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지탈주야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나쁜 것은 대개 지독하다. 좋은 것은 대개 여리다.

잡초는 억세서 땅 위에 솟은 모든 것을 잘라내도 또다시 줄기를 피워 올린다. 예쁘거나 이로운 식물은 며칠만 가물어도 하릴없이 죽는다.

나쁜 인간들은 지독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것도 아주 잘 사는 형태로 살아남는다. 좋은 인간들은 반성하고 자책하며 부유하다 사라진다. 나쁘며 여린 인간은 찾기 어렵고, 좋으며 지독한 인간은 없진 않지만 드물다.

나쁘거나 좋은 것은 질료의 성질이다. 지독하거나 여리다는 것은 그 성질이 발현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분명 2x2의 교차표가 그려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두 칸만 차고 나머지 두 칸은 빈다.

어쩌면 질료의 성질과 발현 방식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실은 한 가지의 두 표현인지도 모른다.




공자가 말한다.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한다." (오자지탈주야, 惡紫之奪朱也)

붉은색은 올바른 것이고 자주색은 삿된 것이거나 가짜다. 악이 선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미워한다. 한 주석자는 이렇게 썼다. "세상의 이치를 보면, 바른 것이 이기는 일은 항상 적고 바르지 않은 것이 이기는 일은 항상 많다." (天下之理 正而勝者常少 不正而勝者常多)

공자보다 400년 뒤에 살았던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로 의심한다. 이런 것이 이른바 천도(天道)라면 그것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餘甚惑焉,倘所謂天道,是邪非邪)

사실 세상에는 천도 같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각자 마음 속에 선하거나 악한 심도(心道)만 있을 뿐.

오늘도 세상은 나쁜 것들이 지독하게 살아남는 소리로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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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 2019/01/22 15:19 # 삭제 답글

    전통적인 면대면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요즘 시대의 인간상을 살펴보자면 나쁜것도 여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명성 속에 숨은 대중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역설적으로 이 세계관 속의 운동가(인권, 노동 혹은 어떤)들을 살펴보자면,
    지독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쁘지만 여린, 좋지만 지독한-어쩌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조차 구분히 어려운
    2x2의 빈칸을 채워나가는 마음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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