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행정 2 때時 일事 (Issues)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일이다. 길에 넘어져 있으니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서고 사람이 다가왔다. 누군가가 911에 신고를 했다. 곧 경찰관과 구급대원과 소방대원이 도착했다. 경찰관은 순찰차를 타고 왔고 구급대원은 구급차를 타고 왔고 소방대원은 소방차를 타고 왔다.

구급대원들은 도로 위에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부상 당한 부위를 조심스럽게 고정시킨 뒤 간이 침대에 눕혔다. 그런 채로 구급차에 실려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부상은 심했지만 촌급을 다투는 상황은 아니었고 정신도 겉보기에는 멀쩡해서 그런지,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나중에 이 구급차를 이용한 비용이 청구되었다. 약 600달러(67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리가 짧아서 이 정도였다. 까딱하면 1백만 원도 가볍게 넘는다.

한국도 사설 구급차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경험담에 따르면 100km 이동이니 거리가 좀 되긴 했지만, 구급차 비용으로 20만 원 가까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가 운영하는 119 구급차(소방서 소속)는 이송 비용을 받지 않는다. 위급한 국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위급할 때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구급차가 있고 수십만 원이 될 수도 있는 비용을 물리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공공 의료 시스템의 큰 혜택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있다.

"택시없어" "변비 심해" 119 부르는 '철면피' 대한민국

위급하기는커녕 아프지도 않은데 개인적 목적을 위해 구급차를 자가용 부르듯 불러 타고다니는 인간들이 있다는 얘기다.

기사에 나온 철면피들의 행각은 한마디로 구급차를 콜택시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로 구급 상황 신고를 하고, 달려온 구급차를 타고 병원이 있는 시내로 외출한다. 자기 목적지로 가기 위해 특정 병원으로 가자고 고집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병원(목적지인 시내)에 도착하면 모두 병이 싹 낫는다는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같은 문제가 몇 년 전에도 '119 구급차가 개인 자가용?' 같은 기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이들의 행각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나쁜 자들은 언제 어디나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 중요한 문제는 구급차 운영과 관련한 시스템이 이런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 구급차 서비스 무료 시스템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위 기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4만 8137명의 ‘비(非)응급 환자’가 119에 신고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공짜’라는 이유로 구급차를 부른 것이다.

이 부분은 문제의 핵심과 해결 방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구급차 서비스를 무조건 공짜로 제공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이 서비스를 악용하려는 의도를 자극하게 된다. 공공 자산은 임자 없는 재산이며 먼저 찾아먹는 놈이 임자라는 인식이 있다. 조금만 떼를 쓰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고 편하다는 식의 생활 지혜를 터득한 사람에게는 안 찾아먹는 게 바보인 것이 공공 서비스다.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그런 공공 서비스 착복을 하게 되고, 그래서 소방대원들 사이에 '단골 손님'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강원 태백시의 한 주민은 2014년 한 해 동안 119 구급차를 295번 이용했다고 한다.

시스템이 국민으로 하여금 공공 서비스를 남용하는 철면피가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멀쩡한 인간들이 구급차를 택시처럼 쓰는 일은, 공공 자산이 이기적인 철면피 국민에게 편취된다는 문제 말고도, 실제로 긴급한 상황에 빠진 동료 국민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도 옳지 않다. 미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구급차 이용 비용을 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공공 자원을 남용하는 일을 막자는 것이다.

구급차라는 공공 서비스의 이용은 공짜지만 그 운영은 공짜가 아니다.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며, 그 재원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공공 자산과 서비스에도 임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 임자란 힘겨운 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국민 전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야 한다. 구급차 서비스에 비용을 물리는 방식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구급차에 비용을 물리면 미국처럼 공공 의료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은 응급, 비응급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물린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구급차 본연의 목적인 진정한 응급 이송에는 비용을 물리지 않고 비응급에는 비용을 물리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무조건 과금과 무조건 공짜라는 양극단 정책이 낳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소방청 통계에서 알 수 있듯, 응급과 비응급은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거나 심장마비가 와서 촌각을 다투는 상황과 똥이 안 나와서 고민스러운 상황은 분명히 구분된다. 기사에 나오듯 '별다른 증상이 없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2. 민원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철면피 국민들의 막무가내 호출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민원 제기라고 한다.

거절할 경우 되돌아오는 ‘보복 민원’도 소방관들을 위축시킨다. 지난 3월 대구소방청 소속 소방관 이모(30)씨는 악성 신고자에게 “구급차 말고 대중교통을 타시라”고 말했다. 기분이 상한 악성 신고자가 보건복지부·대구시청 등에 “소방관 이씨가 불친절하다”는 민원을 쏟아냈다. 동시에 그는 일주일 내내 “아프다”며 119 출동을 요구했다. 이후 신고자는 ‘개선장군’처럼 구급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했다.

택시보다 비싼 구급차 비용을 물리면 이런 일이 싹 없어지겠지만, 어쨌든 민원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은 관심을 얻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거짓도 얼마든지 지어내서 세상에 뿌린다.

공공 서비스는 몰상식하고 이기적이며 더 나아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 민원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필요하면 법적 조처까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공 서비스 주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다.

명백한 가짜 구급 요청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구급대원에 대해서는 응급 자원 낭비를 예방한 공로로 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 민원에 휘둘리면 거짓 민원을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 서비스는 국민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도록 내몰아서는 안 된다.


3. 공공 교통 서비스로 보완될 부분을 찾아야 한다.

공공 서비스인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자들은 물론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이 없는 오지 같은 데에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런 행각을 거듭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사정이 있다면, 이런 점을 살펴 공공 교통 서비스를 보완하거나 확충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수혜자 과금 원칙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구급차 서비스를 남용하는 문제가 계속되자, 2016년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바 있다. 구급차를 이용한 사람이 도착지 응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지 않은 허위 이용의 경우 2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30조(과태료) ① 제4조제3항을 위반하여 위급상황을 소방기관 또는 관계 행정기관에 거짓으로 알린 자에게는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조항은 적극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랬다면 여전히 구급차를 콜택시로 이용한다는 기사가 나올 리 없다.

국민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시스템은 옳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철면피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 이들을 포함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Advertisement


 

덧글

  • 2018/08/10 00: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0 12: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8/10 14: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