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신입생들이여, 행운을 빈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다. 이따금씩 와글와글 피어난 초등학생 군락을 만나게 된다. 저희도 나름대로 즐거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초등학교 옆에 중학교가 붙어 있다. 이따금씩 중학생들도 만나게 된다. 귀여운 초등학생들이 몇 년 지나면 징그러운 놈들로 변태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없는 게 다행이다.

이제 곧 3월, 며칠 뒤면 45만 명 넘는 아이들이 새로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십수 년에 걸친 공교육(과 사교육) 과정에 공식 진입하는 것이다. 파릇파릇 여린 그들 앞에 펼쳐질 십수 년 학교 교육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입생 입학을 앞둔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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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은 의무교육 첫 과정이다. 국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독립된 인격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초 소양을 배우게 된다. 이를테면 한글을 쓰고 읽는 능력 같은 것이다.

이제부터 다닐 학교에서 이런 걸 배운다면, 구태여 미리 떼고 입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 많은 사람은 초등학교 신입생이 당연히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선행학습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그러한 강박은 약해졌다.

2014년에 나온 한 기사는 "많은 교사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을 알고 입학한다고 가정한다"라고 했다. 국어 교육과정도 그러한 가정을 전제로 하여 짜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모르고 들어가는 학생들은 배려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학생과 부모 모두 곤혹스런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2016년 서울교육청은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 안에서 기초 한글 교육을 책임지도록 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미취학 아동에게 가해지는 선행학습 사교육 부담을 염려한 탓이다. 한 교육청은 '한글을 몰라도, 덧셈 뺄셈을 몰라도 걱정말고 학교로 보내라'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2017년 초에 발표된 교육부 방침도 비슷하다. '공교육이 책임지는 한글, 교과서에서 철저하게'라는 제목을 붙이고,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학교에서 체계적인 한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단기간에 크게 인식이 바뀌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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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하여, 초등학교 신입생 교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다. 어쩌면 국어,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 모든 것을 남과 나누기
  • 공정하게 겨루기
  • 남을 때리지 않기
  • 쓴 것을 제자리에 놓기
  • 자기 것은 스스로 청소하기
  • 남의 것을 들고 오지 않기
  • 남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기
  • 밥 먹기 전에 손 씻기
  • 변기 내리기
  •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
  • 다양한 활동으로 균형 잡힌 생활 하기
  • 오후에 낮잠 자기
  • 거리에서 교통 안전에 주의하기
  • 경이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기
  •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기
  •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관찰하기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이것은 로버트 풀검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꼽은 내용이다. 여기서 유치원(kindergarten)은 미국의 공교육 첫 해를 의미하므로, 우리로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이다.

너무도 기초적이고 초딩스러운 사항들이지만, 남과 더불어 살면서 꼭 알아야 하고 되새겨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초보적인 덕목이고, 공교육의 출발점에서 습득하여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눈을 떠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초보적인 윤리 덕목을 갖추지 못해 벌어지는 더럽고 추잡하고 유치하고 위험하고 짜증나고 한심하고 불편하고 부당하고 소모적인 일 천지다. 우리가 못 배운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거의 모든 국민이 초등 교육을 접하고, 학력경시대회에서 입증되듯 학습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이고, 국민 문맹률이 0%에 가깝고, 대학 진학률이 70%에 이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어떻게 따져도 못 배운 국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기초적인 소양은 희귀하여, 거리에서 사람들은 서로 욕하기 바쁘고 신문은 초보적인 윤리 의식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매일 가득 찬다. 그러니 이것은 학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아주 어릴 때 배웠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로 공교육에 들어온 초등학교 신입생들은 올 한 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바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된 뒤, 내가 정말 알아야 모든 것은 2018년 그 해, 바로 그 초등학교 1학년 때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들 모두에게 그런 행운이 함께 하기를.


※ 관련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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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rthshore 2018/02/28 02:01 # 삭제 답글

    페이스북에 들풀 님의 입사 소식을 그 매체의 사장이 직접 올렸더군요, 들풀 님의 자기 소개 '너는 누구냐'에 대한 링크와 함께... 지금의 심정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바쁘게 살아야' 할 신입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행운이 함께하기를!
  • deulpul 2018/02/28 10:49 #

    헉 그랬군요... 학교 신입생과 회사 신입사원의 상황을 연결하신 것에 놀랐습니다. 요즘 독자들 센스 지리고요. (초딩 관련 글이라 급식체) 행운을 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HnZ 2018/02/28 17:10 # 삭제 답글

    제 딸도 한글 모르고 초등학교 들어가서 고생 좀 했습니다.
    그리고 오타 하나 있습니다; 초등 입학생이 250만이 아니고 25만이겠지요.
    덩달아 입사 축하드립니다.
  • deulpul 2018/02/28 17:59 #

    앗, 어디서 보고 옮겨 적은 것인지 대체... 초등학교 신입생은 2017년 기준으로 46만 명 가량 된다고 합니다. 링크를 달지 않고 대충 옮기다 보니 숫자 착오를 한 모양입니다. 지적 감사하고 인사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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