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행정 1 때時 일事 (Issues)

'따릉이'라는 자전거가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의 자전거들이다. 서울 시내 중심부 군데군데에 늘어서 있는 녹색 자전거가 따릉이 시스템의 자전거다.


(사진: 서울시)


나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서울 도심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는 대체로 너무 복잡하고 위험하다.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필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들과 위험한 씨름을 벌이며 병행해야 하거나, 아니면 인도로 다니며 행인에게 민폐를 끼쳐야 한다. 언제나 바쁜 자동차 운전자들은 대개 자전거 운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거의 없다. 가끔 안국동 사거리 같은 곳에서 따릉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서울시는 지난 4월에 종로에 자전거 전용차로를 만들었다. 그런 일을 한다고 보여주는 것 말고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종로통의 교통 상황을 무시한 조처라는 비판, 또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통행을 시도하면 매우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여전하다.


--- ** --- ** ---


따릉이와 관련해 또다른 탁상 행정이 등장했다. '따릉이 안전모'다.


(사진: 뉴시스)


서울시는 7월20일부터 서울 여의도 일대의 따릉이 자전거 대여소에 자전거 핼멧 5백 개를 비치하고 시민에게 무료로 대여해줬다. 안전모 공유 사업은 한 달간 시범적으로 운영하여 그 성과를 살펴볼 예정이었다.

여의도를 비롯해 서울시 전역에 비치된 헬멧은 사업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절반이 없어졌다.


서울시가 공공 자전거 '따릉이' 안전모를 무료로 빌려준 지 나흘 만에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영등포구 여의도 따릉이 대여소 30곳에 안전모 858개를 비치했다. 오는 9월 28일부터 안전모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사전 서비스였다. 그러나 시행 5일째인 24일 점검해보니 404개(47%)가 분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전역 대여소 1290곳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시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회수율이 낮을 줄 몰라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

사업 시행 하루 전인 19일에는 안전모가 한꺼번에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여의나루역 따릉이 대여소 보관함에 넣어둔 64개 안전모 중 30여개가 시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몇 시간 사이에 사라졌다.


기사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지도 않는 사람들이 안전모를 집어갔다고 한다. 자기 자전거를 타면서 이 안전모를 쓴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 상당수가 헬멧을 반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공공 재산인 안전모를 집어가면서도 별다른 문제 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 기사의 부제처럼 '공유경제 못따라가는 시민의식' 같은 평가가 나온다. 하긴 남의 것을 집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 초보적인 사회 생활 수칙이고, 이를테면 일찌기 코흘리개 때 배우고 터득해야 하는 규범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행정 주체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서울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여 도덕성을 시험해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간 종류의 집합인 시민은 그런 시험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90%의 시민이 양심적이라도 10%가 양심적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행정이다. 이 같은 조처는 행정 자원을 비양심적인 소수의 편익을 늘리는 데 투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맥락에서 시민이 비양심적이 되도록 유도한 책임도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수만 원짜리 물품 수십 개를 별다른 안전 장치도 없이 늘어놓고 있는 것은 도둑질을 하라고 유혹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내 것은 아니지만 나 아니라도 누군가가 가져갈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쉽게 합리화할 수 있다.

서울시가 안전모들이 그대로 보존되기를 기대했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행정이 그렇게 순진한 태도에서 결정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이 이미 이런 행정에 낭비되고 있다. 서울시뿐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안전모를 비치할 계획을 세웠다. 각기 수억 원씩이 드는 사업이다.

근본적으로 이런 일을 빚은 출발점, 즉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강제로 자전거 헬멧을 쓰도록 하는 법을 만든 아버지스러운 정부나 정치가들부터 고질적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9월28일부터 적용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자전거를 탈 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런 법을 만든 사람들 중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은커녕 페달을 밟아본 사람조차 아주 드물 것이다.

시민사회가 성숙하는 데 있어 이들은 솔루션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해자들이다.


[덧붙임] (8월24일 16:00)

‘탁상행정’ 비판 커지자…행안부 “자전거 헬멧 단속·처벌 안 한다” (<한겨레> 8월14일)

이 때문에 불필요한 법을 만들어 정부가 시민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만정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 대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며 “그릇된 정책으로 지방정부가 공공자전거 안전모를 마련해야 하는 등 수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관련 법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릉이 헬멧' 이용률 3%, 분실률은 24%…서울시 '골치' (연합뉴스 8월24일)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주무 부처인) 행안부가 안전모 미착용을 단속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비치할 필요가 없다"고 헬멧 비치에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며 "여의도에 안전모를 시범 비치한 것도 억지 춘향 격으로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덧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