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신문사들이 참다 못해 집단 행동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은 데 대한 대응이다.
8월16일 아침,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서부터 지역 단위 주간지에 이르기까지 350여 개 신문들은 일제히 사설을 내어 트럼프의 정략적인 언론 공격을 비판하고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재천명했다. 사설 동맹에 동참한 신문들의 목록과 각 사설의 제목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미국 언론의 이른바 진보적 편견(liberal bias)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언론에 대해 벌이는 언행은 그런 개념을 붙이기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조야하고 원초적이다. 언론에 척을 진 정치인은 많았지만, 그 주장에 이렇게 동의할 수 없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설들도 대체로 언론 자유, 혹은 자유 언론의 가치라는 원론을 다시금 재확인하는 내용들이다. <뉴욕 타임스>와 <보스턴 글로브>의 사설을 옮겨본다. 특히 이 운동을 주도한 후자의 사설 내용이 시사적이다.
자유 언론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뉴욕 타임스> 사설)
미국 헌법이 제정된 해인 1787년에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친구에게 건넸습니다. "만일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데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건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언론이 그의 백악관을 내부에서부터 시시콜콜히 감시하는 데 지친 그는 언론의 가치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것들치고 믿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실조차 이 오염된 지면에 실리면 의심스럽게 된다."
제퍼슨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린 사회에서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하는 사업입니다. 또한 제퍼슨의 불만은 언론 자유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믿음이 말하듯, 제대로 된 정보를 갖춘 대중은 부패를 뿌리뽑고 장기적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신장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미국 대법원은 1964년에 "대중적 토론은 정치의 의무다"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은 "제약이 없어야 하고 활발해야 하며 그 폭이 전방위적으로 넓어야" 합니다. 또 이 토론에는 "정부와 공직자에 대해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2018년에 이런 공격 중 가장 파괴적인 것들은 오히려 정부 관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뉴스 매체를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입니다. 보도를 축소하거나 과장할 때, 또 무언가를 잘못 쓸 때 말입니다. 기자나 편집자도 인간이므로 실수를 저지릅니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것은 언론 업무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을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에 칼을 들이대는 일입니다. 또 언론인을 '인민의 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을 향한 이러한 공격은 법치주의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나라의 언론인에게 특히 위협적입니다. 미국에서라면, 언론 산업을 뒤흔든 경제 위기 때문에 이미 곤경에 처한 소규모 매체들에게 특히 위협이 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매체의 언론인들은 질문을 던지고 기사를 쓰는 일을 오늘도 열심히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런 일을 보고 듣지 못할 것입니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 트리뷴>(캘리포니아 서부 소도시에서 발행)은 지난 3월, 옷을 벗기운 채 의자에 46시간 동안 강제로 묶여 있다가 숨진 재소자 이야기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보도로 인해 해당 카운티는 정신병이 있는 재소자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주에 <보스턴 글로브>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응하여,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서부터 지역의 소규모 주간지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신문들과 연합하여, 미국이 지켜 온 언론 자유의 가치를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작업에 동참합니다. 우리가 여기 일부를 발췌하기도 한 이 사설들은 미국을 지탱하는 기초적인 기관인 언론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직 독자가 아니라면, 당신의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구독하십시오. 그들이 일을 잘 할 때 칭찬해주고,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때 비판해 주십시오. 우리는 함께 이런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 사설)
미국 헌법이 제정된 해인 1787년에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친구에게 건넸습니다. "만일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데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건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언론이 그의 백악관을 내부에서부터 시시콜콜히 감시하는 데 지친 그는 언론의 가치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것들치고 믿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실조차 이 오염된 지면에 실리면 의심스럽게 된다."
제퍼슨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린 사회에서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하는 사업입니다. 또한 제퍼슨의 불만은 언론 자유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믿음이 말하듯, 제대로 된 정보를 갖춘 대중은 부패를 뿌리뽑고 장기적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신장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미국 대법원은 1964년에 "대중적 토론은 정치의 의무다"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은 "제약이 없어야 하고 활발해야 하며 그 폭이 전방위적으로 넓어야" 합니다. 또 이 토론에는 "정부와 공직자에 대해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2018년에 이런 공격 중 가장 파괴적인 것들은 오히려 정부 관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뉴스 매체를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입니다. 보도를 축소하거나 과장할 때, 또 무언가를 잘못 쓸 때 말입니다. 기자나 편집자도 인간이므로 실수를 저지릅니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것은 언론 업무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을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에 칼을 들이대는 일입니다. 또 언론인을 '인민의 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을 향한 이러한 공격은 법치주의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나라의 언론인에게 특히 위협적입니다. 미국에서라면, 언론 산업을 뒤흔든 경제 위기 때문에 이미 곤경에 처한 소규모 매체들에게 특히 위협이 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매체의 언론인들은 질문을 던지고 기사를 쓰는 일을 오늘도 열심히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런 일을 보고 듣지 못할 것입니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 트리뷴>(캘리포니아 서부 소도시에서 발행)은 지난 3월, 옷을 벗기운 채 의자에 46시간 동안 강제로 묶여 있다가 숨진 재소자 이야기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보도로 인해 해당 카운티는 정신병이 있는 재소자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주에 <보스턴 글로브>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응하여,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서부터 지역의 소규모 주간지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신문들과 연합하여, 미국이 지켜 온 언론 자유의 가치를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작업에 동참합니다. 우리가 여기 일부를 발췌하기도 한 이 사설들은 미국을 지탱하는 기초적인 기관인 언론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직 독자가 아니라면, 당신의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구독하십시오. 그들이 일을 잘 할 때 칭찬해주고,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때 비판해 주십시오. 우리는 함께 이런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
(<보스턴 글로브> 사설)
부패한 정권이 나라를 장악하면 언제나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자유 언론을 정부가 통제하는 언론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정부 정책을 뻔뻔하게 지지하기 거부하는 언론 종사자를 '인민의 적'이라는 생각하도록 주문을 외우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닳고닳은 사기꾼이 희망을 좇는 군중에게 '마법'의 가루나 물을 뿌리듯, 이것은 이 대통령이 쏟아낸 수많은 거짓 중 하나입니다.
존 애덤스는 "언론 자유(liberty)는 자유(freedom) 수호에 필수적이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미국적 원칙은 지난 두 세기 이상의 기간에 내부적으로는 언론인을 보호하는 지침이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자유 국가의 모델로 기능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원칙은 심각한 위협에 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 러시아, 중국, 이라크에 이르는 세계 곳곳의 폭압적 정부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유 사회에서 언론은 필수적입니다. 언론은 지자체의 공무원에서부터 백악관 수장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도자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일 같은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개인 재정 관계가 불투명하며, 의심스러운 행동 방식 때문에 그 자신의 법무부가 그를 조사할 특별검사를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통령이 독립적 취재 조사를 수행하는 언론인들을 위협하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언론이 그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한때 미국에서는 당파나 세대에 상관없이 폭넓게 공유되는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미국인에게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수행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중 48%는 "뉴스 매체는 미국인의 적이다"라는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 조사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주에 나온 또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의 51%가 언론이 "민주주의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아니라 인민의 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트럼프의 (언론) 공격과 그에 대한 호응이 보이는 연쇄 작용은, 그의 지지자들이 왜 그를 따라 반민주적인 세상으로 들어가는지 설명해줍니다. 미국인 4분의 1 이상이 "대통령은 나쁜 행위를 하는 언론사를 폐업시킬 권한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로만 한정하면 43%로 올라갑니다. 조사 대상자의 13%는 "트럼프 대통령이 CNN,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와 같은 주류 언론을 폐업시켜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트럼프는 언론이 자기 일을 하는 것을 불법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나 레제프 에르도안(터키 대통령) 같은 21세기식 권위주의자는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모델을 활용하여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공식적인 검열이 아니라도 정보 흐름을 옭죄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옹호자들은 그가 언론 전체가 아니라 단지 선입견에 사로잡힌 보도만을 비난한다고 얼버무립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의 말이나 지금까지 보여온 행적을 보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냉소적이고 부정직한 것인지 거듭해서 입증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언론이 선입견을 가진다는 것을 당연하게 보았고, 그런 줄 알면서도 언론인과 편집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명백한 방식으로 헌법에 새겼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우리의 자유(liberty)는 언론 자유에 달려 있으며, 부분적 제한은 곧 전적인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건국자들 이래 미국 정치인들은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고 언론에 대해 불평해 왔으며, 뉴스 보도가 자기네에게 불리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심판자 역할을 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 기관으로서의 언론에 대해서는 언제나 존경심이 존재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자유 언론이라는 우리의 전통은 민주주의에 소중한 부분이며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라고 선언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입니다.
대법관 휴고 블랙은 1971년에 "언론은 통치하는 자가 아니라 통치받는 자에게 봉사하여야 한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그런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트럼프를 지지하는 운동에 의해 합법적이라고 인정받는 매체는, 트럼프 개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매체들뿐입니다.
트럼프는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이 자신을 따라 환상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캔사스의 행사에서 그는 한 참석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만 믿으세요, 가짜 뉴스 같은 쓰레기나 만드는 인간들은 믿지 마시구요. 당신이 보거나 읽는 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조지 오웰은 이런 상황을 소설 <1984>에서 좀더 우아하게 표현했습니다. "당은 당신의 눈과 귀가 확인한 정보를 거부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핵심적인 명령이었다."
트럼프가 객관적 사실 여부를 따지며 지지자들도 똑같은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부정직함으로 폭주하는 자신의 행각을 종착점으로 몰고 가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오른 뒤 558일 동안 4천229개의 거짓말이나 오도될 수 있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지지자들 중 17%만이 트럼프 행정부가 주기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정보를 갖춘 시민, 자치의 책임이 있는 이들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 언론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인민의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공유해 왔던 시민적 합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각일 뿐 아니라, 비미국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보스턴 글로브> 사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를 떠받치는 중심 기둥은 자유 언론에 대한 일관된 공격입니다. 그에게 언론인들은 동료 미국인이 아니라 '인민의 적'으로 간주됩니다. 자유 언론에 대한 이 같은 지속적인 공격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 여부, 규모의 대소를 따지지 않고 전국의 신문 편집자들에게 연락을 보내, 이 근본적인 위협에 대해 각자의 언어로 의사를 표명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부패한 정권이 나라를 장악하면 언제나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자유 언론을 정부가 통제하는 언론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정부 정책을 뻔뻔하게 지지하기 거부하는 언론 종사자를 '인민의 적'이라는 생각하도록 주문을 외우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닳고닳은 사기꾼이 희망을 좇는 군중에게 '마법'의 가루나 물을 뿌리듯, 이것은 이 대통령이 쏟아낸 수많은 거짓 중 하나입니다.
존 애덤스는 "언론 자유(liberty)는 자유(freedom) 수호에 필수적이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미국적 원칙은 지난 두 세기 이상의 기간에 내부적으로는 언론인을 보호하는 지침이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자유 국가의 모델로 기능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원칙은 심각한 위협에 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 러시아, 중국, 이라크에 이르는 세계 곳곳의 폭압적 정부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유 사회에서 언론은 필수적입니다. 언론은 지자체의 공무원에서부터 백악관 수장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도자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일 같은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개인 재정 관계가 불투명하며, 의심스러운 행동 방식 때문에 그 자신의 법무부가 그를 조사할 특별검사를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통령이 독립적 취재 조사를 수행하는 언론인들을 위협하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언론이 그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한때 미국에서는 당파나 세대에 상관없이 폭넓게 공유되는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미국인에게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수행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중 48%는 "뉴스 매체는 미국인의 적이다"라는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 조사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주에 나온 또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의 51%가 언론이 "민주주의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아니라 인민의 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트럼프의 (언론) 공격과 그에 대한 호응이 보이는 연쇄 작용은, 그의 지지자들이 왜 그를 따라 반민주적인 세상으로 들어가는지 설명해줍니다. 미국인 4분의 1 이상이 "대통령은 나쁜 행위를 하는 언론사를 폐업시킬 권한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로만 한정하면 43%로 올라갑니다. 조사 대상자의 13%는 "트럼프 대통령이 CNN,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와 같은 주류 언론을 폐업시켜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트럼프는 언론이 자기 일을 하는 것을 불법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나 레제프 에르도안(터키 대통령) 같은 21세기식 권위주의자는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모델을 활용하여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공식적인 검열이 아니라도 정보 흐름을 옭죄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옹호자들은 그가 언론 전체가 아니라 단지 선입견에 사로잡힌 보도만을 비난한다고 얼버무립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의 말이나 지금까지 보여온 행적을 보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냉소적이고 부정직한 것인지 거듭해서 입증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언론이 선입견을 가진다는 것을 당연하게 보았고, 그런 줄 알면서도 언론인과 편집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명백한 방식으로 헌법에 새겼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우리의 자유(liberty)는 언론 자유에 달려 있으며, 부분적 제한은 곧 전적인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건국자들 이래 미국 정치인들은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고 언론에 대해 불평해 왔으며, 뉴스 보도가 자기네에게 불리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심판자 역할을 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 기관으로서의 언론에 대해서는 언제나 존경심이 존재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자유 언론이라는 우리의 전통은 민주주의에 소중한 부분이며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라고 선언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입니다.
대법관 휴고 블랙은 1971년에 "언론은 통치하는 자가 아니라 통치받는 자에게 봉사하여야 한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그런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트럼프를 지지하는 운동에 의해 합법적이라고 인정받는 매체는, 트럼프 개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매체들뿐입니다.
트럼프는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미국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이 자신을 따라 환상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캔사스의 행사에서 그는 한 참석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만 믿으세요, 가짜 뉴스 같은 쓰레기나 만드는 인간들은 믿지 마시구요. 당신이 보거나 읽는 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조지 오웰은 이런 상황을 소설 <1984>에서 좀더 우아하게 표현했습니다. "당은 당신의 눈과 귀가 확인한 정보를 거부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핵심적인 명령이었다."
트럼프가 객관적 사실 여부를 따지며 지지자들도 똑같은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부정직함으로 폭주하는 자신의 행각을 종착점으로 몰고 가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오른 뒤 558일 동안 4천229개의 거짓말이나 오도될 수 있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지지자들 중 17%만이 트럼프 행정부가 주기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정보를 갖춘 시민, 자치의 책임이 있는 이들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 언론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인민의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공유해 왔던 시민적 합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각일 뿐 아니라, 비미국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보스턴 글로브>사설에 함께 실린 여론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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