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블루를 좋아한 게하 살인자 말씀言 말씀語 (Words)

앞의 글 '이런 여자 (再)'에서 예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낸 이유는 한 칼럼 때문이다.

[기자의 시각] 성범죄 화약고 '파티 게하'

지난 2월 초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기자 칼럼이다. 사건이 난 지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칼럼이 나온 것도 특이하지만, 영화 <베티 블루>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눈에 띈다.

'베티블루 37.2.' 1986년 개봉한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건 최근 범인의 자살로 끝난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살인범 한정민(33)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베티블루 37.2였다. 블로그 아이디도 'jeju372', 키우던 개 이름도 베티였다.

이런 이야기는 사건 직후 흘러나와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한정민이 운영한 것으로 보이는 쏘쏘 게스트하우스 블로그의 상단 배너는 <베티 블루>의 두 가지 포스터에서 일부를 잘라와 만든 것이다. 그가 이 영화를 좋아했음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도 이 영화를 좋아한다. 그럼 나도 살인자의 취향이 있는 것일까?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영화에 반한 사람들,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럼 이들도 모두 예비살인자일까?

김정은도 쌀밥을 먹고 나도 쌀밥을 먹는다. 그럼 나는 북한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종북주의자일까?


--- ** --- ** ---


이런 황당한 질문을 잠시 접고 기자 칼럼을 더 읽어보자.

게스트하우스 메인 페이지에도 '설렘의 체온 37.2'라고 적혀 있다. 영화 속에서 섭씨 37.2도의 의미는 임신이 가장 잘되는 온도다. 남자 주인공 조그는 사랑하는 여주인공 베티를 목 졸라 살해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해당 기자는 '1986년 개봉한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건'이라고 했지만, 러닝 타임(감독판)이 세 시간을 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제대로 보았다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섭씨 37.2도의 의미는 임신이 가장 잘 되는 온도다"라고 한다. 일단 비문이 눈에 거슬리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가 없다. 영화 제목에 쓰인 37.2도가 임신이 가장 잘 되는 온도임을 의미한다는 말은 인터넷에서 서로가 서로를 출처로 삼으며 도시전설처럼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37.2도라는 말은 '영화 속에서'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 프랑스 영화(그리고 원작 소설)의 원래 제목이 <37° 2 le matin>(아침에는 37.2도)였을 뿐이다. 영어 문서 대부분은 이 말이 '임신한 여자의 평균적인 아침 체온'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신이 잘 되는 온도라는, 조선시대 사대부집 시어머니나 관심 가질 만한 의미가 아니라 말이다.

사족이지만, 여성의 기초체온 주기에 따르면, 배란기 이후 여성의 체온이 평소보다 상승하는 기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기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임신 가능 기간, 어떤 사람들에게는 임신 위험 기간이 되겠지만, 체온이 어떨 때 임신이 잘 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임신한 여성이 가장 임신이 잘 된다는 말도 성립한다.

프랑스어 문서는 소설과 영화에서 쓰인 37.2도의 의미를 "여성이 배란기이거나 임신했을 때의 기초 체온"으로 쓰고 있다. 이렇게 서술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이 부분을 짚어보고 있는 것은, 기자의 칼럼이 '베티 블루를 좋아한 한정민은 여자를 임신시키고 싶어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임신하고 싶어하는 것은 남주인공 조그가 아니라 여주인공 베티다. 임신이어서 행복해하다가 임신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미치기 시작한다. 임신으로 가는 과정이 강압적이지 않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와 한정민의 범죄 사이에 어떤 연관도 설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 ** --- ** ---


기자 칼럼에는 그보다 더 황당한 부분이 있다. "남자 주인공 조그는 사랑하는 여주인공 베티를 목 졸라 살해하며 영화는 끝난다"라고 한 부분이다.

우선 남주가 여주를 '목 졸라' 살해한 것이 아니다. 정말 영화를 봤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쓴 것은 한정민이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것과 억지로 연관시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가 베티를 죽인 것은, 영화에 묘사된 표면적 행위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는 것만을 서술하는 일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위해서 기자까지 될 필요는 없다.

조그가 베티를 죽이는 것은 베티에게도, 조그에게도, 그리고 보는 사람에게도 아주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베티는 가지지 못한 것(이것은 물질이라기보다 이상과 염원 같은 것이다)을 가지려고 하는 열정으로 끓어오르다 못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결국 자해까지 하는 상태에 이른다. 정신병원에 갇힌 베티를 본 조그는 절망한다. 자신에게는 언제나 정상이었던 베티가 병동에 수감되어 구속 침대 위에서 넋나간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주먹 분량의 약을 먹으며 말이다. 이것은 조그가 바란 베티의 삶이 아니고, 베티가 의식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먼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겉으로만 본다면, 혹은 감독판으로 세 시간, 개봉판으로 두 시간 분량인 영화에서 다 건너뛰고 마지막 10분만을 본다면, 이것은 그냥 남자가 여자를 살인하는 행위일 뿐이다.

기자가 이해하고 서술한 데 따르면, 조그는 한정민처럼 베티를 임신시키기 위해 강간을 하고 목을 졸라 죽여버린 살인범이 되어 버린다.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열정적이고 절망적인 두 사람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갑자기 엽기적인 살인극으로 전락한다.

맥락을 빼놓는 일은 이렇게 유치하고 위험하다.

기자는 37.2도에 대한 손쉬운 해석, 팩트조차 틀린 영화 읽기, 맥락 없는 현상 묘사 같은 것을 늘어놓은 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라고 한다. 한정민이 나쁜 놈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가 <베티 블루>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칼럼을 썼을지 생각하면 나도 소름이 끼친다.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