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올해의 균형자 선정? 때時 일事 (Issues)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외국 언론의 평가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홍보했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외국 인터넷 매체가 풍자 형식으로 올린 글의 관련 대목을 '진지하게' 해석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美외교잡지 문 대통령 '올해의 균형자' 선정?…알고 보니 풍자

이 외국 매체에 실린 글이 풍자인지 진지한 성격인지, 또 이렇게 국가기관이 인용해 발표하기에 적당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용을 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청와대가 12월 27일 내놓은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의 발표부터 살펴 보자. 8:06 지점부터다. (플레이를 누르면 됩니다.)




청와대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한 문장씩 옮겨놓고 검토해 보기로 한다.

① "자, 그리고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서도 종종 소개를 해드렸던 외교전문 매체 '디플로맷', 잘 아시죠?

국민에게 잘 아냐고 했지만, 정작 청와대는 이 매체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다음날인 12월 28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어제 미국의 외교전문 매체 디플로맷이..."라고 했다(6:18 지점). <디플로맷>은 미국의 외교전문 매체가 아니다. 2002년에 호주 시드니에서 호주 사람에 의해 창간된 격월간 시사잡지다. 2007년에 역시 호주인인 지금의 소유주에게 넘어갈 때, 그가 운영하는 번역/컨설팅 회사가 있던 일본 도쿄로 사무실을 옮겼다. 2009년부터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전용으로 바꿨다.




현재 이 인터넷 잡지의 홈페이지에는 연락처 주소가 미국 워싱턴으로 나오긴 하는데, 적어도 재작년까지는 일본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지금도 미국 연락처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 본사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이 온라인 잡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특화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문재인 균형자' 블로그 글을 쓴 앤서니 펜섬도 일본 근무 경험이 있는 홍보 컨설턴트로, 현재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중이다.

또한 이 매체는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이 다루는 영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 국방 및 정보, 환경, 인권, 개발, 예술, 대중문화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15년 전 창간할 때,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이 없는 호주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루어보려는 의도에서 '디플로맷(외교관)'이라는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지금의 성격을 '외교전문 매체'라고 하기는 어렵다.

② "이 매체는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시에서 올해의 승자와 패자를 선정을 합니다."

매년 해온 일이 아니다. 작년에 한 번, 그리고 올해 두 번째다. 모두 앤서니 펜섬이 썼다. 말하자면 <타임>의 '올해의 인물'이나 <포린 폴리시>의 'global thinkers'처럼 각 잡고 경쟁을 거쳐 뽑는 선정이 아니라, 필자 개인이 한번 써보는 블로그 칼럼이다. 올해의 제목은 '닭의 해 아시아의 승자와 패자'였고, 작년 글은 '2016년 아시아의 승자와 패자'였다. 2015년에도 비슷한 글을 썼는데, 이 때에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한 해 동안 벌어진 경제 상황을 되돌아보는 글이었다.

③ "승자와 패자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일년 동안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와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장을 했구요, 문재인 대통령을 올해의 균형자로 선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 지도자 중에서 경합을 벌여 문 대통령을 균형자로 뽑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게 아니라, 그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거기에 균형자라는 특징을 붙인 것이다. 설령 이것이 진지한 의미라고 해도 말이다.

문 대통령이 들어간 것은 어쨌든 존재감 입증 차원에서 좋은 성과인 것 같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이 대개 망라되는 것을 고려하면, 안 들어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겠다. 이번에 문 대통령과 함께 들어간 사람들은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키히토 천황,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빌 잉글리시 뉴질랜드 전 총리, 아웅산 수치 미얀마 지도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이다.

작년에는 박근혜도 들어갔다.

④ "이 디플로맷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문샤인 정책이 북한 위기로 가려졌다라고 보도를 하고 있구요, 하지만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을 잡았다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문샤인(moonshine, 달빛) 정책'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빗대어 쓴 말이다. 문 대통령이 균형을 잡았다는 부분은 "... has had to play a political balancing act between..."으로서, '균형을 잡았다'라는 긍정적 평가의 의미가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을 서술한 데 더 가깝다.

⑤ "또한 디플로맷은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적 압박과 그리고 미국의 한미 FTA 개정 협상 요구에 동시에 맞서왔다면서 올해의 균형자로 선정을 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 경제적 압박과 FTA 협상 요구에 동시에 맞서왔다고 말한 게 아니라, 중국이 경제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미국의 재협상 요청에도 직면했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While China has applied economic pressure on Seoul over its acceptance of the U.S.-supplied THAAD missile system, Moon has also faced calls from Washington for the renegotiation of the “horrible” U.S.-South Korea trade pact." 그것을 잘 헤치고 다루었다는 평가나, 그래서 균형자로 뽑았다는 말은 없다.

이것은 의역도 아니고 오역도 아니다. "홍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입맛대로 외국매체의 칼럼을 인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위에 링크한 기사 중에서)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 ** --- ** ---


이렇게 진지 빨면서 분석을 하다 보면 곧 우스꽝스러워지게 된다. 다른 지도자에 대한 대목들과 함께 보노라면, <디플로맷> 글의 성격이 진지한 평가나 분석이 아니라, 아태지역의 주요 지도자들의 한 해를 간략히 일별하고 코믹하게 제목을 붙여 엮어낸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외국 매체들은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로 가볍게 쓴 이런 기사를 종종 내곤 한다. 매체에 실리는 것이긴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랄 것은 없으니, 비틀고 양념을 쳐서 읽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경우도 펀치 라인 비슷한 것은 맨 마지막에 있는데, 청와대는 발표에서 이것을 살리지 않았다. "With friends like these, who needs enemies?" 명색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미국이 이렇게 속을 썩이니 따로 적이 필요없을 지경이라고 농담을 한 것이다. 이 역시 문 대통령을 평가한 게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많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대외 관계를 비교적 잘 풀어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일지라도, 당사자인 청와대가 먼저 나서서 외국 매체의 평가를, 그것도 글의 스타일도 확인해보지 않고 무엇무엇에 선정되었다는 식으로 곡해하고 과장해서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외부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되먹이기보다, 국내에서 좀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걸핏하면 외국 팔아서 몸값 올리려는 추태를 여기저기서 흔하게 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