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거짓말 때時 일事 (Issues)

택시 승차 시비 상대남 '성추행범' 누명 씌운 40대 여성

택시를 잡는 문제를 놓고 시비가 벌어진 와중에 여자가 남자를 성추행으로 신고했다.

남자는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긴급체포됐다. 그러나 택시 블랙박스와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여자가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매우 인상적이다. 성폭력 자체가 문제가 된 사건이 아니고, 여성이 일상적 시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 성폭력 피해를 수단으로 동원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우연히도 현장을 기록한 촬영물이 있어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늘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증거가 없었다면 남자는 꼼짝없이 성폭행범이 되었을 것이다. 점점 강화되는 성범죄 처벌에 따라 벌금형과 교육 명령을 받았을 테고, 회사원이라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었을 것이며, 이웃과 친지들에게는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여자는 가련한 성폭력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성범죄가 엄중히 수사되고 강력히 처벌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성폭력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주장하여 무고한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만드는 행위도 엄중히 처벌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도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성폭행범으로 낙인찍힐 때의 피해를 고려하면, 성폭행 무고에 대한 지금의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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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무고죄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청원성폭행 수사 때 무고죄 수사를 중지하는 방침을 철회하라는 청원에 대해 19일 청와대가 일괄하여 답을 내놨다.





수십만 명이 낸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은 불행하게도 거짓과 억지로 가득 차 있다.


1. 우리나라는 무고죄 처벌이 무겁다?

청와대 직원들은 이렇게 주고받는다.

Q : 형법상 무고죄가 특별법이 필요할 만큼 가벼운가요? 외국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A : 외국과의 형량을 비교하기 위해 도표를 준비해 봤는데요, 우리나라는 형법 제156조에는 무고죄의 형량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각국마다 무고죄의 구성요건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단순비교는 어려우나, 독일은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 프랑스는 5년 이하의의 구금형 및 45,000유로의 벌금,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 미국은 연방형법에 5년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무고죄의 법정형은 외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오히려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무고죄 형량을 중하게 규정하고 있네요.

이것은 거짓말이다.

1) 독일 형법(영문 pdf) 제164절에서 무고에 대한 처벌로 징역 5년까지의 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자기 죄를 벗어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무고하는 경우 형량은 10년까지로 늘어난다(제3항). 또 무고 행위로 인해 무고 피해자가 체포, 구금되거나 형을 받아 일주일 이상 자유를 속박받을 경우 무고자는 징역 1~10년의 형을 받을 수 있다(제239절의 준용).

2) 영국이 무고에 대해 6개월 이하 즉결심판에 처한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이다. 영국 형법(Criminal Law Act 1967) 제5절 제2조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경찰력을 낭비'시킨 사람에게 6개월 이하 형을 선고한다고 되어 있다. 청와대가 가져온 것은 이 조항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여 공권력을 낭비하도록 한 경우, 말하자면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거짓 신고하는 경우 같은 데 적용된다. 성폭행으로 무고하여 상대방을 체포하게 하는 것 같은 죄는 다른 조항, 즉 '정의 실현의 방해(Perverting the course of justice)' 죄를 처벌하는 조항의 규정을 받는다. 여기에 해당하는 죄는 1) 증인이나 판사를 위협하는 것 2)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는 것 3) 다른 사람을 무고하여 체포되게 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런 죄에 대한 처벌은 무기징역까지이다.

2017년 영국인 레베카 팔머(26)는 군인인 남자친구(22)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발했다. 남친은 체포되어 상당 기간 구금되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두 사람은 그동안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져 왔으며, 남친이 이별을 통고하자 레베카가 남친을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여자에게는 바로 그 '정의 실현의 방해' 혐의가 적용되었고, 징역 5년에 처해졌다.

영국에서 무고 처벌이 6개월 이하라고 주장하는 청와대는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진: BBC)


3) 다른 나라들은 귀찮아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는 7년까지 규정되어 있기도 하고, 미국의 경우도 주마다 다르다. 청와대는 자신의 주장에 맞는 국가들만 선별하여, 그것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외국 사례라고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책 추진을 합리화하기 위해 외국 사례를 제시하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예컨대 이 경우.)



2. 법정형만 높으면 뭐하나?

청와대도 인정하듯, 설사 한국의 무고죄 형량이 높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실제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고죄는 징역 10년까지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선고에 사용되는 무고 범죄 양형 기준은 이런 법정형과 큰 차이가 있다. 무고죄는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더라도 보통 6개월~2년을 선고하도록 되어 있고, 악질이라서 가중처벌을 한다 해도 4년 이하다.

10년 운운 하며 형량이 높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부분이 청원자들의 문제의식인데도 말이다.

결국 한국의 무고죄 형량이 다른 국가보다 높아서 지금으로도 충분하고 따로 법령을 손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거짓과 억지라고 할 수 있다.


3.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면 성범죄가 늘어난다?

무고죄 처벌 강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성범죄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성범죄가 더 늘어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환상이고 망상이다.

무고죄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답변 동영상에 등장한 박형철 비서관 자신의 말로 들어보자.

왜냐하면 상당수의 혐의없음 사건은 혐의 유무가 명백한 것이 아니라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아서 혐의없음 처분을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무고죄도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고소 내용이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면 당연히 무고죄로 처벌하겠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한 상태에서 그 정황을 다소 과장한 데 그치는 경우에는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성범죄자로 몰린 사람에게 무혐의(혐의가 없음) 결정이 나더라도, 즉 실질적으로 무죄라도 여전히 거짓으로 고발한 사람을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무고죄는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경우에 한해 인정되고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성폭행 논란이 벌어지는 대부분의 상황을 배제하게 된다. 실제로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방어 수단으로 무고죄를 제기해봤자, (설령 그가 무혐의 판정이 나더라도) 실제로는 무고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확실하게 거짓으로 밝혀지는 사안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라는 것이 왜 실제 성범죄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되는지 당신은 이해가 되십니까? 터무니없는 무고를 할 보편적 가능성을 미리 열어두고자 의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4. 무고가 성범죄 피해자를 해친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무고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그런 범죄가 자꾸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무고가 만연하면, 실제로 벌어진 성폭력도 의심을 사게 되고 성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자신도 무고자로 몰릴까 염려하여 신고를 꺼리게 된다. 무고자를 엄벌하는 것은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사람을 줄이는 동시에, 실제로 성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감수성이 확산되고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것은 당연하고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성범죄 무고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성폭행 무고는 가벼운 일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신고했다가 들통나는 일은 지금도 하루에 네 건씩 벌어지고 있다.

성폭행이든 성폭행 무고든, 죄가 있으면 그 죄질에 맞게 공정하게 처벌하면 된다. 그게 국민이 사법 체계에 기대하는 바다.

거짓과 억지로 이루어진 변명을 내놓는 대신, 수십만 명의 국민이 느끼는 문제가 무엇인지 좀더 자세히 살피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소중한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의 임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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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7월22일 10:40)

성폭행 수사 때 무고죄 수사를 중지하는 방침(검찰 매뉴얼)을 철회하라는 청원과 관련하여, 일찌기 이와 같은 내용을 아예 법률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2016년 12월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 정춘숙 대표 발의). 당시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으나 이번 매뉴얼로 그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형철 비서관은 △성폭력 범죄 관련뿐 아니라 모든 무고 사건에 적용되는 것이고 △성폭력 수사가 무고혐의 수사가 되므로 중지해도 계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그런 수사 매뉴얼이 한국에만 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등의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스스로 말하듯 이 매뉴얼은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의 권고사항을 검찰이 수용한 것"이다. 그 의도가 성범죄 관련 무고 수사를 중지시키는 데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며, 모든 무고에 해당한다고 말한 것은 물타기나 눙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런 매뉴얼이 한국에만 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외국 어디에 그런 방침이 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무고죄 수사를 강제 중지하려는 시도의 본질적 문제는 이선옥이 쓴 '성폭력 무고죄 적용 유예,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에 잘 정리되어 있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 속한 집단에 따라 인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적용되는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때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입법 시도가 실패한 뒤 같은 내용이 검찰 매뉴얼 형식으로 적용된 데 대해서 이선옥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작년 1월 미디어오늘에 ‘성범죄 무고죄 예외적용에 반대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난 후 주변의 법률가들은 하나같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위헌적인 법률이 통과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운동이 힘을 얻으니깐 특정 국면에서 발의되고 마는 휘발성 법률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적용을 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했고, 그게 현실로 나타났다.

생각을 하지 않거나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런 정연한 성찰적 주장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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