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아재들 망친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친구들과 회식을 하러 가면 곤란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 젓가락질을 하던 일행 중 일부가 맛이 없다고 타박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기는 냉동이라서 문제고 생선은 수입산인 데다 덜 마르거나 더 말라서 문제고 탕이나 찌개는 뭐가 안 들어갔거나 뭐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문제다. 슬슬 불만으로 시작되던 비평은 곧 비분강개로 비화한다. 어떻게 식당에서 이런 음식을 돈 받고 파느냐! 손님을 뭘로 보고 이런 음식을 내오느냐!

사람 입맛이란 취향처럼 다양할 수 있어서,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내가 맛맹에 가까운 입맛을 가진 탓인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렇게 못 먹을 음식이 별로 없다. 설령 모두가 맛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정말 형편없다 하더라도, 임금님 수라상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끼 먹는데 그렇게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는가 싶다.

하지만 비분강개파는 이제 주인을 부르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 끔찍하게 싫어서, 친구들을 말린다. 그냥 대충 먹자, 마음에 안 들면 다음부터 안 오면 되잖아. 하지만 친구들은 굳이 주인을 불러 싫은 소리를 한다. 이럴 땐 흔히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그 말투가 사용된다.

주인보다 내가 먼저 기분이 상한다.

1.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 중 일부가 음식을 놓고 타박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맛이 없다고 수선을 피우니 입맛이 싹 달아나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계속 먹다가는, 못 먹을 음식을 주워먹는 우둔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 제 입맛으로 다른 사람이 밥 떠먹는 행위를 통제하는 결과가 벌어진다. 민폐가 아닐 수 없다.

회사 사람들과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때, 개인별로 나오는 된장국에 집게벌레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 식당은 전에도 벌레가 나와서 회사 사람들 사이에 유명해진 집이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가끔 가곤 했는데, 그 날 또 벌레가 나왔다. 나는 일행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인을 불러 내 국그릇을 건네주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젓가락으로 그 안에 벌레를 가리켰다. 주인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국을 가져가고 새 국을 떠왔다. 나는 그 국을 먹었다. 일행 중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흉물스런 벌레가 들었음을 발견했을 때부터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고 나서까지 계속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국그릇 안의 벌레를 놓고 호들갑스럽게 문제를 삼고 싶지 않았다. 같은 솥에서 나왔을 국을 다들 이미 먹고 있던 터다.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고 그냥 다들 기분만 상하고 소화만 안 되었을 것이다. 국뿐 아니라 식탁에 올린 모든 음식이 찜찜할 것이다. 그냥 잘 먹는 게 더 낫다. 주인도 마찬가지다. 시끄럽게 화를 낸다고 해서 주인이 더 반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성하고 조심할 사람이면 조용히 지적해도 그럴 것이고, 아니할 사람이면 식당을 들었다 놔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뒤로는 그 식당에 가지 않았다. 그러면 된다.

벌레가 든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불만을 갖고 불평을 할 만하다. 맛이 있고없고는 그렇게 객관적이지는 않다.

2.

고객은 왕.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도 서비스업 곳곳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저 구호. 돈을 받고 밥을 파는 것은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거래 행위다. 거래 당사자인 식당 주인, 종업원, 손님은 원칙적으로 각각 자신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만 받을 수 있다. 예컨대 5천 원짜리 짜장면을 팔면서 2만 원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상식인 것은 누구나 알면서, 5천 원을 내면서 왕의 대접을 받으려 하는 것이 비상식임은 왜 납득되지 않는 것인가.

'고객은 왕' 이데올로기를 전수받고 체화한 사람들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사는 계약 행위로부터 상대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갑의 권력이 획득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옆에서 보기 괴롭다.

3.

실제로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있다. 실제로 꼭 들어가야 할 재료가 빠졌을 수도 있고, 좀 저급한 재료가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음식을 평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동네, 어떤 식당에서 얼마짜리 음식을 먹고 있는지 상기할 필요가 좀 있다. 이를테면 남원이나 순천이나 고성에서 먹는 음식의 맛과 재료와 값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 한복판 식당에서 나온 음식을 평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호텔에서 나오는 음식의 퀄리티를 기준으로 동네 고기집을 평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음식의 추억과 혀의 기대는 강고한 것이라서 그런지, 자기가 어디에서 어떤 값으로 무엇을 먹고 있는지 종종 잊게 되는 모양이다.

4.

내 친구들은 원래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잘들 먹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식당가면 타박을 하고 주인을 부른다.

이게 식당들이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음식을 못 만들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들이 점점 더 용감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적질을 하기 시작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폭압 밑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허덕이는 시대다. 자고 나면 식당이 생기고 자고 나면 식당이 없어진다. 음식을 만드는 재능이 없는 사람들, 좋은 식재료를 알아보거나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 품질보다 돈벌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식당을 운영하는 시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집들은 대개 그럭저럭 입소문이 난 곳이다. 그런데도 친구들의 불만 공세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친구들의 입맛이 점점 더 높아지거나, 아니면 얼굴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것이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종을 다루듯 정중함과는 거리가 먼 태도로 종업원이나 주인을 불러 따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프다. 저 자식들은 저렇게 나이들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5.

또다른 가능성도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텔레비전이 인간을 망치는 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식당을 찾아다니며 맛을 평하고 지적질을 하는 것을 컨셉으로 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니, 음식이 (벌레나 머리카락이 들어서가 아니라) 맛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가 유별나지 않게 생각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그냥 대충 먹으라고 했더니 한 친구는 '주인에게 당신이 만드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위대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나 싶다. 그런 지적질은 백종원이나 하게 냅두는 게 좋겠다. 백종원이 하는 일이 의미가 있더라도 그런 사람은 한 명으로 족할 것 같고, 적어도 나랑 같은 밥상을 받은 자리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안 먹을 수도 없게 만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음식보다 훨씬 소중하고 반가운 것들도 많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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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도리 2018/05/02 13:07 # 답글

    항공사 오너일가는 갑질한다고 욕하면서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그런 행동을 하고싶어하는것같기도 해요.
  • deulpul 2018/05/03 02:13 #

    갑질이란 사실은 인간 사이에 권력을 행사하는 한 양상이고 사람은 대체로 권력을 추구하게 마련이므로 납득이 되는 말씀입니다. 다만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기존의 갑질이 멀쩡한 사람들을 상대로 학습시키는 효과를 내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 2018/05/02 17: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5/03 02: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G 2018/05/02 17:26 # 삭제 답글

    어린시절 PC방을 좋아했습니다. 사실 PC게임은 집에서도 할 수 있었는데, PC방은 게임을 위한 장소라기 보다도 그저 친구들과의 놀이터였습니다. PC방에서는 너도 나도 프로게이머였죠. 국회의사당 못지 않은 열띤 토론 분위기에 너도 나도 한마디 보탰던 기억이 납니다.

    아재들의 음식타박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deulpul님께서 목격하신 그 현장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글쎄, 미각의 민감함 내세우며 서로 웃고 떠들며 교류하는 모양새는 아니었을까요? 아내에게 억압되어(?) 거의 봉인되어버린 음식에 대한 취향- 그렇게 각자 잠시 잠깐이나마 백종원, 황교익, 유명 쉐프가 되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에 돌아가면 다시- 아내의 라면 한그릇에도 감사하는 그런 귀여운 아재들은 아니었을까나? 그런 모습이었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 deulpul 2018/05/03 02:21 #

    그렇게 백종원 놀이였다면 저도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정색을 하고 주인을 불러 이것저것 지적을 하며 맛을 보게까지 하는 지경이면 주객이 모두 기분좋을 수가 없게 되지요... 일단 이런 판이 벌어지면 저는 그 집을 나올 때까지 아주 불편해지고, 옆에서 그렇게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 것도 함께 불편해집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다 소박한 친구들이긴 해요, 하하.
  • Northshore 2018/05/04 02:02 # 삭제 답글

    한국에 가끔 들어갈 때마다 크게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심란하기 짝이 없었던 것은, 그 소위 '먹방'류의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홈쇼핑의 범람에 못지않은 먹방의 쓰나미더군요. 페이스북을 하면서도, 참 페친을 끊고 싶어지게 만들 만큼, 정말 지나치게 자주, 이 사람들은 먹으려고 사냐, 자기 먹으려는 음식을 자랑하려고 사냐 새삼 의심스러울 정도로 '음식 포르노'가 넘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고요 (그렇다고 음식 사진 좀 그만 올리쇼, 라고 쓰기도 그렇고...). 심지어 어떤 경우는 음식을 3분의 2쯤 먹고난 상황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어요, 이건 뭐...! 먹는 것에, 특히 고급진 음식에, 한국 사람들이 거의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지금도 그런 느낌입니다. 아무튼 들풀 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새삼 또 심란해집니다.
  • deulpul 2018/05/04 16:23 #

    ㅎㅎ 충격이란 말씀이 잘 이해됩니다. 이른바 먹방뿐이 아니에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먹습니다. 채널 어디를 틀어도 뭔가를 떠서 입으로 꾸역꾸역 넣는 장면을 피할 수가 없어요. 명대사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가 저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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