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의식 결여돼 감형 때時 일事 (Issues)

수면제 먹인 후 ‘십년지기 생매장’ 주부, 징역 30년

제목만 보고 외국 소식인 줄 알았다. 엽기적인 내용도 그렇지만, 형량이 한국 법원에서 나온 것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느낌이다.

사건 개요:

1. 주부 이씨, 집을 나와 다른 사람과 동거하며 남편 박씨에게 이혼 요구
2. 이혼하면 위자료 많이 받아내기 위해 남편에게 귀책사유 조작 기도
3. 십년지기인 A씨(정신장애 의심자) 부추겨 남편과 성관계 하도록 지시
4. 이런 사실을 A씨가 주변에 말하고 A씨 동거남이 찾아와 왜 그런 일 시켰냐 추궁
5. 살해 결심
6. 수면제 탄 커피 먹여 잠들게 한 뒤 산 채로 매장 살해(2017년 7월14일)
7. 아들이 범행에 협력하고 남편은 범행 당일 설득해 가담시킴
8. 사회복지사, A씨 실종 신고(8월10일), 경찰 수사 시작
9. 이씨 모자 동선과 A씨 휴대전화 단절 지점 중복 확인 뒤 검거, 자백
10. 남편 박씨는 수사 시작되자 자살(11월28일)

올해 4월19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판사는 이씨에게 징역 22년, 아들 박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두 사람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었다.

넉 달 뒤인 8월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판사는 1심의 형량을 높여서 이씨에게는 징역 30년, 박씨에게는 18년을 선고했다. 죄질로 볼 때 1심 선고가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선고의 판결문에는 이씨 모자가 못 배우고 가난하게 성장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1심에서는 그런 사실이 형량을 줄여주는 이유가 되었다.

"피고인들이 물질적, 정서적, 교육적으로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해 준법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여 양형에 참작했다."

같은 범죄를 놓고 준법의식이 결여되면 형량을 깎아주고 준법의식이 높으면 형량을 높인다니, 이게 합리적인 이야기인가. 게다가 도로교통법 위반 같은 일상 범죄도 아니고, 아무리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도 다른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것은 판사들이 선민적이고 우월적인 입장에서 죄와 사람을 임의로 재단하는 비상식적 처분의 또 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준법의식 결여' 같은 것은 양형기준의 감경 요소에도 없는 것이다. 형법에 규정된 '형의 감면' 요건 중 심신 장애, 범의 부존, 사실 착오, 법률 착오 등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감경 요소 중 '범행 가담에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경우'라는 두루뭉술한 항목에 해당할지 모른다.

준법의식 따위는 애초에 갖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행여 죄를 저질러도, 준법의식을 갖고 있으면 더 큰 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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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기준 이야기가 나와 덧붙인다. 지금 적용되고 있는 양형기준에는 정상참작 요소로 '농아자'라는 게 있다.




살인을 해도, 강도를 해도, 강간을 해도, 뇌물을 받아도, 불을 질러도, 횡령을 해도, 불법 도박판을 벌여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부정선거를 저질러도 농아인이면 형을 줄여 받는다. 형법상 죄가 되는 모든 행위에 적용된다. 감경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니라, 무조건 감경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다.

이것은 형법 제11조에서 "농아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라고 못을 박아놨기 때문이다.

왜 이런 규정이 생겼나. 과거에 장애인이 교육 받을 기회가 부족하고 사회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던 때, 그로 인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때 만들어진 조항이다. 농아인은 듣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을 포함한 사회 규범을 학습하여 습득할 기회가 없고, 더 나아가 정신장애로도 연결된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장애인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 개체로 보는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청각보다 더 많은 정보 수용을 담당하는 시각에 장애를 가진 장애인에게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 조항은 형법이 처음 만들어진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2011년에 농아인 양아버지가 의붓딸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에서, 피고인은 1심 판결에서 농아자 감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항소했고, 2심에서는 이런 주장이 인정되어 형이 감경되었다.

농아인들조차 이 조항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독소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이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법원에 탄원을 내기도 했다.


많은 농아인이 특수교육을 통해 사고방식을 갖추고 자신의 뜻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졌으며, 오히려 이 조항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평등을 해치고 차별을 조장한다는 점, 특히 농아인이 농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면서 악용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이들은 "만일 농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가 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국가는 범죄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이에 파생되는 여러 기본권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라며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2010년에 법무부가 만든 '형법 총칙 개정 시안'에 이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이유는 똑같다.


농아교육의 발달에 따라 농아자도 일반국민과 마찬가지로 사물을 변별하고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농아자에 대한 형의 필요적 감경 규정을 삭제했다. 종전과 같이 농아자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형을 감경할 수는 없으며, 행위 당시에 책임능력 정도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 처벌 및 감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삭제했다'라고 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개정 방안이 신속하게 통과되었더라면, 2011년 항소심에서 의붓딸 상습 강제추행범이 형을 감면받는 일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8년이나 지났지만 바뀐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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