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공장 섞일雜 끓일湯 (Others)

작년 이맘때 어느 날이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 않았다. 전화는 연속으로 두 번 오다 끊어졌다.

다음날 같은 번호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역시 받지 않았는데, 벨이 울리다 끊어지고 나서 다시 또 울린다. 받았다.

"여보세요?"

"아, 혹시 이게 OOO 박사님 전화인가요?"

호칭은 잘못됐지만 이름은 내 이름 맞다.

"아... 네 그렇습니다만?"

"누군가가 박사님을 찾고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

"부산에서 의류업을 하시는 OOO라는 분이 형님이시지요? 동생분을 찾고 계십니다."

나에게 형님이 있었나? 이름도 낯선데...

잠깐 생각해보니 정겹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이분은 외가쪽으로 육촌인 형님이다. 촌수로는 조금 멀지만, 집이 외가 바로 옆에 있어서 어렸을 때 외가를 가면 늘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이 낯선 이유는, 내가 아는 이름은 집에서 부르는 것으로 공식 이름과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 간 이후 연락이 끊어졌는데, 나를 찾고 계신 모양이다. 나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어떤 언론사 기자라고 한다. 형님에게 내 번호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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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또다른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바로 받았다. 육촌 형님이었다.

"니는 와 한국에 왔으면서 연락을 안 해서 내가 사람을 찾게 만드노."

사연은 이랬다. 사업을 하다보니 지역 언론 기자들을 만나게 된다. 광고를 내면 더 골치아프니 대신 사람이나 하나 찾아달라고 했단다. 이름과 미국 갔다는 정보 정도는 주었을 것이다. 요즘 개인 기초정보는 공공정보나 마찬가지다. 공공성을 지닌 직장에 몸을 담은 적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형님은 자수성가로 의류업 중소기업을 일으켰다. 90년대에는 대기업 하청을 받아 브랜드 제품에 납품도 했다. 원청 관리를 해야 하므로 서울에 종종 올라왔다. 대기업 구매과 직원들에게 술을 사는 자리에 나가본 적이 있다. 원청쪽 직원 서너 명을 형님이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야기는 없고 술만 퍼붓는 자리라서 세상에 드물게 재미없는 술자리였다.

15년 세월 동안 사업도 부침이 있었다. 지금은 의류업 중에서도 특정한 영역에 집중한다고 하신다.

"야~ 내는 사업 실패한다는 게 남들 이야긴줄만 알었다. 근데 그게 나한테도 벌어지더라고."

사실 나와 전화할 때 형님의 관심은 자기 사업이 아니라 내 사업이다.

"니는 뭐 하노? 이제 머할낀데? 뭐? 뭐? 뜻도 좋지만은 뭐든 좀 쎄게 한 방 해야 안 되겠나. 야~ 니 그때 그냥 사법고시 했어야 하는데. 그라믄 지금 그 뭐 판사덜 금사덜 다 쫄로 보고 댕길 거 아이가. 야~ 참..."

친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래도 진심으로 내 걱정 해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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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찾아뵙는다 하면서도 1년 넘게 전화만 한다. 추석 지나고 나서 한 통화에서 요즘 사업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다른 말부터 한다.

"니 빨리 부산 내려와갖고 나한테 강의 쫌 해라. 사차산업이고 뭐고 에이아이고 뭐고 이거 와서 특강 한 번 해라. 내가 소주 사께."

형님은 바로 얼마 전까지 공장을 두 개 돌리고 있었다. 나를 찾는 전화를 해왔던 기자도 형님 사업이 튼실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광고 영업을 했겠지.

그런데 최근에 공장 하나를 닫았다.

"도저히 인건비를 당할 수가 없는기라. 직원한테 나가는 돈이 그냥 막 뛰어갖고 타산이 도저히 안 맞는다. 어디 버틸 수가 있나. 내가 잠을 못자고 고민고민 하다가 겔국 하나를 접었다."

형님은 대신 베트남에 공장을 냈다. 물류 비용을 고려해도 그게 나았고 그래야 유지가 가능했다.

문을 닫은 한국 공장의 직원들은 모두 해고되었다.

제조업이 나라 밖으로 나가면 국내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pdf)일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 형님만의 일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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