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다! 때時 일事 (Issues)



1972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한국전쟁이 중지된 지 20년, 전쟁의 고통과 상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고 남북은 서로에게 철천지 원수였다.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통일은 상대를 절멸시키는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믿어졌다.

그런데 남한의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국민 모르게 은밀히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고, 이어 북한의 제2부수상이 역시 은밀하게 내려와 박정희를 만났다. 그리고 나서 두 달이 채 안 되어, 한반도의 두 체제가 서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힘을 합쳐 민족 대단결을 이루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공동성명이 나왔다.

북한은 그전까지는 북괴였다. 이후락 중정부장은 공동성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북한'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다. 이때부터 북괴는 공식적으로 북한이 되었다. 대남, 대북 비방 방송과 '비라' 살포도 중지하기로 했다. 곧이어 이산가족 등 인도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적십자 회담이 남북을 오가며 열렸다. 문화, 체육 교류도 논의되었다.

외국 신문들은 한때 피바다였던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놓고 '인간이 달에 착륙한 것만큼 쇼킹한 일'이라고 썼다.

7.4 공동성명은 사실 남북한 두 정권의 정략적 필요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상황도 배경이 됐다. 성명 발표 이후 남북은 화해-평화로 나아간 게 아니라 기존의 적대적 대결을 계속했다. 남한에서는 석 달 뒤 폭압적인 10월 유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 길 없는 일반 국민에게는 그저 충격적이고 기쁘고 희망찬 일이었다. 아직도 휴전선 너머 금단의 영역에 가족과 친척이 숱하게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곧 통일이 되고 생살 찢기듯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될 것으로 믿었다.

제목과 작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다. 요새 말로 썸을 타던 남녀였는데, 7.4 공동성명이 나온 날 둘이 자버리고 만다. 그들만이 아니다. 7월4일 남한 방방곡곡 술집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그날밤엔 여관들도 빈방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기회주의자들

남북한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순진한 국민들은 그렇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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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의 사진기자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가 찍은 이 사진의 제목은 'V-J Day in Times Square(대일전 승리의 날 타임 스퀘어)'다. 1945년 8월14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일본과의 전쟁이 끝났음을 발표하기로 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뉴욕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 중에서 잡힌 사진이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낯선 이들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인공으로 추정된 수병은 당시 술에 좀 취한 상태였고 이 장면 전에도 여러 여자에게 키스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또다른 등장인물인 간호사는 승리 소식을 듣고 유니폼을 입은 채 축하하러 나왔다가 역사적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2차대전이 끝나던 날을 묘사한 <타임> 기사는 이렇게 썼다.


술판이 벌어지고 자제심이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키스가 만발했고 그만큼 많은 주먹질이 오고갔다. 한때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일이 사실이 되었으며 금세기 가장 잔혹하고 파괴적인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수년 동안 끊임없이 죽음과 파괴를 전하는 뉴스에 익숙해졌던 미국인들은, (일본의) 항복에 점잖고 자제력 있게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언젠가는 그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끔찍하게 싸웠던 적들과 전쟁에 대한 좀더 사려깊고 반성적인 대응이 차차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종전 발표가 나온 직후 현기증나고 정신없는 초기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은 당연한 듯 미국 각처에서 거리로 몰려나왔다. 기쁨을 축하하는 방식 중 일부는 물론 점잖고 또 미성년자 관람가의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성인 남녀들이 이 일을 활용해 흥청망청하며 카타르시스를 즐기려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기쁨과 안도감뿐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억눌렸던 불안, 두려움, 슬픔, 분노를 쏟아내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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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렇게 기쁜 날이 올지 모른다.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중이었다. 이제 비로소 전쟁이 공식으로 끝나려는 모양이다.




지금 이 시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열고 있다. 위 사진은 미국 ABC 방송에 지금 보도되고 있는 장면이다. 화면 밑 자막에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한 사안이 다루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트럼프가 '종전선언 할 수 있고 문제는 그 뒤이다'라는 발언도 내놨다. 한국 청와대는 휴전일인 7월27일 정도에 남북미가 판문점에 모여 종전선언을 하자는, 좀더 홍보회사스러운 방안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번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바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대세는 전쟁의 종결로 가는 듯하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2차대전 종전일 미국의 풍경에서 보듯, 종전의 기쁨은 전쟁의 고통에 비례할 것이다. 한반도는 그동안 사실 전쟁중인 것도 모르고 살 정도였으니,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고통은 보편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종전이 주는 기쁨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사적인 날이다. 전쟁이 끝나다니! 한반도 인구 5분의 1이 희생되고 온 강산이 초토화된 전쟁, 중단된 뒤로도 국가 자원이 전쟁 준비에 막대하게 투입되어 왔고 주적의 존재를 빌미로 하여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체제가 정당화되고 나아가 한반도 구석구석에 이데올로기의 뒤끝을 길고도 강하게 남긴 이 지긋지긋하고 혐오스러운 전쟁이 끝나다니!

정부가 주도하는 관제 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종전 축제 같은 것도 벌어져서 이 즐거운 날을 축하했으면 좋겠다.

아 참, 그러나 미국 타임 스퀘어에서 벌어진 것 같은 장면을 만들 생각은 마십시오. 문제의 사진은 요즘은 성폭행을 미화하는 사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1940년대에는 주변 남녀들이 모두 웃으며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은 성폭행이 될 수도 있다. 광화문 스퀘어에서 꼭 옆사람과 뽀뽀를 해야 하겠다면 분명한 동의를 받고 하시길 바란다. 하긴 발정난 군상이 이미 도처에서 치대는 세상이니, 카타르시스를 추구함에 있어 새로 종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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