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오리, 이봉오리 섞일雜 끓일湯 (Others)



서울 북촌 올라가는 길, 송현동 담 밑에서 만난 꽃들입니다.

생물학자 권오길은 꽃이 근본적으로 생식기라고 합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동물은 생식기를 몸 아래쪽에 달고 있는데, 식물은 몸(줄기)의 위 끝자락에 수줍음 하나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아 곤충들을 꼬드기고 있다. 사람들은 그 꽃을 혐오스럽게 여기지 않고 냄새까지 맡고 있으니…."

그렇군요.

꽃들이 비록 생식기관이지만, 그들에서는 혐오감뿐만 아니라 음란함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하긴 생식기관이라는 담담한 기능과 음란함이라는 인간의 기질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편견이겠지요.

저는 꽃이 생식기관이라는 과학의 정의보다, 대지가 보내는 웃음이라는 에머슨의 비유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 대지의 땅 위에서 작은 것들을 소유하고 기꺼워하며 웃던 자들은 모두 무덤으로 들어가고, 오만한 인간들을 기꺼이 품는 대지는 꽃으로 웃는다. 꽃처럼 웃는다. 꽃이 되어 웃는다." (예전 썼던 글에서 인용)

아닌 게 아니라, 저 꽃 피어난 양을 들여다보노라면 왁자지껄 화려한 웃음이 귓전에 울리는 것 같습니다.

과묵한 미소 같은 목련, 스스럼없는 초등학생들의 웃음 같은 개나리, 수줍고 조심스럽게 웃는 진달래, 화려한 웃음 속에 날카로움이 깃든 철쭉, 꽃시위하듯 일거에 세상에 튀어나와 한껏 웃는 벚꽃, 자잘한 웃음에서 소리보다 향기가 먼저 느껴지는 아카시아꽃이 차례로 지나갔고, 지금은 우아한 옷을 차려입고 성숙함을 과시하는 귀부인의 웃음 같은 장미가 한창입니다.

이제 거리에서 또 어떤 웃음을 만나서 함께 웃게 될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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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가서 두려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앞서 치료를 받고 간 사람의 엑스레이 사진이 앞에 걸린 모니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7세 어린이의 이 모습입니다. 젖니들이 상해서 치료를 하러 온 것 같은데, 젖니 아래로 어린 영구치들이 잇몸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각자 저 있을 자리를 잘 잡고서 대기중입니다.

포대기에 쌓인 채 올망졸망 모여서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아기 치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이른 봄, 눈에 막 띄기 시작하는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지상으로 오를 때를 기다리며 땅 속에서 묵묵히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아기 매미 같기도 합니다.

이[齒]밭에서 싹터나오고 있는 이봉오리! 너무나 신기하고 감동적인 모습이라서, 곧이어 다가올 고통에 대한 염려도 잊은 채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성인 누구나 지나온 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싹을 몸 속에서 키워본 사람들입니다. 마음에도 그런 것이 있었을까. 누구나 마음 속에도 꿈과 희망과 사랑의 싹들이 올망졸망 깃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있어야 할 곳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그 싹들을 외면하고 방치하여 혹은 좀먹고 혹은 깨지고 혹은 빠져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저 이들은 이제 곧 밖으로 올라와 단단히 자리를 잡겠지요. 이가 그렇듯 저 아이의 꿈과 희망과 사랑도 썩거나 벌레 먹는 일 없이 튼튼하게 잘 자라나고 여물기를 기원했습니다.

저 사진을 보고서야 그러지 않을 도리가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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