템이다.
로고가 새겨진 카드형 USB 드라이브. 선배 중 한 분은 집에 가서 이걸 놓고 뭔지 몰라 한참 애를 먹었다고 한다. ㅋ
로고와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이 디자인된 손수건. 판화의 문구는 '시위를 떠나면 바로 허공 / 물가 벗어나면 바로 물 위 / 거기서 저기로 나아갈 따름 / 쉼없이, 처음처럼' 이다. 이철수 판화가는 OB 특집판에도 '표적은 백, 창은 하나 / 마음으로는 늘 중심을 겨누실 것!'이라는 판화를 헌정했다.
2018년 수첩형 다이어리. 그러고 보니 연말이다. 수첩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은 내가 3천원 주고 산 모나미의 올리카 만년필이다.
이에 더해 바로 그 OB 특집판이 실린 <시사인> 한 권. 이건 앞에서 보여드렸으므로 생략.
그리고...
미술부 양한모 화백의 캐리커쳐 작품을 멋진 액자에 담았다. (눈가리개는 물론 내가...) 초상화가 아니라 캐리커쳐라서, 실사 그대로가 아니고 특징을 강조해 그린 작품이다. 사람을 관찰해 단선 캐리커쳐를 잡아내는 데 경지에 오른 양 화백 작품의 특징은, 자기는 아니라고 우겨도 남이 볼 때는 100%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자신도 혼자서 거울 보면 자기 아니라고 못 한다. 마음 속의 자기 이미지가 허위일 뿐이다. ㅋ 액자를 받은 한 선배는 이 그림을 영정사진으로 쓰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의 선물을 안고 왔다. 몇 쪽 글 쓴 대가로는 과분한 원고료가 아닐 수 없다.
이 날 <시사인>기자들은 회사 살림살이를 보고하면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정기독자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구독이 만료되어 재구독 권유 전화를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세상이 좋아졌으니 그만 봐도 좋지 않을까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진보적 언론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인 듯하다.
1987년 이른바 87년 체제의 등장, 그리고 10년이나 지속된 전통 야당의 집권을 거치며, 많은 사람은 한국에도 민주주의적 법과 제도와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 줄 알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김대중이 집권하자, 유례없는 정권 교체에 당황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모두 죽은 듯 엎드려서 5년만 넘기자는 것이다. 그 기간에도 사회 구석구석에서 부조리와 폐습은 끊이지 않았다. 야당 집권 10년이 지난 뒤에도 '대통령 하나 바뀌자' 사회 시스템 대부분은 비민주, 반민주로 보란 듯이 되돌아갔다. 그렇게 과거로부터 누적되고 거기 새로 쌓인 폐습들이 집적되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 권력과 재벌의 유착, 갑들의 극단적인 전횡 같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부조리들을 만들어 냈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단지 그 완성을 향해 가는 행위만이 과정으로 존재할 뿐이고 그것이 가치있을 따름이다. 어느 곳이나 선과 악이 존재하듯, 어느 사회든 제한된 가치(자원과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여)를 놓고 갈등하는 민주 세력과 비민주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관계는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같은 긴장 관계여서, 한 쪽이 손을 놓으면 다른 쪽의 지분이 넓어진다. 민주주의는 성취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존재다.
어렵게 새로 길을 잡은 민주주의를 다시 망하게 하는 좋은 방법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양지에 드러내는 언론의 힘을 빼는 일일 것이다. 10년 만에 재집권한 극보수 세력이 언론사 사장부터 갈아치우러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론이 제 할 일을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지난 정권 9년 동안 생생하게 보아왔다. 국정 농단 사태는 다른 말로 하면 언론 농단 사태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국정 농단 사태와 블랙리스트와 정보기관의 사찰과 교묘한 탄압과 강자들의 횡포와 갑들만의 세상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면, 언론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
살림이 어려워져서, 혹은 재미가 없어져서, 혹은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매체와 절연하는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저도 그럽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서'는 적어도 민주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구독을 그만두는 이유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좋아질수록 언론에 물을 주고 가꾸고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언론이 그에 맞겨진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 때에만 이러한 사유가 가치 있을 것이다. 독자의 자세가 중요하듯,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언론의 견결한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시사인>으로부터 받은 1년 정기구독권을 다른 분께 쏩니다. 아래에 댓글로 희망해 주시는 첫 분께 1년 구독권 드릴께요. '댓글 한 번도 안 달았는데 괜찮을까...' 이런 것 상관없고요, 익명도 물론 상관없습니다. 다만 이메일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비공개 댓글 ㅇㅋ) --> 마감됨.
11월 20일 저녁, <시사인>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원<시사저널>'까지 포함해 전현직 기자들이 함께 하는 홈커밍 데이 행사가 서울 충정로 <시사인> 부근에 있는 카페에서 열렸다. 1989년 <시사저널>이 처음 생길 때 작업을 했던 대선배들에서부터 지방 출장을 함께 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운전기사실 직원까지 오랜만에 모였다. 머리가 희끗한 퇴직 언론인과 앳된 초년병 기자가 널찍한 카페 공간을 함께 메웠다.
나는 전에 쓴 대로, 예전 기자들이 참여해 만드는 특집판에 한 꼭지를 썼다. 물론 원고료는 받지 않았다. 옛 기자들에게 지면을 열어준 것만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홈커밍 데이에 갔더니 원고료를 아래와 같이 준비해 두었네:






이에 더해 바로 그 OB 특집판이 실린 <시사인> 한 권. 이건 앞에서 보여드렸으므로 생략.
그리고...

이상의 선물을 안고 왔다. 몇 쪽 글 쓴 대가로는 과분한 원고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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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시사인>기자들은 회사 살림살이를 보고하면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정기독자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구독이 만료되어 재구독 권유 전화를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세상이 좋아졌으니 그만 봐도 좋지 않을까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진보적 언론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인 듯하다.
1987년 이른바 87년 체제의 등장, 그리고 10년이나 지속된 전통 야당의 집권을 거치며, 많은 사람은 한국에도 민주주의적 법과 제도와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 줄 알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김대중이 집권하자, 유례없는 정권 교체에 당황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모두 죽은 듯 엎드려서 5년만 넘기자는 것이다. 그 기간에도 사회 구석구석에서 부조리와 폐습은 끊이지 않았다. 야당 집권 10년이 지난 뒤에도 '대통령 하나 바뀌자' 사회 시스템 대부분은 비민주, 반민주로 보란 듯이 되돌아갔다. 그렇게 과거로부터 누적되고 거기 새로 쌓인 폐습들이 집적되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 권력과 재벌의 유착, 갑들의 극단적인 전횡 같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부조리들을 만들어 냈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단지 그 완성을 향해 가는 행위만이 과정으로 존재할 뿐이고 그것이 가치있을 따름이다. 어느 곳이나 선과 악이 존재하듯, 어느 사회든 제한된 가치(자원과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여)를 놓고 갈등하는 민주 세력과 비민주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관계는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같은 긴장 관계여서, 한 쪽이 손을 놓으면 다른 쪽의 지분이 넓어진다. 민주주의는 성취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존재다.
어렵게 새로 길을 잡은 민주주의를 다시 망하게 하는 좋은 방법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양지에 드러내는 언론의 힘을 빼는 일일 것이다. 10년 만에 재집권한 극보수 세력이 언론사 사장부터 갈아치우러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론이 제 할 일을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지난 정권 9년 동안 생생하게 보아왔다. 국정 농단 사태는 다른 말로 하면 언론 농단 사태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국정 농단 사태와 블랙리스트와 정보기관의 사찰과 교묘한 탄압과 강자들의 횡포와 갑들만의 세상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면, 언론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
살림이 어려워져서, 혹은 재미가 없어져서, 혹은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매체와 절연하는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저도 그럽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서'는 적어도 민주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구독을 그만두는 이유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좋아질수록 언론에 물을 주고 가꾸고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언론이 그에 맞겨진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 때에만 이러한 사유가 가치 있을 것이다. 독자의 자세가 중요하듯,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언론의 견결한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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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2017/11/21 17:0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17/11/21 17:04 #
자그니 2017/11/22 00:18 # 답글
deulpul 2017/11/22 16:44 #
2017/11/24 08:4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17/12/01 13:11 #
camino 2017/11/30 15:38 # 삭제 답글
답이 없으셔서 궁금해서 여기에 남깁니다.
deulpul 2017/12/01 13:12 #
2017/12/01 21:1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17/12/05 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