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왜 호통을 치나요 때時 일事 (Issues)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는 법 적용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사소한 법질서 위반도 엄하게 처벌하고, 곤장형도 아직 남아 있다. 외국인(그것도 미국인)을 잡아서 곤장을 때린 적이 있다. 껌을 씹어도, 휴지를 버려도, 길을 무단 횡단해도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괜히 눈치를 보며 주변을 살피게 된다. 하지만 작년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 간선도로가 아닌 차도에서 아무데서나 횡단하는 사람은 흔하게 보았고, 지하철에서 껌을 씹는 사람도 자주 만났다. 한 싱가포르 교수는 자기 나라가 시민 행동을 시시콜콜 감시하고 처벌한다는 것이 이제 가짜 뉴스에 가깝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법규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양상이 좀 달라진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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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지하철 문 옆에 붙은 경고문이다. 비상시 문을 열 수 있는 장치를 함부로 건드리면 5천 싱가포르달러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되어 있다. 한국 돈으로 400만원 조금 넘는다. 역시 벌금 국가답게 금액이 세다. 옆의 두리안 금지...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되어 있다. 처벌이 싱가포르보다 훨씬 세다. 금액도 더 높은 데다, 감옥까지 갈 수 있다. 진정한 벌금 국가, 경찰 국가는 싱가포르가 아니라 한국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디에 있나?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이하'라는 말에 있다. 이 말 때문에 한국의 법 적용에는 엄청난 융통성, 이른바 '유도리'가 생긴다. 지하철 문 개폐장치를 함부로 만진 사람에 대해 형벌을 정하는 자, 즉 판사는 벌금을 0원으로 할 수도 있고 2천만 원으로 할 수도 있다. 그냥 내보낼 수도 있고 1년 11개월 동안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 이렇게 엄청난 재량권이 판사에게 주어진다. 그런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는 또다른 판사가, 그것도 단 두 번에 걸쳐 확인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바로 이 특권이 우리나라 사법부를 닫힌 공간에서 부패와 부조리가 번성하는 곳으로 만들며 법적 안정성까지 해치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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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죄라도 그 양상이 다를 것이므로, 처벌 형량에 일정한 범위가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그런 범위의 적용이 판사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비슷한 죄질의 범죄에 대해서도 판사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른 처벌이 나온다는 점이다. 상식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판결 뒤에 따라붙는 납득하기 어려운 정상 참작 요소며 감경 요소가 대표적이다. 초범이라서 봐주고 합의해서 봐주고 반성해서 봐준다. 같은 죄를 지어도 형벌은 천양지차가 될 수 있다.

판사는 무엇으로 판결하는가? 법률과 양심이라고 한다. 헌법에 규정된 사항이다.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비상 개폐장치를 함부로 만진 사람에 대해 벌금을 0원에서 2천만 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법률이다. 그 중에서 0원으로 할지 100만 원으로 할지 2천만 원으로 할지는 구체적인 사례를 살피는 판사의 양심이 결정한다.

판사의 양심이 무엇인가? 아무도 명확하게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한 법률가는 이렇게 말한다.


헌법이 재판의 준거로 제시하는 양심은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하는 보편적 윤리규범’으로 주어진 것이지 법관 개인의 자유나 권리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법정(法廷)은 법관의 주관적 신념을 펼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관은 시민사회의 소박한 법감정 앞에서 자기의 소신을 꺾을 수 있어야 한다.


좀더 명확해지는 것 같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보편적 윤리규범이지만, 살인자에게 징역 2년을 줄지 20년을 줄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소박한 법감정'이란 말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지금처럼 (그리고 언제나처럼) 시민사회가 갈라져 있을 때, 그들의 '소박한 법감정' 역시 하늘과 땅의 양상으로 이분화되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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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판결해야 한다)라는 말은 판사라는 전문직종 종사자가 사회의 다른 직종 사람들보다 양심적이고 소양이 높다는 점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인의 교육 수준이 형편없었던 중세나 근대 초기나 일제시대 정도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공식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전문적 공부를 한 일군의 직종 종사자가 좀더 보편적인 윤리 의식을 갖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가능했던 때 말이다.

요즘이 어디 그렇습니까.

판사가 되려면 대개 공부만 잘 하면 된다. 판사가 되는 과정에서 교육도 받고 면접도 보고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시험 성적이다. 그러나 시험을 잘 보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20대 중후반 젊은이가 어느 날 판사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 중에는 별 놈 다 있게 마련이다. 판사도 역시 사람이므로 당연히 판사 중에도 별 놈 다 있다. 낮에는 근엄하게 재판을 하고 밤에는 인터넷에 극악하고 엽기적인 정치 댓글 러시질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한 판사도 있고, 지하철에서 여성 다리를 몰카로 찍다 걸린 판사도 있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점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알 수 있다.


판사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하는 말 가운데는 충격적 내용이 너무 많다. 최근 불거진 법원 내홍(內訌) 사태에 대해 한 판사가 페이스북에 '난 진짜 병신인가'라고 하자, 다른 판사가 '나대는 행태가 역겹다'는 댓글을 달았다. 판사 600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의 익명 게시판은 '또라이' '적폐 종자' '개××' 같은 비속어와 욕설로 동료 판사들을 비난하는 글이 넘쳐난다. ...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판사들의 법정 내 막말과 고압적 태도 역시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변호사에게 '동네 양아치 짓을 한다'고 막말을 퍼부은 판사, 이혼을 청구한 70대 당사자에게 '그렇게 사니 행복하십니까?'라고 면박을 준 판사가 있었다.


이런 판사들도 여전히 '그들의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리 판사들도 적발될 때까지는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들의 양심에 따라 나온 기막힌 판결은 일단 내려지면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배타적인 권력 독점을 구조화해 둔 게 한국 사법 체계다.

판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한다. 하지만 잘못된 판결이 나와도 판사들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면 자기 양심이 그렇다고 하면 된다. 누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양심을 비난 대상으로 할 수 있겠는가.

비리도 저지른다. 사건 관계자에게 뇌물을 받는 판사도 있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판사에 대해 다른 판사는 다양한 구실을 붙여 줄줄이 무죄를 선고한다. 정운호(네이처리퍼블릭) 사건 같은 굵직한 사례도 있지만 이런 것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고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많은 국민처럼 나도 사법 비리는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비리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운 양상으로 저질러지고 같은 식구가 그 죄를 따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재판중인 사건 관계자에게 뇌물을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돈을 받고 판결을 공정하지 않게 해준다는 뜻이다. 뇌물을 주지 않아 사실과 다른 판결을 받은 상대측은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사법 체계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처벌을 받고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변신한다. 비리를 저질러 안 들키면 다행이고 들켜도 상관없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작게는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는 자들로부터 크게는 권력, 재력의 수호신으로 역할하는 자들까지 다양한 판사 군상이 그들의 기형적인 양심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권력, 금력의 눈치를 보며 무고한 사람에게 심지어 사형까지 내렸던 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법과 질서의 수호신으로 군림하며 승승장구하고, 자신들은 물론이고 그 식솔들까지 호의호식하며 무한한 영달을 누린다.

이런 상황을 검토하다 보면, 판사들이 모호한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도록 한 것,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기까지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부여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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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판사가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라고 하여, 유무죄를 따지고 형벌량을 정하는 행위의 기준을 판사 개인의 모호한 양심에 기대도록 한 나라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조사해 본 사람이 있다.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을 읽고 이 조항의 문제를 알 수 있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랬다. ... 최근에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덴마크, 스웨덴,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프랑스 헌법을 확인하였지만 한국 헌법과 같은 조항은 없었다. 독일 헌법 97조에 “법관은 독립적이고 법률에만 기속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한국과 같이 양심이라는 단어는 없다.


반복하지만, 이런 한국적 특수성(전근대성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은 고무줄 법률과 어울려 기막힌 현실을 만들어 낸다. 비슷한 죄를 지은 사람들의 처벌이 극단적으로 달라지고, 같은 증거 때문에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람들 중 누구는 구속되고 누구는 풀려난다.

한국에서는 법적 안정성이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불안하게 존재하고 있다. 법의 공평함을 믿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참혹한 한국적 진실을 부정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판사를 비롯한 법률가 집단만 빼고 본다면 말이다.

① 한국 판사들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은, ② 그들이 범죄자에게 내리는 처벌이 일반적으로 솜밤망이가 되고 있다(외국과 비교할 필요 없이 한국의 과거와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형벌을 내리는 사법 체계가 범죄 예방 장치로 존중되고 작동되지 못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처벌 체계가 경미하다면 일반적 범의(犯意)를 꺾지 못할 것이며, 형벌의 범위가 넓고 판사의 재량권이 커서 돈과 빽만 있다면 얼마든지 경미한 쪽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면, 힘 있는 자들, 이를테면 재벌 일가가 파렴치한 범죄를 반복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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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판사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키 큰 난장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판사는 예컨대 자신의 재판정에서 피고나 방청객이 소란을 피우고 재판 진행을 못 하도록 방해할 때 호통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피고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 호통을 친다니, 그리고 판사의 그런 행동을 사람들이 추켜세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사법 시스템을 아직도 전근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판사가 윤리 의식의 담지자이고 사회 양심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판사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것도 헌법이라는 최상위법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판사들은 남을 꾸중하고 호통을 쳐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피고인도 나이, 재산, 성별, 지위 등과 상관없이 자신의 권리를 가진 어엿한 동료 시민이며, 불필요한 인격적 모멸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잘 인식되지 않는다.

나는 조선시대 원님나리도 아닌 민주공화국의 공직자가 국민을 상대로 호통을 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그는 법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정황을 살펴 적절한 처벌을 내리면 된다. 그에게 국민이 위임한 임무는 윤리의 담지자가 되어 국민을 꾸중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처벌 부과를 통해 법질서를 유지하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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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때 대법원이 정치 권력과 재판 거래를 시도한 의혹이 수사되고 있다. 법원은 조사 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내놓지 않는 등, 수사에 협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범죄를 판단하는 조직이 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게 옳은가 하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좋은 판사, 양심적인 판사도 많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사법 시스템은 그와 같은 개인 양심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 그로부터 무한한 권력, 불필요한 권위, 솜방망이 처벌, 동일 범죄에 전혀 다른 판결, 배타적 특권의식 같은 것이 자라난다.

건강하고 공정한 사법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고무줄 법률의 정비, 판사들의 의식 전환, 구조적인 개선 같은 것들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기득권을 가장 많이 가진 조직이 가장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그러한 변화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지 회의하게 된다.

유스티티아는 로마 신화의 여신으로, 사법 체계를 상징한다. '정의의 여인(Lady Justic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여신상은 흔히 왼손에는 천칭 저울,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눈을 가린 모습으로 구현된다. 천칭은 그녀가 하는 일을, 칼은 그 결과의 엄정함을 상징한다. 눈을 가린 안대는 공정함을 뜻한다. 판단 대상의 권력, 금력, 지위, 영향력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울, 칼, 안대의 셋은 삼위일체로서 정의를 구현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칼만 챙겼고 안대는 허술했다. 가리는 척만 했고 그 사이로 실눈을 뜨고 내다보거나, 아니면 아예 노골적으로 안대를 풀었다. 그 결과, 정의의 여인이 아니라 권력과 금력의 하수인으로 기능해 왔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때다.


※ 참고: '일당 5억원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허재호 회장 사건'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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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최노을 2018/07/11 21:16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우리나라 사법 체계의 문제에 대해서 깊게 공감합니다.

    심정적으로는 저도 판결에 있어 법관의 재량성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분명 판결을 내릴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로 '기존 판례' 가 있을 텐데요. 물론 판례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부분의 판결에서 비슷한 사건에 대해 유무죄나 양형 등에 대해 기존 판례가 상당한 힘을 지닌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사실 비슷한 범죄에 대해 형량이 천양지차로 차이가 나는 일은 생각보다 적어야 할 것인데...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통계상으로도 비슷한 케이스에 대해 형량이 차이가 과도하게 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보도되는 일부의 예가 강하게 각인되는 것일까요. 물론 얼마 안 되는 특별한 예라 해도 그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한 판결이 아니라면 비판을 받아야겠지만 말입니다.
  • deulpul 2018/07/11 22:25 #

    진지한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가이드가 되는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말씀대로 기존 판례를 참고할 수 있겠지요. 비슷한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내려졌나를 보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도, 또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 위해서도 중요한 참고사항일 것입니다. 한편 형사 재판에서 법원의 형벌 부과는 검찰의 구형이 있은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구형량이 일종의 가이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구형 얼마면 판결이 얼마쯤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하면서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것이 '양형위원회'에서 만드는 '양형 기준'입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판사들이 형벌을 정할 때 참고할 기준을 설정한 것입니다. 해당 홈페이지(https://sc.scourt.go.kr/sc/krsc/criterion/standard/standard.jsp)에 따르면 양형 기준은 참조 사항이고 구속력이 있지는 않지만 이를 벗어나려면 그 합리적인 사유를 밝혀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이드들이 있기 때문에 형벌의 과도한 산개는 일상적으로 잘 벌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최종 결정은 판사 개인이나 합의부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론적으로 파격적인 판단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런 재판들이 종종 나온다는 점은, 사법부에 의해 재산과 신체의 자유, 생명까지 박탈당할 수 있는 국민 입장에서 여전히 불안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 형의 감경이나 가중을 결정하는 요소도 주관적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겠고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이 별다른 기준이 없는 경우는 그런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겠지요. 말씀대로 기회가 되면 유사 사건에 대한 판결 결과가 일관성이 있는지, 양형 기준이 어느 정도로 작동하고 있는지 양적 분석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미 그런 게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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