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디션! 섞일雜 끓일湯 (Others)



스톡홀름에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 옆에 중년 남자가 앉았다. 아랍계로 보였다. 비행이 시작되고 승무원이 기내용 이어폰을 건네주는 것을 계기로 말을 나누게 되었다. 레바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다 지금은 스웨덴으로 이민간 정신과 의사다. 스웨덴에서 예쁜 스웨덴 여자와 재혼하고 좋은 직장도 잡았다. 그러나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 자주 베이루트를 간다고 했다. 아니, 그의 절반을 베이루트에 떼어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돌아가려고 고산지대 시원한 곳에 큼직한 집도 사두었다. 지금은 윈터 하우스, 춥고 긴 스웨덴 겨울에 휴가를 받으면 내려가는 용도로 쓴다. 그 집에는 12월에도 장미꽃이 피고 아보카도, 감귤, 키위가 자란다. 그는 휴대폰을 열어 두 집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곳곳에 아름다운 식물이 자라고 있는 베이루트의 집은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미치도록 비싼 스웨덴의 집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그는 성공한 이민자다. 하지만 서구화엔 실패한 사내였다. 1965년생인 이 아랍인은 스웨덴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여성주의에 큰 반감을 갖고 있었다. 트레디션, 트레디션! 그는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남자가 할 일을 남자가 하고 여자가 할 일을 여자가 하는 트레디션. 그는 자신이 사는 새 땅에서 이 경계가 무너져가는 데 혼동을 느끼고 분노했다. 문득 <지붕 위의 바이얼린>이 생각났다. 나는 세상이 변한다는 어중간한 말을 몇 번이나 해주었다. 그는 이런 변화를 서구 문화의 강압적 이식으로 보았다. 스톡홀름 인터넷 컨퍼런스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서비스를 문화 제국주의, ICT 제국주의, 신식민주의로 부르던 참가자가 떠올랐다. 그의 주장은 제3세계에서 온 많은 참가자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유럽은 크게 요동하고 있었다. 개인들은 그 혼돈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지붕 위의 바이얼린>은 원래는 무대 뮤지컬이다. 위에서는 1971년 영화화된 내용을 링크했지만, 뮤지컬에 나오는 '트레디션!'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다. 공연 1, 공연 2.

영화는 주옥같은 오리지널곡들이 흐르는 명작이다. 혁명의 와중에 전통적인 가치가 도전받고 한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되는 이야기를 좇다 보면 3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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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nZ 2018/08/16 19:43 # 삭제 답글

    글의 제목을 보고 노래의 멜로디가 떠올라 "어떤 노래였지?"했는데 지붕위의 바이올린이었네요.
    석양(혹은 동트는) 작면의 색감도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다른 영화였을지도.^^)
  • deulpul 2018/08/16 22:53 #

    그 영화가 맞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화된 선명한 색조에 익숙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좀 투박하고 생경해 보이는 원색 색감이지만, 말씀처럼 그 자체가 영화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은 물론 배우지만, 실제 연주는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했던 것도 인상적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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