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되어야 할 모순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딴지일보 쪽에서 활동하셨던 물뚝심송님이 5월에 타계했다는 것을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고 말도 한번 나눠보지 않았고 스타일도 분명 나와 다른 것 같았지만, 글과 생각으로 세상과 교류하는 도반으로 생각하여 왔는데, 연배는 모르겠으나 아직 그렇게 가실 나이가 아님은 분명하니 뒤늦게 충격을 받게 된다.

덧없다.

나에게 상처를 준 지리멸렬한 세상과 인간 군상에 항거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렇게 미워해봐야 무슨 소용 있나, 끊임없이 이해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동시에 든다. 놀라운 소식에 나를 이입하며 모순된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관한 한, 모순은 용서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미움을..."


경기도 양주의 한 기업형 고기집 건물 위에 붙은 글귀다. 옥호를 적은 간판만큼이나 거대한 글자로 써 붙였다. 좋은 말이고 '...'의 여운도 멋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미움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미워함으로써 사랑할 시간을 늘린다.

이런 모순도 용서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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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도 글은 남는다. 물뚝심송님의 페이스북은 아직 그대로 있다. 2월21일의 글이 마지막 포스팅이다.

그의 페북에는 이런 글이 있다.


무지는 보통 무례를 동반한다.

귀족들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던 전근대사회에서야 무지는 어쩔 수 없는 지적 결핍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지를 이유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그런 상황은 타인의 무지를 비웃거나 비난하는 것을 오히려 무례하다고 판단하는 관습적 예절을 낳았고 그 예절은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의무교육개념이 일상화 되고, 기초적인 교육은 생존권과 유사한 차원의 의무가 되어 버린 사회에 와서는 어느 선 이하의 지적 결핍은 본인의 나태, 부주의, 불성실을 의미할 뿐 결코 보호할 가치가 없는 속성이 된다.

나아가 그 무지에 기반해 저질러지는 사회 공동체적 해악은 무시나 조롱이 아니라 비난과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무식하다고 사람 놀리면 못써..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모르고 저지르는 무례와 일탈, 타인에 대한 혐오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단죄되어야 할 죄악이라는 것.

현대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무지란 결코 면책 요건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다른 악행을 유발하는 핵심 악행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아, 그렇구나.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뭔가 배워야지' 하고 결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설령 있더라도, 그 숫자는 '선민의식 갖고 우리를 가르치러 들지 마쇼!' 하고 내뱉는 사람보다 적을 것이다. 나는 이런 거부와 자위의 말이 거칠게 내뱉어지는 풍경을 일상적으로 본다.

대체로 글은 우악스런 현실과의 대결에서 무력하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칼을 가진 놈들이 그 칼을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 펜이나 굴리는 자들이 스스로 위대한 것처럼 착각하도록 일부러 지어낸 말이 아닌가 의심될 때가 흔하다.

그래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이 소용없더라도 끊임없이 써야 하는 사람들의 모순 역시 용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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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내 Facebook 계정은 어떻게 되나요?

페이스북에는 내가 죽었을 때를 대비하여 다른 사람이 계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미리 위임해 두는 옵션이 있다. 위임 받은 사람은 내가 죽었다는 공지를 할 수 있고 사진을 업데이트할 수 있으며 친구도 계속 추가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계정이 아예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신청을 해 두면, 페이스북은 '내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 계정을 삭제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온라인 생활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의 사후 정리 시스템은 모순적인 것 같다.

하지만 하나의 세상이 닫히는 사건 앞에서 그로부터 파생된 인공 공간이 서성이는 이런 모순도 넉넉히 용서되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사실 그렇게 논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이 인간 자체의 본질인지, 아니면 논리와 합리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방어적으로 공격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서인지는 알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논리적이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논리적이지 않아서 즐거워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내로남불을 인생의 지혜로 여기며 즐겁게 산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사는 이들로부터 이런 뿌리 깊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모순된 세계를 떠나 위안과 안식의 정련된 세계로 가신 물뚝심송님의 명복을 뒤늦게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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