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자회견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알파빌(Alphaville)이라는 밴드가 있다.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지금도 활동은 계속하고 있는 독일 밴드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무슨 일이 있어 이 밴드의 공연을 훑어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유튜브에는 최근의 알파빌이 왕년의 힛 넘버인 'Big in Japan'이라는 곡을 연주하는 동영상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2013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의 '오토 라디오 디스코테카 80s' 공연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또 다른 영상은 2017년에 폴란드 루빈에서 열린 '쿠프럼 힛츠 페스티벌 2018'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같은 밴드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러시아 공연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관객들의 열기가 생생히 전해지는데, 폴란드 공연은 뭔가 착 가라앉고 분위기가 뜨지 않는 느낌이다. 싱어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추임새를 넣는 게 안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것이 실제로 존재한 차이라면,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연의 규모, 공연장의 특성, 입장 관중의 특성, 관중의 통제 정도, 페스티벌에서 이 밴드의 연주 순서, 러시아와 폴란드의 국민적 특성 같은 것들이 모두 공연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런데 또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는 듯하다. 두 공연에서 각각 두 장면씩만 골라 비교해 보자.


1. 2013년 러시아 공연




첫 사진은 무대 앞쪽의 관중들이 풋쳐핸접을 하고 리듬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밴드의 연주에 열렬히 호응하고 있다. 조금 멀어서 잘 안 보이면 두 번째 사진을 보면 된다. 객석 중간에 있는 관객들도 손을 들고 몸을 흔들고 춤을 추며 공연을 열심히 즐기고 있다.


2. 2017년 폴란드 공연




모스크바 공연 때와 거의 비슷한 앵글을 잡아봤다. 노래가 연주되고 있는데 무대 앞에서 밴드에 호응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주 고요하다. 관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줌아웃을 해서 잡은 두 번째 사진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이들은 풋쳐핸접을 하긴 하는데, 그 손에 폰이 들려 있다. 왼쪽에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일제히 전화기를 들고 녹화중이다. 밴드는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기타와 건반을 연주하고 드럼을 두들기는데, 관객들은 조용히 동영상을 찍고 있다.

라이브 팝 공연이 기자회견장이 되고 있다.

열심히 퍼포먼스를 하는 밴드 앞에서 미동도 없이 숨죽인 채 폰를 들고 있는 군중의 모습은 심지어 섬찟하기까지 하다.

폰으로 영상을 찍는 것도 물론 공연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런 분위기를 원하는 공연자는 거의 없을 듯싶다. 관객이 열렬히 호응해 주어야 신이 나게 마련인 라이브 공연자에게 폴란드 공연장 모습은 아마도 악몽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유까지 포함하여 공연 중 촬영을 금지하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 오토 라디오의 경우도 촬영을 금지했을 수 있는데, 중간중간에 찍는 사람이 있으니 확실하지는 않다. 촬영을 금하지 않았더라도 2013년과 2017년이라는 시간차가 많은 설명을 해 줄 수도 있다.

공연에서는 그냥 그 당시를 충실하게 즐기는 것이 자신에게도 더 의미 있는 일이고 관객이나 팬으로서도 좋은 매너가 아닐까 싶다. 값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왔음에도 현장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일 때문에 입장한 카메라맨처럼 동영상이나 찍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분위기 즐기는 일을 포기하고 열심히 찍어봤자, 그런 영상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SNS에 올려서 자랑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고 그 영상을 보아줄 여유도 없다. 당신의 페이스북에 가끔씩 의무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지인 정도나 또다시 의무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과장된 치하를 할 따름일 것이다. 그들이 공연과 밴드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이 찍은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영상, 이를테면 오피셜 영상을 찾아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잘 찍어도 그보다 잘 찍을 수는 없다.

스맛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쉽게 찍을 수 있다는 말은, 어느 경우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기록하는 일보다 순간을 즐기는 일이 훨씬 더 소중할 때도 얼마든지 있다.


[덧붙임] (8월24일 10:15)

머룬 5(Maroon 5), "Put it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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