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을 찾아서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해인 2017년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세계 역사를 뒤흔든 볼셰비키를 이끈 사람은 키 165cm의 작고 왜소한 대머리 사내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무너진 이래, 그가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이제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사회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은 레닌의 상징물을 철거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곳곳에서 레닌 동상과 흉상이 철거되었다.

그러나 레닌은 여전히 세계 도처에 남아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세계 39개 국가에 레닌 기념물이 존재하며, 지금도 철거 결정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 건립되는 것도 있다. 심지어 남극 극점 가까운 빙판 위에도 레닌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러시아에서도 소련 해체 당시 레닌 기념물들이 다수 파괴되었다. 하지만 많은 레닌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 기념물은 현재 공식 확인된 것만 82개다. 다른 집계에 따르면 실제로는 100개 가까이 된다. 철거해 비공개된 것이나 개인 소유 공간에 설치된 것을 빼고도 그렇다.

레닌은 여전히 러시아 사회 곳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굳게 서 있다. '레닌을 찾아서'라고 했지만, 사실 러시아에서는 레닌이 방문자를 찾아온다. 그 중 일부를 만나보았다.

(이미지 폭탄 주의, 누르면 조금 커짐)



↑ 모스크바 트버스카야 거리 관공서들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의 동상이다. 구글 지도에서 레닌 기념물을 찍으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인데, 대표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좀 작다. 그가 도전적으로 묻는다. 자네,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동상에서 볼쇼이 극장까지 이어지는 이면도로는 1km가 좀 안 되는데, 이 거리에는 프라다, 헤르메스, 베르사체, 버버리, 구찌 같은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단독샵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 이 거대한 레닌상은 모스크바 중심, 법무부가 있는 레닌스키 거리 교차로에 서 있다. 택시를 타고 지나다 보고, 다음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찾아가봤다. 외투를 휘날리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된 레닌과 그 아래 적군(赤軍)의 진격 장면이 모두 인상적이다. 동상 아래에서는, 100년 전이라면 조형물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인민 전사로 복무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시끌벅적하게 BMX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레닌이 바라보는 건너편 건물 1층에 있는 버거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갔다가 뵙고 실망한 레닌님이다. 놀이기구도 있는 널찍한 숲 공원 속에 서 있었는데, 규모도 작고 조형미도 좀 떨어진다. 그나마 바로 옆에 이 도시 출신인 막심 고리키 동상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공원 정문을 지키는 험상궂게 생긴 경비원이 놀랍게도 무척 친절하게 레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동양인이 시 공원의 자그마한 레닌상을 보러 찾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이었을 것인가.


↑ 니즈니 노브고로드 기차역의 한쪽 벽이다. 역 자체는 옛날 건물 같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정비했다. 모자이크로 구성한 벽화도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레닌이 위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고 그 밑에 남녀 인민이 늘어섰다. 반대편 벽에는 인민들이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모습이 갈색 톤의 모자이크화로 형상화되어 붙어 있다.


↑ 로스토프-나-도누의 센트럴 시티 공원에 있는 레닌상. 작게 보이지만, 사진에 나오지 않은 기단이 복잡한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상당히 높다. 이 공원 주변에는 흥미로운 조각상들이 많아서 도시의 관광 포인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원은 꽤 큰 규모이며 일요일에는 소비에트 시절 훈장, 뱃지, 동전, 장신구, 작은 무기 같은 자잘한 유물들이 나오는 벼룩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공원 한켠에 빙과류를 파는 냉동고를 하나 내놓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학생쯤 되는 점주가 있었다. 초콜렛 아이스바를 하나 사고 돈을 계산할 때, 말이 안 통하니 자기가 쓰던 연습장에 금액을 적어 보여주었다. 연습장에는 똑같아 보이는 러시아 단어가 잔뜩 적혀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착한 학생 같았다.


↑ 로스토프의 현대미술관 계단 벽에 걸린 그림. 쓰러지는 레닌을 인민들이 부축하고 있다. 벽을 꽉 채울 정도로 큰 그림이다. 레닌은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다음 해인 1918년에 극좌 사회혁명당 당원의 총격을 받고 부상을 입었다. 암살 시도였다. 이 상황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일반 건물 두세 층을 쓰는 미술관은 작은 규모로, 회화와 조각 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안내해 주는 할머니는 말은 안 통했지만 더할 수 없이 친절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이끌고 다니면서 전시물들에 대해 좔좔좔 설명해 주었는데, 이것은 임무에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선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였다.



↑ 카잔의 카잔연방대학교 안에 있는 레닌의 대학생 때 모습 동상이다. 울리야놉스크에서 태어난 레닌은 17살 때 카잔으로 와서 이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닌 기간은 많지 않다. 불법 시위 참여로 곧 제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한때 학적을 둔 대학이라 젊은 레닌의 동상을 세웠다. 머리가 벗겨지기 전의 레닌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레닌은 카잔의 대학 주변에 머물며 학습을 통해 본격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 카잔 오페라극장 건너편, 타타르스탄 공화국 행정부 건물 앞에 있는 레닌상. 내가 본 것들 중에서는 가장 잘 생겼다. 옷의 켜 같은 것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기단부에는 그가 당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듯한 장면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 레닌 조형물은 아니지만, 레닌의 이름이 붙은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도서관이다. 1862년 설립되었고 1925년부터 '소련 국립레닌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된 1992년에 공식 이름에서 레닌을 떼고 '러시아 국립도서관'이 되었다. 하지만 건물 전면 상단 현판에 도서관 이름이 레닌에서 왔다는 내용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장서량 기준으로 세계 5위인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건물 앞에 탁자에 앉아 있는 노인 동상은 도스토옙스키다.


↑ 산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영웅도, 혁명가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레닌 묘 입구다. 레닌은 혁명 성공 뒤 7년 만인 1924년 초에 죽었다. 레닌의 시신은 방부 처리가 되어 이 묘 안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관광객에게 공개하기도 한다. 레닌의 묘를 옮기고 그를 매장해야 하는지는 러시아에서 오랜 논란거리다.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지만, 이면에는 국부(國父)나 다름없는 존재긴 하나 무너진 구 체제를 세운 사람에 대한 러시아인의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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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람들은 레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러시아에 대해 이모저모를 잘 짚어주는 웹사이트의 기사는 러시아인이 복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썼다. 나이 든 세대에게는 여전히 혁명의 영웅으로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만화 주인공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기사에 나온 30살 청년은 그가 쿠데타를 성공시킨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17년 4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 러시아인의 56%는 레닌이 그들의 조국 역사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대답했다. 부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22%였다. 레닌을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의 비율은 과거보다 높았다.

로스토프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러시아 동료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며 "I don't care much(크게 상관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자기 친구나 동료들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 젊은 세대가 이승만에 대해 갖고 있는 정도의 인식이 아닐까 싶었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돈 강의 다리를 건너며 미하일 숄로호프의 장편 소설 <고요한 돈 강>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그녀는 소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지루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가슴 두근거리며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한국 젊은 세대가 박경리의 <토지>에 대해 갖고 있는 정도의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동료는 자기 나라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현재 상태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30년 전의 러시아와 지금의 러시아를 비교한다면 어디가 더 좋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30년 전이라고 말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너무도 당연한 듯, 그때의 러시아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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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보고자 한 레닌은 다 찾아가서 봤다. 하나가 예외다. 한참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한 레닌이 있다.

레닌이 다녔던 카잔대학교 부근에는 술집 레닌이 있다. 선술집이나 펍이 아니라 클럽이다. 레닌을 이름으로 쓰고, 레닌의 초상화를 상징 이미지로 사용하는 클럽이다. (아래 사진은 자체 홍보 사진)





20세기 초 혁명 영웅 레닌이 21세기 초 유흥의 세계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 찾아가봤다. 지도에 표시된 지점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는 맞다. 다른 간판과 섞여 있어선지 입구가 달라서인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포기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설령 찾았더라도 그 분위기를 직접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돌아다닌 것은 초저녁이지만, 이 클럽은 밤에 문을 연다. 대신 분위기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충 알 수 있었다.

죽고 나서도 저렇게 장사 밑천이 되고 있으니, 여전히 인민을 위해 열렬히 봉사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너스:



레닌의 큰형님뻘 되는 카를 마르크스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건너편, 티아트랄나(테아트랄나야) 공원에 당당하고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다. 돌 속에서 슬금슬금 솟아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링>에서 귀신이 텔레비전 밖으로 슬슬 기어나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석상 아래에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연대하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그 옆 벤치에 앉아 쉬었다. 옆에서 형광색 옷을 입은 청소부들이 담배를 피웠다. 거대한 조각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러시아 사람들과 외국 관광객을 지켜보며, 지금의 세상에서는 누가 무엇으로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더위 탓이었는지, 답은 잘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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