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대중교통 요금이 싸다. 외국과 비교하려면 환율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싸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인 메트로는 한 번 승차하는 요금이 55루블, 우리 돈으로 980원 정도다. 하지만 이 금액을 다 내고 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정한 돈을 미리 충전하고 쓰는 교통카드인 트로이카를 이용하면 35루블(620원)로 떨어진다. 버스나 전차도 요금이 똑같다. 환승하면 값이 더 떨어진다. 모스크바 외곽에서 남쪽의 도모데도보 공항까지 왕복하는 셔틀 버스는 85루블(1,500원)이다.
한국팀의 축구 경기가 열린 타타르 공화국의 도시 카잔은 더 싸다. 버스나 지하철 삯이 25루블(440원)이다. 시내에서 카잔 공항까지 1시간 정도 달리는 기차는 40루블(710원)에 불과했다.
대중교통 요금이 싼 나라는 꽤 있다. 이런 나라들도 택시비는 비싸게 마련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택시비도 쌌다. 특히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일 때는 더욱 그랬다. 유럽에서 온 동료들은 자기네 나라 택시비와 비교해 저렴함의 체감도가 커서인지, 웬만하면 택시를 불렀다.
흔한 러시아 지하철 역사 모습.
나는 할 수 있는 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러시아의 지하철 역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았고,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움직이는 러시아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큰 배움이자 즐거움이어서,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걸을 수 있는 곳은 최대한 걸었다. 20대 후반에 지리산 종주할 때 이후 처음으로 티셔츠에 소금기가 하얗게 맺혔다.
내가 낯선 땅에서 이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오로지 세 친구가 친절하게 도와준 덕분이다. 이제부터 그 친구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구글 맵
구글 맵이 없다고 해서 내가 러시아의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범위는 훨씬 축소되었을 것이고 그 시간은 대폭 늘었을 것이며 그 피곤함도 몇 배로 늘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을 혼자 돌아다닐 때도 그랬지만, 러시아에서도 구글 맵은 너무도 든든하고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우선 아침밥을 먹고 나서, 어디를 둘러보아야 할지 구글 맵을 열어본다. 지도는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볼거리, 먹을거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추천도 해 준다. 관심이 가는 곳을 눌러보면 다른 이용자들이 찍어놓은 사진과 리뷰가 있다.
나는 어디를 가면 볼 곳을 미리 꼼꼼히 따지고 챙겨두는 편이다. 하지만 일로 가는 여행에는 그럴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렇게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미리 챙기는 일 같은 것은 점점 더 안 하게 된다. 서비스가 사람을 기분좋게 게으르게 만든다.
이렇게 목적지를 정한다.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 경로를 물어본다. 구글 맵은 어떤 대중교통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자세히 알려준다. 어디로 가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목적지 정류장까지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요금은 얼마인지, 도로 정체 상태는 어떤지 모두 말해준다.
내가 카잔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카잔대학교까지 가는 구글 맵 대중교통 경로.
키릴 문자를 쓰는 러시아에서 특히 중요한 점이 있다. 목적지나 정류장, 지하철역 같은 것을 모두 영어식으로 표기해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절한 지도라도, 암호 같은 러시아어의 그 기호 그대로 보여준다면 보는 사람은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다. 구글 맵은 원어와 영어 표기를 함께 해주어서 내가 가는 곳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러시아 사람들에게 그 지명을 그대로 말해주어도 잘 통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아무리 확인을 하고 출발했어도 낯선 곳이라 다시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구글 맵은 이런 불안도 없애준다. 지도를 열어놓고 있으면 내비게이션처럼 나의 위치가 움직이는 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내려야 할 정류장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에 어떤 가이드가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쓸 수 있는 현지 심카드뿐이다.
2. 얀덱스 택시
얀덱스는 러시아의 검색 서비스로, 러시아의 네이버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검색 시장은 얀덱스가 51.6%, 구글이 44.9%로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다. 얀덱스 택시는 얀덱스의 부가 서비스 앱이다.
택시를 탈 때는 이 앱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사실 얀덱스 택시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주최측이 추천해 준 서비스다. 러시아에서 택시 타려면 얀덱스 택시 앱이 필수니 반드시 깔라고 했다.
이 앱은 낯선 곳에서 택시를 타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걱정과 고통을 해결해주었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중심부 붉은광장까지 가는 얀덱스 택시 정보.
시간은 55분, 택시비는 736루블로 이미 결정되어 나온다.
택시를 타려면 앱을 연다. 언어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선택할 수 있다. 지도 기반 서비스이므로 내 위치가 자동으로 확인된다. 택시가 올 곳이다. 목적지는 지도에 찍을 수도 있고 써 넣을 수도 있다. 목적지를 정하면 즉시 택시비가 결정되어 나온다. 차량도 소형차에서 럭셔리한 중형차, 다인승 밴까지 선택할 수 있다.
택시를 부르면 주변에 있던 차가 응한다. 출발지까지 오는 데 몇 분이나 걸리는지 알려주고, 카카오택시처럼 오는 모습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필요하면 전화나 문자를 할 수도 있다. 내가 탈 택시는 색깔, 차종, 번호를 알려주어 찾기 쉽게 한다. "흰색 현대 액센트, 397-201" 같은 식이다.
러시아 택시 운전사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내가 다니는 동안 예스, 노, 생큐 정도 하는 기사도 한 명 못 봤다. 따라서 뭔가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얀덱스 택시를 이용하면 택시 기사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와 요금이 미리 정해진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기사가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주면, 웃으며 '스빠시바'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얀덱스 택시는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꿈 같은 서비스였다. 구글 맵에도 택시를 부르고 탈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요금을 비교해보면 늘 얀덱스 택시가 더 쌌다. 왜 이 앱부터 깔라고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요금이 미리 결정된다는 점이 아주 편하다. 언어가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먼 거리를 일부러 돌아가는 일 같은 게 벌어질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다 적발되는 택시가 하루에 열 대 정도 된다. 적발되는 것만 따져도 그렇다. 얀덱스 택시 앱이 있는 러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앱이, ICT 서비스가 선진국을 만든다.
모스크바 시내 도로. 노란색 택시에 '얀덱스 탁시'라고 씌어 있다.
택시 자체가 아예 얀덱스 택시인 차도 있었지만, 일반 차량이 콜에 응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카잔이나 로스토프 같은 지방 도시에서는 얀덱스 택시는 없었고 일반 차량이 왔다.
택시를 탈 계획이 없어도 얀덱스는 여전히 든든한 동반자였다. 내가 혹시 길을 잃거나 탈진하더라도 얀덱스 택시를 부르면 그만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되고, 돌아갈 호텔 이름만 알면 된다. 택시비도 미리 알 수 있다. 더 이상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가 있을까.
3. 구글 트랜슬레이트(번역 앱)
러시아 인구 중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5.48%에 불과하다. 요즘은 학교에서 영어를 많이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길거리에서는 여전히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월드컵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치르면 많은 외국 손님이 찾아온다. 일상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주로 여학생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글 번역 앱이다.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러시아인들은 휴대폰을 꺼내 번역 앱을 켜고 상대방의 언어를 설정한 뒤, 거기에 대고 말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말은 음성으로도 나왔고 글자로도 나왔다. Хорошо, xорошо!
스웨덴 동료와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는 휴대폰에 대고 뭔가를 러시아어로 말한 뒤 동료에게 보여주었다. 스웨덴 인간은 파안대소했다. "지금 우리는 일곱 번째 천국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뜻의 스웨덴 말이 나왔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것은 번역 앱이 지명까지 무리하게 번역을 시도하여 벌어진 일이다. 험악하게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우리는 이 차가 천국으로 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코믹한 상황도 벌어지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번역 앱은 제 몫을 해냈다. 한국-멕시코전이 열린 로스토프의 호텔 리셉션 직원은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대신 손에 스마트폰을 꼬옥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과 말이 안 통할 때마다 휴대폰을 켰다.
외국인도 수혜자였다. 멕시코 동료는 영어가 몹시 서툴렀다. 그러니 더욱 답답했을 것인데, 구글 번역 앱을 켜서 스페인어-러시아어 옵션을 선택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그는 나와 이야기할 때도 스페인어-한국어 옵션을 시도하려고 해서 내가 말렸다.
나도 여러 차례 덕을 보았다. 카잔의 타타르스탄 공화국 박물관에 갔을 때, 관람객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규모의 내부 공간을 홀로 돌아보다 막다른 곳에 도달하고 말았다. 옆에 작은 문이 있고 게시물이 붙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구글 번역 앱의 영상 번역기를 비추었더니 "continue"라는 말로 바뀌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급약을 살 필요가 생겼을 때도 있었다. 구글 맵으로 숙소 주변 약국을 검색해 찾아갔다. 필요한 약의 내용을 한국어-러시아어 번역 앱으로 돌려 약사에게 보여주었다. 약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돌아가서 약을 찾아갖고 나왔다. 조금의 곤란함도 없이 약을 살 수 있었다.
왼쪽의 암호가 번역 앱을 비추는 순간 오른쪽의 낯익은 글자로 바뀌어 보인다.
러시아에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휴대폰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이것은 정말 인류가 바벨탑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일상적으로 대화를 하기는 불편하지만, 적어도 여행자의 서바이벌을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런 ICT 서비스들 때문에 나는 평생 처음 가 보는 낯선 거리를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한편,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나처럼 편안하게 서울이나 부산, 경주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맵은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 경로나 택시 경로, 걷는 경로는 서비스되지 않는다. 반쪼가리 서비스다. 택시비를 계산해 주고 불러주는 앱 같은 것도 없다. 범죄 통계가 보여주듯, 한국말 못하면서 택시 타면 바가지 쓰기 딱 좋다.
네이버 지도 앱은 평창올림픽 직전인 지난 2월 초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표기를 선택할 수 있는 다중 언어 서비스를 내놓았다. 5.0으로 버전업 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외국인도 네이버 지도를 영어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버전은 안드로이드의 경우 OS가 6.0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중에서 OS가 6.0 이상인 사람은 62.3%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의 38%가 배제된 셈이다. 아이폰의 경우도 iSO 버전이 10 이상이어야 한다. 작년 말 기준으로 그 아래 버전을 쓰는 사람은 8% 정도로 그리 많지는 않다.
외국인을 생각하기 이전에 한국인에게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우버도 불법이라며 두들겨맞았고(러시아에서 우버는 당연히 서비스중이다), 카카오택시는 여전히 독점적이며 또 불편하다. 차량을 공유 형태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카풀 앱 서비스도 규제 덕분에 망하고 있다.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착각하는 정부는 창의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심지어 국민 전체의 편리와 후생과 경제 사정보다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챙겨주는 데 더 관심이 크다.
선진국 클럽처럼 되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러시아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에 가입을 신청했으나 아직까지 협상만 하고 있다. 하지만 여행자의 처지에서 볼 때 러시아와 한국, 어디가 더 선진국인지 말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ICT 벤처의 처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인 메트로는 한 번 승차하는 요금이 55루블, 우리 돈으로 980원 정도다. 하지만 이 금액을 다 내고 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정한 돈을 미리 충전하고 쓰는 교통카드인 트로이카를 이용하면 35루블(620원)로 떨어진다. 버스나 전차도 요금이 똑같다. 환승하면 값이 더 떨어진다. 모스크바 외곽에서 남쪽의 도모데도보 공항까지 왕복하는 셔틀 버스는 85루블(1,500원)이다.
한국팀의 축구 경기가 열린 타타르 공화국의 도시 카잔은 더 싸다. 버스나 지하철 삯이 25루블(440원)이다. 시내에서 카잔 공항까지 1시간 정도 달리는 기차는 40루블(710원)에 불과했다.
대중교통 요금이 싼 나라는 꽤 있다. 이런 나라들도 택시비는 비싸게 마련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택시비도 쌌다. 특히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일 때는 더욱 그랬다. 유럽에서 온 동료들은 자기네 나라 택시비와 비교해 저렴함의 체감도가 커서인지, 웬만하면 택시를 불렀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러시아의 지하철 역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았고,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움직이는 러시아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큰 배움이자 즐거움이어서,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걸을 수 있는 곳은 최대한 걸었다. 20대 후반에 지리산 종주할 때 이후 처음으로 티셔츠에 소금기가 하얗게 맺혔다.
내가 낯선 땅에서 이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오로지 세 친구가 친절하게 도와준 덕분이다. 이제부터 그 친구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구글 맵

구글 맵이 없다고 해서 내가 러시아의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범위는 훨씬 축소되었을 것이고 그 시간은 대폭 늘었을 것이며 그 피곤함도 몇 배로 늘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을 혼자 돌아다닐 때도 그랬지만, 러시아에서도 구글 맵은 너무도 든든하고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우선 아침밥을 먹고 나서, 어디를 둘러보아야 할지 구글 맵을 열어본다. 지도는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볼거리, 먹을거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추천도 해 준다. 관심이 가는 곳을 눌러보면 다른 이용자들이 찍어놓은 사진과 리뷰가 있다.
나는 어디를 가면 볼 곳을 미리 꼼꼼히 따지고 챙겨두는 편이다. 하지만 일로 가는 여행에는 그럴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렇게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미리 챙기는 일 같은 것은 점점 더 안 하게 된다. 서비스가 사람을 기분좋게 게으르게 만든다.
이렇게 목적지를 정한다.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 경로를 물어본다. 구글 맵은 어떤 대중교통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자세히 알려준다. 어디로 가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목적지 정류장까지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요금은 얼마인지, 도로 정체 상태는 어떤지 모두 말해준다.

키릴 문자를 쓰는 러시아에서 특히 중요한 점이 있다. 목적지나 정류장, 지하철역 같은 것을 모두 영어식으로 표기해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절한 지도라도, 암호 같은 러시아어의 그 기호 그대로 보여준다면 보는 사람은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다. 구글 맵은 원어와 영어 표기를 함께 해주어서 내가 가는 곳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러시아 사람들에게 그 지명을 그대로 말해주어도 잘 통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아무리 확인을 하고 출발했어도 낯선 곳이라 다시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구글 맵은 이런 불안도 없애준다. 지도를 열어놓고 있으면 내비게이션처럼 나의 위치가 움직이는 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내려야 할 정류장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에 어떤 가이드가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쓸 수 있는 현지 심카드뿐이다.
2. 얀덱스 택시

얀덱스는 러시아의 검색 서비스로, 러시아의 네이버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검색 시장은 얀덱스가 51.6%, 구글이 44.9%로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다. 얀덱스 택시는 얀덱스의 부가 서비스 앱이다.
택시를 탈 때는 이 앱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사실 얀덱스 택시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주최측이 추천해 준 서비스다. 러시아에서 택시 타려면 얀덱스 택시 앱이 필수니 반드시 깔라고 했다.
이 앱은 낯선 곳에서 택시를 타면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걱정과 고통을 해결해주었다.

시간은 55분, 택시비는 736루블로 이미 결정되어 나온다.
택시를 타려면 앱을 연다. 언어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선택할 수 있다. 지도 기반 서비스이므로 내 위치가 자동으로 확인된다. 택시가 올 곳이다. 목적지는 지도에 찍을 수도 있고 써 넣을 수도 있다. 목적지를 정하면 즉시 택시비가 결정되어 나온다. 차량도 소형차에서 럭셔리한 중형차, 다인승 밴까지 선택할 수 있다.
택시를 부르면 주변에 있던 차가 응한다. 출발지까지 오는 데 몇 분이나 걸리는지 알려주고, 카카오택시처럼 오는 모습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필요하면 전화나 문자를 할 수도 있다. 내가 탈 택시는 색깔, 차종, 번호를 알려주어 찾기 쉽게 한다. "흰색 현대 액센트, 397-201" 같은 식이다.
러시아 택시 운전사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내가 다니는 동안 예스, 노, 생큐 정도 하는 기사도 한 명 못 봤다. 따라서 뭔가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얀덱스 택시를 이용하면 택시 기사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와 요금이 미리 정해진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기사가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주면, 웃으며 '스빠시바'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얀덱스 택시는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꿈 같은 서비스였다. 구글 맵에도 택시를 부르고 탈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요금을 비교해보면 늘 얀덱스 택시가 더 쌌다. 왜 이 앱부터 깔라고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요금이 미리 결정된다는 점이 아주 편하다. 언어가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먼 거리를 일부러 돌아가는 일 같은 게 벌어질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다 적발되는 택시가 하루에 열 대 정도 된다. 적발되는 것만 따져도 그렇다. 얀덱스 택시 앱이 있는 러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앱이, ICT 서비스가 선진국을 만든다.

택시 자체가 아예 얀덱스 택시인 차도 있었지만, 일반 차량이 콜에 응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카잔이나 로스토프 같은 지방 도시에서는 얀덱스 택시는 없었고 일반 차량이 왔다.
택시를 탈 계획이 없어도 얀덱스는 여전히 든든한 동반자였다. 내가 혹시 길을 잃거나 탈진하더라도 얀덱스 택시를 부르면 그만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되고, 돌아갈 호텔 이름만 알면 된다. 택시비도 미리 알 수 있다. 더 이상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가 있을까.
3. 구글 트랜슬레이트(번역 앱)

러시아 인구 중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5.48%에 불과하다. 요즘은 학교에서 영어를 많이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길거리에서는 여전히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월드컵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치르면 많은 외국 손님이 찾아온다. 일상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주로 여학생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글 번역 앱이다.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러시아인들은 휴대폰을 꺼내 번역 앱을 켜고 상대방의 언어를 설정한 뒤, 거기에 대고 말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말은 음성으로도 나왔고 글자로도 나왔다. Хорошо, xорошо!
스웨덴 동료와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는 휴대폰에 대고 뭔가를 러시아어로 말한 뒤 동료에게 보여주었다. 스웨덴 인간은 파안대소했다. "지금 우리는 일곱 번째 천국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뜻의 스웨덴 말이 나왔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것은 번역 앱이 지명까지 무리하게 번역을 시도하여 벌어진 일이다. 험악하게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우리는 이 차가 천국으로 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코믹한 상황도 벌어지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번역 앱은 제 몫을 해냈다. 한국-멕시코전이 열린 로스토프의 호텔 리셉션 직원은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대신 손에 스마트폰을 꼬옥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과 말이 안 통할 때마다 휴대폰을 켰다.
외국인도 수혜자였다. 멕시코 동료는 영어가 몹시 서툴렀다. 그러니 더욱 답답했을 것인데, 구글 번역 앱을 켜서 스페인어-러시아어 옵션을 선택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그는 나와 이야기할 때도 스페인어-한국어 옵션을 시도하려고 해서 내가 말렸다.
나도 여러 차례 덕을 보았다. 카잔의 타타르스탄 공화국 박물관에 갔을 때, 관람객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규모의 내부 공간을 홀로 돌아보다 막다른 곳에 도달하고 말았다. 옆에 작은 문이 있고 게시물이 붙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구글 번역 앱의 영상 번역기를 비추었더니 "continue"라는 말로 바뀌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급약을 살 필요가 생겼을 때도 있었다. 구글 맵으로 숙소 주변 약국을 검색해 찾아갔다. 필요한 약의 내용을 한국어-러시아어 번역 앱으로 돌려 약사에게 보여주었다. 약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돌아가서 약을 찾아갖고 나왔다. 조금의 곤란함도 없이 약을 살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휴대폰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이것은 정말 인류가 바벨탑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일상적으로 대화를 하기는 불편하지만, 적어도 여행자의 서바이벌을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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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ICT 서비스들 때문에 나는 평생 처음 가 보는 낯선 거리를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한편,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나처럼 편안하게 서울이나 부산, 경주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맵은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 경로나 택시 경로, 걷는 경로는 서비스되지 않는다. 반쪼가리 서비스다. 택시비를 계산해 주고 불러주는 앱 같은 것도 없다. 범죄 통계가 보여주듯, 한국말 못하면서 택시 타면 바가지 쓰기 딱 좋다.
네이버 지도 앱은 평창올림픽 직전인 지난 2월 초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표기를 선택할 수 있는 다중 언어 서비스를 내놓았다. 5.0으로 버전업 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외국인도 네이버 지도를 영어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버전은 안드로이드의 경우 OS가 6.0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중에서 OS가 6.0 이상인 사람은 62.3%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의 38%가 배제된 셈이다. 아이폰의 경우도 iSO 버전이 10 이상이어야 한다. 작년 말 기준으로 그 아래 버전을 쓰는 사람은 8% 정도로 그리 많지는 않다.
외국인을 생각하기 이전에 한국인에게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우버도 불법이라며 두들겨맞았고(러시아에서 우버는 당연히 서비스중이다), 카카오택시는 여전히 독점적이며 또 불편하다. 차량을 공유 형태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카풀 앱 서비스도 규제 덕분에 망하고 있다.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착각하는 정부는 창의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심지어 국민 전체의 편리와 후생과 경제 사정보다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챙겨주는 데 더 관심이 크다.
선진국 클럽처럼 되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러시아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에 가입을 신청했으나 아직까지 협상만 하고 있다. 하지만 여행자의 처지에서 볼 때 러시아와 한국, 어디가 더 선진국인지 말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ICT 벤처의 처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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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2018/07/03 18:5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18/07/03 19: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