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는 정말 시절을 아는가 섞일雜 끓일湯 (Others)



식목일 밤에 봄비가 내립니다.

다음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입니다.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 내릴 시절을 아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을 맞아 베풀어 만물을 소생케 하는구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을 따라 가만히 밤에 내리며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만물을 적시면서도 가늘어 소리도 없네
野經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에는 구름이 다 어둡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의 배에는 불이 홀로 밝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이 되면 붉게 젖은 땅을 보리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도 꽃이 많이 피었으리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첫 줄과 일곱째 줄입니다.

"새벽이 되면 붉게 젖은 땅을 보리니"... 밤새 비가 조용히 내리고, 그 여린 비보다 더 가녀린 꽃잎들이 땅에 떨어져 붉게 젖은 땅이 되었습니다. 벚꽃이 질 때쯤 비가 내리면 이런 홍습처를 보게 된다는 것을 우린 다 알고 있지요. 봄비는 만물을 발생시키고 소생케 하지만, 이렇게 거두어 가기도 하는군요.

"좋은 비, 내릴 시절을 아니"... 무상한 비에 시인의 감정이 이입되었습니다. 싹과 잎을 키워내기 위해 일제히 안간힘을 쏟는 대지의 식물들에게 너나없이 풍성한 자원을 공급해주니 착하고 좋은 존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걸 소박하고 간단하게 '좋은 비'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말, 때를 아는 것은 얼마나 큰 미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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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5일은 식목일입니다. 2005년까지는 공휴일이었다가 2006년부터 제외되었습니다.

공휴일일 때는 봄나들이하기 좋은 휴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식목일 때는 꼭 비가 옵니다. 나들이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해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무를 심고 나서도 그렇고, 새로 나무를 심은 것처럼 새 생명이 용솟음치는 4월 초의 대지는 풍부한 비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시절을 잘 알고 오는 비 같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좋은 봄비는 정말로 시절을 아는 것일까. 몇 가지 통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한국(남한)을 대표할 지리적 중심지를 선정한다.

자연 현상에 대한 고찰이므로 자연지리적 대표지가 필요합니다. 서울 같은 특정 지역을 인위적으로 골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도시를 무작위로 뽑는 것이 좀더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지리적 평균, 즉 한국의 지리적 중심지를 골라 그곳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지리학 논문(pdf, 클릭하면 자동 다운로드됨)에 따르면, 섬들을 뺀 내륙 남한의 지리적 중심지는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입니다. 이곳은 기상 조사를 따로 하지 않으므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청주를 기준 지역으로 삼습니다.

(이미지: 위 링크한 논문에서)


2. 기준지에서 과거에 식목일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조사한다.

기상청 기후자료 웹사이트에서 날짜별, 도시별 강수 자료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29년 동안 식목일에 비가 내린 상황입니다. 수치 '2'는 식목일 당일에 비가 온 해이고 '1'은 앞뒤로 하루씩인 4월4일이나 4월6일에 비가 온 해입니다.

앞뒤 하루씩 여유를 둔 것은, 강우의 특성상 시간적 연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기 위함입니다.

결과는, 청주에서 29년 기간에 식목일 당일에 비가 온 해는 8개년(27.6%), 4일이나 6일에 비가 온 해는 10개년(34.5%), 식목일 전후 사흘 동안 전혀 비가 내리지 않은 해는 11개년(37.9%)이었습니다. 해마다 비가 온 것 같은데, 실상 그렇지는 않구나...

3. 식목일 시기에 비가 연중 다른 시기보다 많이 온 것인지 비교해 본다.

비교를 위해 1년중 비오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지역별 연중 강수일수 자료는 기상청 한반도 기후통계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주 지역에서 지난 28년(2018년은 아직 미정) 동안 1년중 비가 온 날수의 평균은 112.3일입니다(그래프에서 빨간 줄).

따라서 무작위 추출한 한 해의 특정한 날이 비가 오는 날일 확률은 112/365*100 = 30.7% 입니다. (눈 오는 날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값을 기준으로 해서 식목일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1) 29년간 식목일(4월5일) 비 온 비율 = 27.6% < 30.7%
2) 29년간 4월 4~6일 비 온 비율 = 27.6% + 34.5% = 62.1% < 30.7% * 3 = 92.1%

그러니까 식목일이라고 해서 다른 때와 달리 꼭꼭 비가 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좋은 비인 줄 알았더니 별다른 생각이 없는 무심한 비네? 식목일엔 늘 비가 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람의 느낌과 실제 사실은 이렇게 다른 모양입니다.

하지만 식목일이든 춘분이든 청명이든, 봄에 내리는 비가 꽃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좋은 비인 것은 틀림없겠지요.

춘야에 소소히 내리는 희우를 창으로 내다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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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rthshore 2018/04/09 13:19 # 삭제 답글

    두보의 춘야희우가 실로 가슴을 울립니다. 나이 들어 읽으니 그 감회가 더욱 남다른 듯합니다. 좋은 봄비는 정말로 시절을 아는 것일까, 라는 작은 의문을, 이렇듯 꼼꼼한 과학 자료와 통계에 견주어보는 그 발상의 참신함에 새삼 감탄합니다.
  • deulpul 2018/04/11 19:34 #

    신체연령 25세이신 분이 나이 들었다니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하. 이 시는 두보가 50세쯤에 지은 것이라고 하니, 유치하게 난삽하고 화려하지 않아 소박한 공감을 주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 Evermarquez 2018/04/10 00:01 # 삭제 답글

    이글루 앱을 깔고 보니 이렇게 편리하다니요^^ 아주 오래전 에 이글루 블로그를 썼었는데 갑자기 향수에 젖는 추억까지~
    들풀님 글은 잠들기전 음미하는 편안한 수필입니다. 감사드려요.
  • deulpul 2018/04/11 19:35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어쩐지 주최측의 스멜이... 는 물론 농담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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