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년사 13: 의자증 어머니 연결連 이을續 (Series)

이 세상에 평범한 어머니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들은 남에겐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식구, 특히 자식들에게는 모두 특이하거나 이상하거나 위대하거나 끔찍한 존재들이다. '평범한 어머니'라는 말은 모순어법이다.

소년의 어머니도 그랬다.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여자의 비범함을 모골이 송연하도록 인상깊게 느낀 것은, 그녀가 지폐를 반으로 쫙 찢어버릴 때였다.

아버지는 월급을 타면 통째로 어머니에게 맡기고, 필요한 용돈을 그때그때 받아 썼다. 그러니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예컨대 퇴근길에 최씨 아저씨를 만나 들어간 술집에서 바가지를 쓸 때 같은 경우는 곤란하게 된다.

그런 일이 벌어진 듯한 어느 날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저녁 늦게 불콰한 얼굴로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귀가한 게 아니었다. 술값을 갖다 줘야 하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이 말을 듣고 별로 행복하지 않았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뭉뭉한 잔소리와 어머니의 표표한 독설이 공중에서 몇 합 부딪쳤다. 결국 어머니가 서랍을 열고 돈을 꺼냈다. 뜨락에 선 채인 아버지는 취한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지만, 좋아하기는 아직 이르다. 어머니는 옛소 돈 여깄소 하면서 지폐 서너 장을 반으로 확 찢어서 마루 위에 내던진 것이다. 그리고는 미닫이 문을 쾅 닫아버렸다.

소년은 방 안에 있었으므로 이후 밖의 아버지가 어떤 행각을 벌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 참, 돈을 찢고 그래 하면서도 그걸 줍는 기색이 들리고 이윽고 대문 소리가 났고 그 다음엔 조용해졌으므로,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이 이겼다고 믿고 쪼개진 지폐를 갖고 술집으로 2차를 하러 간 것에 틀림없었다.

소년으로서는 이 대결이 누구의 승리였는지는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적을 이루었지만, 어머니는 더할 수 없이 강한 방법으로 불만을 선언했고, 그것도 한국조폐공사에서 만든 법정 화폐를 과감하게 훼손하는 행위를 동원하며 그랬다.

초등학생 소년에게 어머니는 너무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한없이 자애롭고 상냥했지만, 어떨 때는 곁에 가기가 무섭게 쌀쌀하고 날카로웠다. 어머니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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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직전에 소년은 다리를 앓은 적이 있다. 양평 읍내 병원에서 속시원한 설명을 듣지 못하자,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잡아끌고 서울로 올라가서 '제일 용하다는 병원'을 물어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글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가는 길이었다. 지금처럼 경의중앙 전철이 남한강변을 씽씽 달릴 때가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머니는 갈 때보다 올 때 몇 배나 더 힘들었을 것이다. 소년이 병원에서 양 다리에 깁스를 하는 경악스런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환자가 어디 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덕처덕 석고를 바르는 꼴을 옆에서 보면서 어머니는 귀가 걱정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 것인가.

그러나 어머니들은 때로는 마블 어벤져스 히어로만큼이나 초인적이게 마련이다. 소년의 여리여리하고 작달막한 어머니(36세)는 어찌어찌 해서 중앙선 밤 열차에 소년을 선적하고, 한 시간 너머 달려 양평역에서 끌어내리는 데도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흔한 어머니 스토리이다. 이 정도로 비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식칼이 등장하는 끔찍한 본론은 이제부터다.

분명 의사는 깁스를 한 상태로 두 달을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달을 넘기자 어머니는 애가 탔다. 소년 또래 애들이 밖에서 미친 듯이 뛰어노는 것을 보면서, 양 다리를 묶인 채 방에 갇혀 꼬추나 만지고 있는 소년이 앞으로 저들처럼 펄펄 날지 못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대체로 소년의 어머니는 걱정이 많아서 탈이었다. (사실 이것이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이기도 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방에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뜨거운 물이 담겨 있었다. 손에는 시퍼런 식칼이 들려 있었다. 이 여자가 드디어 사람을 잡는구나. 그런데 소년의 어머니가 잡은 것은 소년이 아니라 석고 붕대였다. 어머니는 단단히 응고된 한 쌍의 석고 깁스를 약 두 시간에 걸쳐 해체한 뒤, 젓가락처럼 가늘어진 소년의 두 다리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의사는 성공이라는 데 동의를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식칼이 피부 바로 위에서 (그것도 꼬추 주변에서) 서툰 칼춤을 출 때 소년이 느꼈을 불안함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소년의 초인적인 어머니는 소년에게 작은 상채기 하나 내지 않고 완벽하게 작업을 수행해 냈다.

이 일은 소년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일기장에도 썼다.


(어머니가 웬일인지 오늘은 물로 내 다리에 밖에 입원한 데를 세숫대야에 물을 묻혀버린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좀 새것으로 한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리를 칼로 푼다. 그리고 다리를 오무렸다 폈다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잘 해진다.)


이 인상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의 대상이 식칼인지 어머니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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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년의 어머니의 비범함은 사실 '의자증(疑子症)'에 있었다.

어머니의 의자증을 이해하려면 그녀의 의부증부터 이해해야 한다. 의자증이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소년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상대로 의부증을 가졌으리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일주일에 사흘은 취해서 돌아오는 아버지가 출장이나 비상 사태로 귀가하지 못한다는 전갈이 오면, 어머니와 두 자식으로 구성된 식구는 모두 쾌재를 불렀다. 이 집은 잔치집 분위기다. 아버지라는 존재란 참 쓸쓸하고 재미없는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술만 빼면 부처님이라는 평을 들었다. 어머니가 의심할 만한 일을 벌일 사람도 못 됐다. 그런데도 의부증이 웬 말인가.

어머니는 아버지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 했다. 아니, 도대체 제 시간에 돌아오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지 않은가.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진작에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소년의 어머니에게는 익숙해질 수 있는 불안 같은 것은 없었다. 게다가 어디 갈 데도 없다. 아버지는 집과 직장과 단골 술집을 근면하게 왕래하였으므로, 퇴근이 늦더라도 어디에 가 있는지는 뻔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예정 귀가 시간에서 두어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나서거나 아니면 코흘리개 아들인 소년을 내보내거나, 좀더 심각한 상황이라면 (이를테면 자정이 넘었다든가) 두 사람이 함께 집을 나선다.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하러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도 말했지만 아버지의 소재는 뻔하다. 소년이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 아버지를 찾으러 나설 때 어린 마음에도 짜증이 났던 것은, 그게 귀찮아서라기보다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뻔한데도 구태여 '찾으러' 나가라는, 쓸데없어 보이는 지시 때문이었다.

소년이 나중에 생각컨대, 어머니가 이렇게 무용한 일을 반복한 것은 아마도 술꾼 남편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나 오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긴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불안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가 맨정신으로든 거나하게 취해서든 대문을 열고 들어서야 비로소 안심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것을 의부증이라고 한다면, 그건 어긔야 진 데를 드뎨욜세라의 의부증이 아니라 어긔야 어디서 쓰러질세라 의심하고 걱정하는 의부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런 걱정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이 입증되기도 한다.)

어머니의 걱정증은 다른 식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소년은 해가 떨어진 뒤 밖에 나가 놀아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밤에 나가 노는 일을 엄격히 금했다. 하지만 별이 총총한 여름밤에 수상스레 번화한 읍내나 반딧불이 피어오르는 뒷동산 떼가 덮힌 무덤 위에서 동무들과 노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것이랴.

소년은 딱 한 번 야간 통행금지를 어긴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손전등 건전지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아 전파상을 다녀오는 길에, 밤놀이를 금지하는 폭압적 어머니 따위는 없는 행복한 친구들 한 떼를 만나 그냥 놀아버리고 말았다.

한두 시간 그렇게 놀다가, 소년을 찾는 어머니의 외침이 동네 구석구석에 장렬하게 메아리치는 것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회초리를 실컷 맞고 쫓겨났다. 정상참작도 없었고 심신미약도 무시됐고 피해자와의 합의 따위도 시도되지 않았다. 대문간에서 울고 있는데 어머니(41세)는 지독하게도 문을 덜거덕 걸어잠궈 버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있다가, 옆방 할머니가 애 잡는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줘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지독한 여인이었다.

물론 어머니 입장에서는 한밤중에 두 시간 가까이나 실종되어 애를 태우게 만든 저 아들이 지독한 놈일 수도 있었다.


지독한 모자(상당한 시간 경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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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 하며 스스로 속을 끓였다. 그들이 나쁜 일을 할까 의심하고 걱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줄기차게 의심했다. 사실 그 덕분에 소년의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이 수십 년 동안 큰 탈 없이 잘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지금도 소년의 어머니는 이제 장년이 되어버린 아들이 밤에 제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전화를 한다. 그나마 휴대전화 덕분에 옛날처럼 휘적휘적 찾으러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부모의 성정은 세대가 바뀌더라도 휘발되어 버리지 않고, 대개는 자식에게 전수된다. 자식이 어른이 되어 보면 알게 된다. 아버지를 끔찍이 미워하면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이 되고 있거나,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덧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사람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은 그래서 소년 탓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런 여인의 태반에서 생명으로 자랐고 그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또 그 덕분에 탈 없이 어른이 되는 데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어머니의 지나친 걱정도, 소년의 지나친 걱정도 모두 사면을 받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모자(母子)가 모두 불안을 자초하며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운명이란 게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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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승훈 2018/02/25 12:38 # 삭제 답글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네요.
    이렇게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deulpul 2018/02/25 23:10 #

    함께 즐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 G 2018/02/26 15:03 # 삭제 답글

    '평범한 어머니'가 모순이라면, '의자증 어머니'는 동어 반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eulpul 2018/02/26 20:42 #

    아아,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지혜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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