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한국전쟁 피해 규모 때時 일事 (Issues)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위기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고 반복적으로 말하여 왔다. 이러한 접근을 놓고 두 가지 시각에서 비판이 나왔다. 첫째는 까짓것 전쟁해서 북한 쓸어버리자는 호전적 극우주의자들의 시각이고, 둘째는 우리가 쓸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스스로 내버린다는 전략적 비판자들의 시각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놓고 미국이 전쟁을 시사하는 강력 발언을 쏟아내고 있을 때,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다. 북한의 위협이 가중하는 것을 팔짱 끼고 볼 수도 없고, 귀 닫은 북한과 대화할 길도 없고, 미국처럼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유사시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 권한도 없다.

아니, 전쟁하겠다고 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하든 안 하든 말이다. 선제 공격의 가능성을 카드로 올리기만 해도 북한에 상당한 압력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반대하는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미국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거기 적당히 맞춰만 줘도 성립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북한이 상식적으로 움직이는 예측 가능한 상대여야 한다. 북한 집권자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입증하여 왔고, 지금도 계속 입증되고 있다. 북한 지도자들이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분석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의 입장에 서서 보았을 때다. 상대국인 한국이나 미국, 세계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과거나 지금이나 상식으로 예측할 수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다. 포탄을 쏟아부을 수도 있다는 언질이, 호전적 국가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매우 작다.

강력한 보복 공격이나 선제 공격을 카드로 내밀어 잠깐 움찔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자위권 강화를 위해 핵 개발을 한다는 명분을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상시적 전쟁 준비 국가 상태를 유지하도록 내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핵 개발을 해왔다. 햇볕이 비치든 폭풍우가 치든, 대화를 하든 단절을 하든 상관없이 꾸준히 해온 일이다. 이것은 북한 나름의 생존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또는 한-미가)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내미는 카드는 북한이 예상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 그런 카드를 구체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조짐도 없다.

둘째, 위협은 실제로 물리력을 가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 말은, 선제 공격으로든 되갚음의 형태로든 북한을 치겠다고 선언하면, 실제로 한반도에서 제2차 한국전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행 가능성이 없는 위협은 수가 뻔해서 블러핑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에,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그 피해 규모가 크고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마음껏 핵 개발을 하고 미국을 위협하면서 안하무인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들의 지정학적 위치 덕분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바로 코밑에 GDP 기준 세계 11위인 OECD 국가 한국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인구 절반이 휴전선에 가까운 수도권에 산다. 약간의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중동의 사막 한 가운데에 고립되어 있는 나라라면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다.


스트랫포가 만든 북한의 포격 사정권 지도. 이 도표가 실린 South Front 기사
남북한 군사력을 자세히 비교하고 있다.


북한이 예측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경우 쌍방 모두 막대한 해를 입는다는 점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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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반도에서 새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게 적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엄청난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거나 즉시 투입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 △남북한을 합쳐 세계 20위의 인구가 몰려 있는 지역이라는 점 △그 한 당사자인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인구밀도 1위라는 점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국경 부근에 주민과 사회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 등이 그런 예측을 가능케 한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이 따져 본 한반도 전쟁 피해 추산이 다시 뉴스로 나오고 있다(예컨대 기사, 또 기사). 당시 클린턴 정부는 실제로 북한 공격을 검토했으나, 그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어 접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뉴스가 아니다. 94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그때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가 1998년 말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지금 나오는 뉴스들은 페리-김대중 대화의 내용을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으로 보낸 문서가 기밀 해제되면서 다시 나오는 것이다. 내용은 이미 다 알려진 것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도 12년 전에 쓴 적이 있다.

당시 북한 공격으로 벌어질 전쟁의 피해 양상을 추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최근 보도 기준).

  • 한국군 사상: 49만 명
  • 주한미군 사상: 5만2천 명
  • 총 인명 피해: 100만 명 이상
  • 전쟁 비용: 610억 달러(67조 원)

현재 한국군 상비군은 62만 명 정도다. 그 중 80% 가까운 49만 명이 죽거나 부상한다는 것이다.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남북한 합쳐 1백만 명 정도가 사망할 것으로 추산됐다. 2014년 세월호 희생자가 304명, 지금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제천 화재 희생자가 29명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세월호 희생자의 3,289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된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희생이 어떤 명분으로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은 가족을 잃은 국민에게 어떤 논리로 희생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미국의 이러한 추산은 워싱턴 관료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계산해 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추계는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에서 작성한 것이다. 실제 군사력을 평가한 바탕 위에서 나온 추산이라는 뜻이다.

둘째, 이 피해 추산은 전쟁이 재래식 무기로 벌어질 때를 상정한 것이다. 당시는 북한이 핵을 개발 완료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다음의 한국전이 핵전쟁으로 치러질 경우, 그 피해는 94년 당시 추산보다 훨씬 더 크고 끔찍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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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당시 미국은 전쟁 피해를 추산만 해본 것이 아니다. 미사일과 스텔스기로 북한을 공격함으로써 개전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위해 한국 내 미국인을 소개하는 방법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임박한 전쟁이 직전에서 중단된 것은 평양에서 날아온 소식 때문이었다. 김일성을 만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미국의 전쟁 추진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야말로 한국을 '패싱'하여 전쟁이 벌어질 뻔했던 것이다.

미국의 계획대로 폭격이 시작되고 추산대로 결과가 발생하였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북한은 지금과 같은 핵 개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뜻하지 않게 통일을 이루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쑥대밭이 되었겠지만, 함께 죽자고 달려드는 북한의 공격 때문에 수도권을 비롯한 한국 주요부도 불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해를 입었을 것이다. 처참하게 죽은 1백만 명의 희생자 중에는 내가, 혹은 나의 가족과 지인이 들어있을 것이고, 한반도는 전체가 초상집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엄청난 경제적 피해와 준비되지 않은 북한 붕괴 때문에 한국은 급격한 경제 파탄의 구렁에 처박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 이를테면 청년 실업, 자영업 파탄, 흉악 범죄, 소득 불균형, 성평등, 안전 불감증, 적폐 청산 등이 모두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전락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북한 핵 개발을 놓고 어찌됐든 일전불사를 외치는 사람들도, 사흘만 참자는 흰소리를 내놓는 사람들도, 지금이 그런 상황보다 행복하다는 데 대개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였을 때 이기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겨도 지는 것이 제2의 한국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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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nZ 2018/01/04 15:50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중 610억 달러면 67조인데 둘 중 어느 숫자를 잘못 쓰신 것인지...
  • deulpul 2018/01/04 16:52 #

    아, 원화 환산하면서 0를 잘못 세었네요. 너무 큰 숫자라서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날카로운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용을 고쳤습니다. 숫자는 앞으로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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