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일은 두렵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극심한 더위가 지속되면서 걱정해야 할 일이 늘고 있다. 이를테면 내가 오가는 길의 아스팔트가 갑자기 불룩 솟아있지나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거나 불편한 정도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다.

사진관에 갔다. 널찍한 공간에 선풍기가 2개 돌아간다. 많이 더우시죠? 주인이 에어컨을 틀어준다. 손님이 없으면 꺼둔다며, 공기가 더워 미안해 한다. 카페나 식당처럼 늘 손님이 있는 업소는 어쩔 수 없이 돌려야 하겠지만, 이따금씩 오는 공간은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도 사람인데.


--- ** --- ** ---


내가 있는 공간의 온도는 지금 32.8도다. 예전 같으면 도저히 지낼 수 없는 상황이다. 몇주째 계속되는 불볕 더위에 사람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하다. 예년보다 훨씬 자주 에어컨을 돌리고 있지만, 하루종일 그럴 수는 없다. 이렇게 에어컨을 돌려본 적은 처음이다.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모른다. 모르는 일들은 대개 두렵다.

공간 유지비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자영업자 심정을 알 것 같다.

에어컨 스위치를 무심코 누르는 사람이 있고 신경을 다 쓰며 누르는 사람이 있다. 그 잠깐의 순간이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심리학, 공공행정학, 생물학의 탐구 대상이 될 만하다.

미국에서 무척 더운 날은 '온도가 세 자릿수'라는 말로 자주 표현된다. 화씨 100도(섭씨 37.8도)를 넘는다는 뜻이다. 끔찍한 온도인데, 중위도 지역에서 그런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2016년 지구 표면 온도는 1880년 이래 가장 높았다. 그 다음해인 작년은 역대 2위였다. 지구는 계속, 그리고 가속적으로 더 뜨거워진다. 그 끝은 무엇이 될지 모른다. 우리 후손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후손들은 적절히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기온이 36~7도라면 사람 체온 수준이네? 사랑하는 사람과 살을 대고 붙어있어도 더워서 괴로운 경우는 별로 없다. 이렇게 더운 날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내 곁에 몰려와 살을 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더 더워진다.


--- ** --- ** ---


근처에 시립 스포츠센터가 있다. 폐기물 처리시설을 지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지역 주민을 위해 편익시설로 지어진 것이다. 입장할 때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야 한다. 처리시설을 중심으로 반지름 300m의 원을 그리고, 주소지가 그 안팎인지를 따져 요금을 차등하여 받는다.

서울이 기상 관측 사상 최고 온도를 기록하던 날. '자유 수영'을 하러 갔더니 수영장이 아니라 목욕탕이다. 강습이 끝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유 수영 시간에도 계속 풀에 머물러 있다. 아줌마와 할머니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이 수영도 하지 않고 레인 양쪽 끝을 점령한 채 수다를 떨고 있다. 초급 레인도, 중급 레인도, 상급 레인도 똑같다. 잠깐 숨을 돌리고 싶어도 쉴 공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왔다갔다 했다.

나오면서 다리에 쥐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 ** --- ** ---




폭염 날씨에 볼 만한 영화 <파이니스트 아워>는 해난 구조를 다룬 2016년 작품이다. 1952년 벌어진 실제 사고를 소재로 했다. 한겨울 폭풍우치는 바다를 보면 잠시 서늘해진다.

우리말 제목은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 없다. 한글로 쓰였으니 영어도 아니고, 글자가 한국인에게 아무런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니 한국어도 아니다. finest hour는 '일생의 전성기'와 비슷한 뜻이지만, 능력이 꽃피는 시기라는 뜻보다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라는 의미가 강하다. 영화에서는 교과서적인 올곧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내들이 자신을 희생시키며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만들어 낸다.

바다를 두려워하는 여자에게 바다를 집처럼 여기고 사는 남자가 말한다. 괜찮아요,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자가 말한다. 나는 물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단지 밤 바다가 무서운 거에요.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안 보이니까요. 모르면 두렵다. 남자가 말한다. 물 속에는 더 많은 물이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더 많은 물'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두려운 존재다. 물은 질료이자 에너지이다.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질료가 에너지를 담고 밀어닥치면 인간은 오로지 무력하다.

현대 도시인은 수영을 실내 풀에서 배운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질료의 양은 사람이 안전할 정도로 제한적이고, 담긴 에너지는 0에 가까울 정도로 미약하다.

자연의 물은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순하게 보여도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물이다. 실내 풀에서 배운 수영의 자신감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의 물을 상대하는 것은, 사료에 배부른 애완견에 익숙하다고 굶주린 들개떼를 쓰다듬으러 나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 앞에 인간이 할 일이란 겸손해지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끔찍하게 더운 여름이 초래하는 더 끔찍한 사고들이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몰라서 두려운 것들이 우리를 삼키지 않기를. 그리고 이상 기온이라는 미시적 체험이 인류의 운명이라는 거시적 문제까지 염려하는 계기가 되기를.


[덧붙임] (8월5일 13:00)

'불덩이 한반도의 경고'…온실가스 안 줄이면 길고 독한 폭염 일상화 (뉴시스, 8월5일)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