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대전 2: 댓글을 없애는 매체들 때時 일事 (Issues)

순서:

1. 박정엽 기자는 괴로웠다
2. 댓글을 없애는 매체들
3. 댓글은 절대선인가요?
4. 국정원, 십알단, 드루킹
5. 드루킹은 처벌돼서는 안 된다?
6. 현대 민주주의의 사형집행인들
+ 포털의 뉴스를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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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에 미국의 대중과학 잡지 <파퓰러 사이언스>(이하 PS)가 홈페이지에서 댓글을 없애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은 놀랐다. 당시 댓글은, 기사에 나온 내용에 대해 독자가 토론하고 소통하며 숙의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오해된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공간을 전면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이러한 조처를 전격 단행하면서 PS가 낸 '우리가 댓글란을 없애는 이유'라는 글에 잘 나와있다.


댓글은 과학에 나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PS 웹사이트에서 댓글란을 폐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141년 전통을 자랑하는 과학기술 잡지의 웹사이트로서, 과학의 언어를 널리 전파하는 것 못지않게 활발하고 지적인 토론을 촉진하는 것 역시 우리의 임무입니다. 문제는 트롤과 스팸봇이 후자(토론)를 장악하면 전자(과학 언어의 전파)를 수행할 능력이 축소된다는 것입니다.

짜증나는 댓글러가 모이는 것이 우리 웹사이트만도 아니고, 또 우리 웹사이트에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모두 인터넷 이용자의 저열한 집단, 허황되고 상스러운 이야기나 늘어놓는 이들도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가 보여주듯, 몇 안되는 댓글이라도 기사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왜곡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습니다. ... '조야한(uncivilized) 댓글은 독자를 극단화시킬 뿐만 아니라 뉴스 내용 자체에 대한 독자의 해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죠.


PS가 특히 염려한 것은 이 매체의 근간이 되는 내용, 즉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에 대한 기사에 이런 uncivilized한 댓글이 붙을 때, 많은 독자가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었다. 근거없고 일방적인 공격이 댓글로 달리면 독자들은 과학적 사실을 믿지 않거나 오해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상식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PS는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 이 매체가 수행해온 원래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허물어뜨린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악플 → 여론 오도 → 잘못된 정책 → 잘못된 자원 배분]의 과정을 통해, 소중한 연구 자원이 허투루 쓰이고 낭비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통찰이었다. 댓글 폐쇄를 알리는 공지문이 '댓글은 과학에 나쁠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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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 날 이 소식을 남의 일처럼 뉴스로 전한 미국 공영방송 NPR은, 3년 뒤인 2016년 8월에 자신들도 댓글을 없애는 정책을 단행했다.


(댓글과 관련하여) 많은 실험과 논의를 거친 결과, 우리는 NPR 웹사이트의 댓글란이 독자 대부분에게 유용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동체를 형성하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다른 길을 찾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NPR은 기사 페이지에서 댓글을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NPR은 댓글 폐쇄 결정을 알리면서 의미 있는 수치를 함께 내놨다. 예컨대 전체 독자 중에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라는 것이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기사에 댓글을 써본 사람은 독자 중 1%도 되지 않았으며, 지난 석 달간 댓글을 쓴 방문자는 0.003%에 지나지 않았다.

방문 수가 아니라 개인을 기준으로 하면, NPR 웹사이트 이용자의 0.06%가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전체 독자 중 극소수다. 게다가 한 댓글러가 여러 댓글을 쓰기 때문에 사정은 더 심각하다. 2016년 7월에 NPR 웹사이트에 달린 댓글 수는 49만1천 개였다. 이들 댓글은 독자 1만9천400명이 써낸 것이다. 전체 방문자 수는 3천300만 명이었다.




이 댓글러들이 잘 디자인된 여론조사에서처럼 전체 독자를 대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이 쓴 댓글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NPR의 댓글러들은 인구학적으로 독자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예컨대 댓글 대부분은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작성되었는데, 이것은 모바일로 뉴스를 보는 젊은 세대 독자들을 모두 배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NPR 이용자 중 남성은 52% 정도에 불과한데, 댓글을 다는 사람 중 남성은 83%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NPR만의 일이 아니라, 방문자가 어느 정도 되는 웹사이트라면 어디서든 댓글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여론이라고 하기도 우스운 노릇이다. 그런데도 소수가 쓴 이 의견들은 기사 밑에 버젓이 달려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게다가 댓글을 쓰는 사람은 대개 평범한 의견이 아니라 극단적이고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댓글로 표현되는 의견이란 사실은 여론(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 아니라 사회 극소수가 가진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해야 더 실체에 가까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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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란은 매체 입장에서 보면 매우 비경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전체 독자 중 극소수만 이용하기 때문이다. 손님 1천6백 명 중 한 명(0.06%) 올까말까 하는 사람을 위해 따로 예약석을 만들어 운영하는 식당이 있겠는가. 이 점은 NPR이 댓글란을 없앤 또 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임감 있는 매체라면 댓글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 자체 관리든 외부 관리든, 누군가가 관리를 해야 한다. 여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NPR은 댓글 운영과 관리를 외부 업체에 맡겨 하고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댓글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비용도 늘어난다. 이 비용이 의미있는 투자인가를 질문해보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란을 통째로 없애지 않고 문명화된 건설적 토론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을 택한 매체들도 있다. 이를테면 <뉴욕 타임스> 같은 곳인데, 이들은 그런 작업을 하는 데 드는 상당한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다. <뉴욕 타임스>도 얼마 전까지 많은 기사에서 댓글을 허용하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하자니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신문 웹사이트에는 하루에 1만2천 개 정도의 댓글이 달린다. 한국의 포털 댓글같이 한 줄짜리가 아니라 대개 웬만한 칼럼 분량이다. 이 댓글들을 '커뮤니티 데스크'가 일일이 확인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2017년 6월에 <뉴욕 타임스>는 구글 계열사와 협업하여 머신 러닝을 활용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모더레이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시스템은 댓글을 관리하는 인력 비용을 줄임으로써 독자가 좀더 많은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갖지 못한 매체들은, 극소수만이 사용하고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댓글란을 계속 운영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트롤이 활개치든 패싸움을 하든 욕설을 하든 헛소리를 하든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감을 가진 어떤 언론도 그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댓글을 자사 웹사이트 콘텐츠의 일부로 본다. 정상적인 매체 치고 욕설과 차별과 명예훼손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콘텐츠를 남 보라고 버젓이 드러내는 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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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R은 댓글란을 없앤 지 1년 만인 2017년 8월에 '댓글란 폐쇄 1년, 다시 살릴 계획은 없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1년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가겠다고 새삼 다짐한 것이다.

댓글란을 없앤 매체는 또 있다. 우리는 몰랐지만, 사실 2010년대 중반에 많은 외국 매체 편집자들은, 공론장은커녕 헛소문과 억지와 증오를 재생산하기 일쑤인 댓글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 많은 매체가 댓글란을 폐쇄했다. 위에서 본 PS를 비롯해 <시카고 선 타임스>, <USA 투데이>(스포츠), <더 윅(The Week)>, 로이터, <더 버지(The Verge)>, <레코드(Record)>, <마이크(Mic)>, 등 전통 매체와 뉴 미디어 모두에서 이런 방침을 택했고, 포털인 MSN도 같은 선택을 했다. (2015년까지의 댓글란 폐쇄 추세는 <와이어드>의 '댓글 종말의 간략한 역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댓글을 폐쇄한 매체들은 독자와의 소통을 막아버린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그들은 계륵 같은 구닥다리 존재가 되어버린 댓글란 대신 더 쉽고 더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 나섰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댓글란이 필수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언론사의 닷컴이나 새로 등장하는 매체들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기사마다 댓글란을 붙였다. 언제부터인가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잊혀졌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실험은 다양하게 해보았다. 이러한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무의미한 타성에서 벗어나는 매체들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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