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한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섞일雜 끓일湯 (Others)

3년 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건물 입구나 엘리베이터 같은 데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열에 아홉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지나쳐 갔다. '지가 날 언제 봤다고...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힘을 주어야 열리는 문을 나갈 때는 뒷사람이 올까 살펴서, 오는 기색이 있으면 문을 잡고 있었다. 뒷사람은 이상하다는 듯이 보기도 했고, 그중 다수는 내가 문을 잡은 그 사이로 손을 대지 않고 빠져나가서 나는 계속 문을 잡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지가 무슨 백기사라도 되나...'

순서나 자리를 양보하면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고, 자기가 직급이 높아서 그런 양보를 받는 것으로 착각했다. 직급이 높지 않은 사람한테도 똑같이 했는데, 그들도 곧 그런 대접을 받는데 익숙해져서, 그 뒤 같은 상황이 올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을이 되고 그들은 갑이 되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나는 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급속하게 한국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갑자기 사람을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가 나가려 하지만, 그걸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정도는 됐다. 얼굴은 늘 되도록 엄숙하고 화난 것처럼 유지하는 법도 배웠다. 겨울이면 모든 한국 사람처럼 검은 외투를 입기 시작했고, 빌딩 문을 밀고 나갈 때는 뒷쪽을 되도록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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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국인이기 이전에 여전히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일을 벌인다.

지하철 창동역, 1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통로의 계단이다. 어떤 여자분이 휴대폰을 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다 나동그라졌다. 머리를 바닥에 찧어 쿵 소리가 났고 가방이 내팽개쳐졌으며 신발도 한 짝이 멀찍이 튀어나갔다. 우연히도 나는 그녀의 바로 뒤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 옆으로 갔다. 주저앉아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여자에게 신발을 주워주며 괜찮은지 물었다. 여자는 잘 말하지 못했다. 주변에 중년의 두어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다가와서 그녀가 도움이 필요한지 살폈다. 괜찮아서 그런지 창피해서 그런지 그녀는 얼른 상황을 수습하려 했고, 따라서 더 이상 해줄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아프면 무리하지 말고 바로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가보세요, 하고 다시 4호선 환승역으로 향했다.

이번엔 아침 출근길 7호선 지하철 안이다. 차안이 조금 한산해진 학동이나 논현쯤이었을 것이다. 앉아서 졸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떴다. 내 앞에서 어떤 여자가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그 앞 상황은 모르겠지만, 여자는 정신은 잃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있었다. 본인도 어리둥절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바로 내 앞이었고 나를 보는 방향에서 뒤로 넘어져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이것은 분명하다. 뒤로 손을 짚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가 자리에 앉은 채 일부러 찾아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주변 사람이 그녀의 가방을 챙겨주었다.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녀를 앉혔다. 나도 곧 내릴 곳이 되어 일어났다. 한 여성이 쓰러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인 듯, 증상의 정도를 묻고 어떤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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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이 각자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회고하였을지 문득 궁금할 때가 있다. 당시는 정신이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계단에서 실수로 쓰러졌는데 어떤 남자가 돌봐주는 체를 하고 심지어 구두까지 주워와서 몹시 창피하였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내가 넘어졌는데 웬 오지랖 넓은 인간 때문에 진짜 쪽팔렸어 씨발 하고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지하철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어떤 남자가 손을 잡아 일으켜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내가 넘어졌는데 웬 남자 새끼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손을 잡고 지랄이더라고 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아는 분이 역시 지하철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본인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의료 전문가가 아닌 주변 사람은 그녀가 잠깐 기력을 잃은 것인지 죽을 지경에 놓인 응급 상황인지 알 도리가 없다. 여러 사람이 손을 모아 일으키고 벤치로 이끌고 역 직원과 구급대원을 불렀다. 결국 응급실까지 실려갔다.

나중에 이분이 당시 상황에 대해 쓴 것을 보게 되었다. 갈 길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도와준 여러 사람들에 대해 고마운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인 것처럼 묘사되었다. 어떤 사람이 신발을 벗기고 다리를 주무르자, 그 와중에도 만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지나가다 쓰러진 사람을 보고 도와주는 행인들은 선의만 가졌을 뿐, 위급함의 정도를 알아내는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런 행인들이 종종 쓰러진 사람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심폐소생술을 해서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쓰러진 사람의 엉덩이를 받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옳든 그르든, 많은 한국인은 사람이 쓰러진 응급 상황에서 팔다리를 주무르는 것을 중요한 응급조치라고 생각한다. 긴급해 보이는 사람을 도와준다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기분 나쁘니 만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심정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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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당할까봐” 역에서 쓰러진 여성 방치한 ‘펜스룰’
지하철역에서 쓰러진 여성 돕지 못한 남성의 이유와 여성의 이유

'서울 경복궁역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는데 남자들이 미투 당할까봐 두렵다고 말하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거짓 글을 그대로 기사로 만든 것들이다. 기사의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취재도 하지 않았고 확인도 하지 않았으며 쓴 기자도 밝히지 않았다.

어떤 신문은 똑같은 일을 해놓고 나서,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나자 몰래 제목과 내용을 바꾸어 올리기도 했다: “쓰러진 여성 방치” “옆에서 도왔다”… 경복궁역 사건 전말. 원래 제목과 내용은 '쓰러진 여성 방치... 펜스룰로 도움 꺼려' 이런 식이었다.

이런 것들을 기사라고 쓰는 이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기사를 올리는 매체를 쓰레기 매체라고 부르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쓰레기 언론을 비난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러한 거짓 목격담이 당사자, 즉 쓰러진 여성의 증언으로 비로소 뒤집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여성을 도와준 남자들의 증언도 속속 나왔다.)

해당 여성은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의도적인 거짓이 나돌고 쓰레기 언론까지 합세하여 그러한 일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공개적으로 글을 낸 용기가 돋보이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상식도 요즘 같은 세상에 귀감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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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 앞에서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본능은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라고 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순간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이것은 펜스 룰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그냥 본능을 이기고 좀더 트렌디한 한국인이 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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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7/08 11: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7/08 13: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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