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언론, 찌라시 의원 때時 일事 (Issues)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월19일 국회에 나갔다가 혼이 날 뻔했다. 자신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선 사람이 성폭력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시인 고은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문제가 거론되기를 바라는 간질간질한 마음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바로 밑에 있다.)

주장을 제기한 사람은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이날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을 언급하면서 "도 장관은 (성폭력 의혹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나"라고 질의했다. ...

전 의원은 그러면서 "도 장관의 결혼식 주례를 고은 시인이 서줬다고 하던데, (문체부에서) 이 사안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자기 주례를 선 사람을 상대로 하여 성폭력 혐의를 조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표현이 특이하다. "주례를 서줬는데"라고 하지 않고 "주례를 서줬다고 하던데"란다. 다시 말해, 확인해본 사실은 아니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는 말투다.

이에 대해 도 장관이 내놓은 대답은 이렇다.

도 장관은 "사실을 확인하고서 질의를 하는 것이냐"라며 "제 결혼식 주례는 신부님이 섰다. 고은 시인은 주례를 선 적이 없는데 주례를 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즉각 반박했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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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의원은 어디서 뭘 보고 이런 이야기를 국회 석상에서 당당히 내놓았을까. "언론 보도를 보고 말씀드린 것이다"라고 한다.

도종환의 주례를 고은이 섰다는 언론 기사는 검색으로 찾아보면 딱 하나 나온다.




<부산일보> 온라인판에 3월8일자로 실린 기사다. 이 기사는 지금은 없어졌다. 하지만 내용은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도종환 장관-고은 시인 과거 인연 관심집중 '주례-재단이사-축제위원장'
온라인이슈팀 기자 issue@busan.com

입력 : 2018-03-08 [16:27:25]
수정 : 2018-03-08 [16:27:25]

'미투운동'이 거세고 연일 메가톤급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미투' 이슈의 중심에 섰던 고은 시인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과거 인연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은 시인은 도종환 장관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도종환 장관은 과거 고은 재단 이사를 맡았으며 2016년엔 고은문학축제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도종환 장관이 고은 시인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문학계 인사 '미투' 폭로에 대해 입장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혹시 개인적 친분과 인연 때문에 침묵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또다른 누리꾼들은 "주례 등 과거 인연을 끌고와 연결시키는 것은 명예훼손이자 무고일 수 있다"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이슈팀 issue@


보시다시피 쓴 기자도 없고 기사 내용의 출처도 없다. 그냥 "알려져"다. 이 세상 어느 저널리즘도 이런 꼴을 한 글을 보도기사라고 하지 않는다.

7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 지역일간지 중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찍어내는 신문이 이런 불량 상품을 버젓이 만들고 있다. 그런 것이 21세기 초 한국 언론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 둘 만하다.

<부산일보>는 20일 오후에 "도종환 문체부 장관의 주례는 고은 시인이 아니기에 바로 잡습니다"라는 정정문을 냈다. 단일 사안은 그렇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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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유감 표명을 하고 기사도 내렸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장관에게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 했는지 궁금하다.


(전희경 의원 블로그에서)


언론이 취재 행위와 보도기사 모두에서 막장의 모습을 자주 보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회까지 따라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국회 회의는 국민에게 전해지고 역사에 기록되는 현장이다. 그런 무게 있는 자리에서 메가톤급은 아니더라도 수류탄 정도는 충분히 되는 폭발력을 가진 발언을 꺼내 놓으려면, 최소한의 확인은 했었어야 할 것이다.

그 확인 과정은 의원실에서 커피를 한 잔 타마시는 것보다 빠르고 쉬웠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그런 최소한의 품조차 팔지 않고 불량 주장을 버젓이 내놓고 있다. 그런 것이 21세기 초 한국 정치의 모습이라는 것도 잘 기억해 둘 만하다.


[덧붙임] (3월21일 03:00)

위에 쓴 이야기는 해당 사실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사소한 해프닝 같은 이 일을 둘러싸고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이 종횡으로 엮여있나를 깨닫게 된다.

1. 전희경 의원이 한 발언은 정확히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고은 시인이 우리 도 장관님의 결혼식 주례도 서주셨고 고은 재단 이사도 우리 도 장관님이 하셨고 또 2016년 고은문화축제 위원장도 하셨기 때문에 이게 정밀하고 불편부당하게 조사가 될까 염려하고 계시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전희경은 고은이 도종환의 주례를 섰다고 단정하고 있다. 위의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그래도 어디서 들은 것처럼 말한 것으로 옮겨져 있는데, 실제로는 단정하고 말한 셈이다. 죄질이 (혹은 잘못의 정도가) 훨씬 나쁘다고 할 수 있다.

2. 연합뉴스는 취재원이 실제로 말한 내용을 의미하는 겹따옴표를 치고도 그 안에 실제 발언이 아니라 대충 비슷한 내용을 집어넣었다. 한국 언론은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직접 인용문은 취재원 말을 그대로 인용해야 옳다. 이렇게 진위 여부를 따지는 미묘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죠. (예전에 쓴 관련글)

3. 다시 전희경 의원으로 돌아가서, 도종환 장관이 고은 주례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니, 자신은 언론에서 봤다는 변명을 반복한다.

나는 전 의원이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두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말은 어떻게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사실이 아닐지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이면 덮어놓고 진짜라고 믿는 부류에 의해 가짜뉴스(이 경우는 오보지만)가 확산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4. 한 기사는 고은 주례설을 퍼뜨린 사람으로 탁수정을 지목한다. 다음의 트윗 때문이다.




탁수정이 트윗을 낸 날짜는 3월7일이고 위 부산일보의 날림 기사는 3월8일자다. 탁수정의 소스는 사석에서 누군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탁수정은 19일 국회에서 전희경-도종환 공방에 의해 고은 주례설이 거짓임이 밝혀진 뒤,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 줄 알고 올린 것을 반성한다는 트윗을 냈다.

명색 사회활동가가 한 공직자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도 있는 주장을 근거도 없이 버젓이 퍼뜨리고 있다. 그런 것이 21세기 초 한국 사회활동의 모습이라는 것도 더불어 잘 기억해 둘 만하다.

이렇게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여러 영역의 인간들이 실제로 벌이는 행각을 보노라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체질화된 날림 의식이 추동하는 총체적인 부실 사회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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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pb shelley 2018/03/21 13:21 # 삭제 답글

    조금 비슷한 일을 몇 년 전에 겪은 일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지인들과 얘기 나누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 학생들 데리고 부모님 얼마나 사시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대다수가 63세라고 했답니다. 은퇴한 다음에 퇴직금 받고, 봉양할 필요 없이 빨리 죽으시라고."

    말만 들으면 정말 모질고 야비한 생각인데, 사실 제 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바로 수긍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결과를 받아낸 설문조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검색해 봤더니 부모님 세대들이 이용하는 다음 카페 같은 곳에 비슷한 말로 재생산 된 글들만 있을 뿐, 원출처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대신 오유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이런 비슷한 소문이 장년층 사이에서 돌고 있는 걸 봤다는 글을 몇 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해외에 살고 계시는데, 그쪽 한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았다는 건 이미 어르신 세대에 걸쳐 많이 퍼졌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구글 검색 결과는 이 ‘루머’의 소비자들이 (그리고 주된 소비자로 보이는 장년층이) 이 루머를 단순히 농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서울대, 부모, 63”이라고 검색을 하면 뜨는 페이지들의 제목은 하나같이 부정적인데요, “서글픈 부모 이야기” “부모가 63세까지만 살았으면” 더 무서운 제목들도 있고, 반응은 “다 쓰고 죽으란다” “자식을 조심합시다”와 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다가 출처에 가까워 보이는 것을 찾았는데요, 하나는 이문재 시인이 경향일보에 연재하던 칼럼이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92041425&code=99010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이 글에서 시인이 최근 <녹색평론>에서 읽은 한 좌담을 인용하면서 위의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역시 도전적인 "스마트폰과 아이들,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이 붙은 문제의 좌담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아이건강국민연대"와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라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대화를 실은 것인데, 거기서 아이건강국민연대 김민선 사무국장이 그 말을 했더군요. 물론 여기서도 설문조사의 주체나 시간 질문의 내용, 원출처, 이런 것들은 명시되어 있지 않고요.

    물론 좌담과 칼럼이라는 기사의 성격이 엄격한 출처 제시와 사실 확인을 요구하기에는 힘들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식으로 생산된 '사실'이 엄격한 저널리즘을 거친 기사들에 실린 사실과 별 차이 없이, 어쩌면 더 자극적이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층에서 두루뭉실한 '꼰대,' "틀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지하철에서 자리를 내놓으라고 소리 치는 노인들의 서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명확한 대상 없는 분노를 형성하고 (약간은 이상한 방법으로) 즐기는 것처럼, 기성 세대에서는 이런 식의 "싸가지 없는" 젊은층에 대한 서사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게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 언론매체가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인 것 같아요.
  • deulpul 2018/03/25 21:47 #

    아주 흥미로운 사안이 있었고, 그걸 또 열심히 추적을 하셨군요. 말씀하신 칼럼과 대담은 모두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해서 저도 shelley님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분명 내용과 그것이 회자되는 방식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식과는 다른 솔깃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은 언제나 더 눈에 띄고, 그래서 예컨대 종편 패널로 나오는 이들은 누가누가 더 자극적인가를 놓고 무책임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꼴이 늘 벌어지지만, 사실이기에 너무 좋은 일은 대개 사실이 아니고, 사실이기에 너무 황당한 일은 대개 그냥 황당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죠.

    근거가 없거나 적거나 왜곡된 자극적인 것들이 말씀대로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전파되는 세상, 그런 정보 조각들로 인해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거나 강화되는 상황은 난감하고 실망스럽긴 합니다만, 역시 누군가가 끊임없이 바로잡아주고 거짓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본질적인 언론의 기능이기도 한데, 말씀대로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독립 포스팅이 되고도 남을 장문으로 소중한 경험과 생각을 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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