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함께라면 더 좋아요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목요일 서울 안국역 근처에서 흥미로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트레바리 책읽기 클럽.

트레바리는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운영중인 기업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주제를 놓고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열어,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돈만 내면) 참여하여 함께 읽고 쓰며 생각하는 모임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사업 내용입니다.




트레바리에 개설된 클럽의 주제는 200개가 넘습니다. 인문, 사회과학, 미디어, 문화, ICT, 먹는 것, 입는 것, 돈 버는 것 등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관심사(와 그에 대한 책이 있는 경우)가 모두 주제가 됩니다.

프로그램은 넉 달을 단위로 하여 돌아가는데, 클럽을 이끄는 좌장이 있는 경우는 29만 원,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는 클럽은 19만 원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인데도 수천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게 되었던 것은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가 1~4월에 진행했던 '솔루션 저널리즘'의 마지막차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대화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미디어 덕후라고 말하는 이 대표를 비롯해 언론과 미디어 일반에 뜨거운 관심을 가진 참석자들이 토론하는 자리에 끼어, 짦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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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는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핵심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것처럼 보입니다. 책을 정해 함께 읽고 그에 대해 토론합니다. 하지만 쓰기도 중요합니다. 읽은 책에 대해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 필수 과제라고 합니다. 읽기에서 쓰기로 이어지는 방식도 의미 있다고 생각되고, 오프 모임에서 평등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독서 토론!

어떤 말이 가지는 무게나 울림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고 저 넉 자도 마찬가지겠지요. 제게 저 말은 아주 큰 무게와 울림이 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기인 고등학교 3년 동안 제 생활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도서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독서 토론(과 고서 먼지 털기...)을 했던 것은 제 인생에서 아주 값지고 소중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두어 해 전, 가을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는데 독서주간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광장 주변으로는 부스들이 주욱 설치되었습니다. 대부분 출판사 같은 곳에서 만든 부스였는데, 그 중 하나에 '휘경여고 도서부'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는 겁니다.

마치 김유신의 말이 주인을 이끌고 들어가듯, 제 발은 저절로 저를 그 부스로 데리고 갔습니다. 안에는 도서부 학생들과 지도 선생님이 계셨는데, 선생님과 인사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게는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위에 대한 원초적 애정 같은 것이 있는 셈이지요.

그런 행위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스트 참여 마지막에 소감을 말해보라고 해서, 세상은 넓고 징그러운 사람은 많음을 새삼 깨달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트레바리 모임은 7시40분에 시작해서 11시30분에 끝나는 방식입니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렸을 텐데, 이렇게 찾아와 밤늦도록 책과 세상에 대해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진정 징그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요.

트레바리 클럽들은 종종 번개도 하는 모양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북클럽도 쫑번개를 한다는데, 추첨으로 번추위장을 뽑았더니 제가 뽑혔습니다. 이건 운명인가... 여느 때 같으면 옵저버는 빼달라고 떼를 썼겠지만, 김유신을 싣고 다니던 말의 기상을 속으로 떠올리며 기쁘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봐야 날짜, 장소 정해서 공지하는 정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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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공동체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대신 온라인에서 공동체가 생겨났지만, 페친, 트친에서 볼 수 있는 관계 중심주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과도한 휘발성 때문에, 원래 의미의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생각,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만 모여 서로를 추켜주며 편향을 확대재생산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좀더 근본적이고 좀더 이성적인 검토를 함께 해 보는 지식 공동체, 관심 공동체들이 많이많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혼자 볼링하기: 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부활(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 서로간의 연결로 구성되는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다 혼자 놀게 되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2000년인데, 4년 뒤에는 새로운 책을 내놨습니다. 제목은 <함께라면 더 좋아요: 미국 공동체 회복하기(Better Together: Restoring the American Community)>였습니다.

함께 해서 좋은 게 어디 볼링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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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rthshore 2018/05/04 01:56 # 삭제 답글

    들풀 님이야말로 저 트레바리의 한 그룹을 충분히 이끌 만할 것 같은데요. 트레바리로서도 큰 도움이 될테고... 아무튼 저 비즈니스 모델은 퍽 흥미롭더군요. 즐겁게 만나고 즐겁게 토론하시길!
  • deulpul 2018/05/04 16:15 #

    과분한 말씀! Northshore님이야말로 종종 들어오셔서 중요하고도 알기 어려운 전공 분야를 좀 풀어놓으심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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