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과연 부시를 앞질렀나

9월30일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미국 대통령 후보자 부시와 케리 간의 대선 토론이 케리의 승리로 판단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론 직후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서 케리가 더 잘했다고 응답했으며, 부시에 대한 지지도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가 너무 반가워서일까요? 아니면 너무 충격적이어서일까요? 여론조사를 인용 보도하는 한국 언론들이 결과를 잘못 해석하는 삑사리를 또 내고 있습니다.

한 신문은 "케리 47% - 부시 45%… 1차 TV토론 후 지지율 뒤집혀" 라고 제목을 뽑고, "미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뉴스위크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선전한 덕분이다. 등록유권자 101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무소속 랠프 네이더 후보를 포함한 3자 대결에서 케리 후보는 47%의 지지를 받아 부시 대통령을 2%포인트 앞섰다(오차 범위는 ±4%포인트)." 라고 썼습니다. 오차 범위가 ±4%인데 2% 앞선다고 케리가 부시를 앞지르다니요?

다른 신문도 "토론회 이후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케리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부시 대통령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뉴스위크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라고 하여, 비록 오차 범위를 단서로 붙이긴 했지만, <뉴스위크>가 케리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말한 것처럼 인용했습니다. 다른 신문들도 비슷합니다.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또다른 신문은 아예 오차 범위도 밝히지 않은 채, 케리가 2~3%로 앞섰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뉴스위크> 인터넷판의 해당 기사 어디를 뒤져봐도 "케리가 부시를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차 한계가 ±4%인 여론조사에서 후보자 간 2% 차이를 놓고 승리했다거나 앞질렀다고 과감하고 단순하게 말할 <뉴스위크>가 아닙니다. 저건 <뉴스위크>의 기사를 한국 신문의 미국 특파원들이 다시 인용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오차 한계 (margin of error), 혹은 오차 범위에서 발생합니다. 오차 한계가 ±4%라면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차이는 8% 이상 벌어져야 실질적으로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차 한계 안에서의 차이는 설문 조사자들을 다르게 선택했다거나 하면 없어질 수도 있는 차이인 것이지요. 따라서 통계적으로 오차 한계 안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봅니다.1

결국 부시와 케리 간의 2% 차이는 케리가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부시가 10% 가까운 차이로 우세했던 것이 다시 백중세로 돌아섰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오차 한계가 ±4%인 조사에서 케리가 2% 앞선 것은 부시가 2% 앞선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지요.

<뉴스위크>도 이 점을 고려하여, 자기네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놓고 케리가 앞서거나 승리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부시의 우세 증발" (Bush's lead has evaporated) 이라고 제목을 뽑고, "이번 여론조사는 대선 레이스에서 부시 대통령의 우세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the president's lead in the race for the White House has vanished, according to the latest NEWSWEEK poll.) 거나 "등록 대선 레이스가 통계적으로 무승부 국면에 들어갔다" (NEWSWEEK found the race now statistically tied among all registered voters) 라고 조심스럽게 표현했습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선거 보도에서 오차 한계를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오차범위 내의 차이는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후보간 지지도 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 그 순위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순위가 제시되면 그 지지율 차이에 관계없이 순위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대학생 48명, 직장인 59명, 가정주부 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면접에서 알 수 있다. 면접결과 대부분의 독자들은 후보간 지지도 차가 오차한계 내에 있더라도 신문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신문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1>에서 보듯이 여론조사 보도에서 1위 후보자가 누구인지만 본다가 25%, 순위만 본다 41%로서 실제 후보간 지지율 차이에 관계없이 순위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66%에 달하고 있다. (조성겸, <관훈저널> 2002년 여름호)


결국 한국 특파원들은 이 여론조사의 오차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숫자의 차이만 주목하여, 케리가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과감하게 단정한 것입니다. 그건 오차 한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그랬다고 치고, <뉴스위크>가 하지도 않은 말을 "케리가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고 인용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인지 궁금합니다.



1. 오차 한계의 의미와 조심할 점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고하세요.

덧글

  • 이올로 2004/10/04 11:29 # 삭제 답글

    흠...중요한것은 오차한계였군요. 왜 그부분에는 눈이 잘 가지 않았는지..^^;
    아무튼 명쾌한 해설 감사드립니다~ (^^)(__)
  • numa 2004/10/05 12:55 # 삭제 답글

    많은 기자들이 통계를 잘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관심끌만한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기 때문인지...
  • ZAKURER™ 2004/10/05 14:23 # 답글

    기자들이 부시를 싫어하나보죠. 어차피 한국에서 미국 선거 투표할 일도 없으니...
    이오공감 통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
  • 요아킴 2004/10/05 15:26 # 답글

    얼마나 반가웠으면(....)
  • 기불이 2004/10/05 15:34 # 답글

    아니면 단순히 바보라서...
  • 경이 2004/10/05 17:29 # 답글

    우리나라 기자들의 과감한 속단능력은 세계최강이죠..
    더불어 짜집기와 베끼기 분야에선 감히 도전조차 허용치 않죠.
  • astraea 2004/10/05 19:20 # 답글

    휴.. 케리. 너무 매력이 없어요ㅠ_ㅠ;;
    이번에 고어 나왔으면 완전 이길텐데..
    안타깝습니다..
  • deulpul 2004/10/08 06:21 # 답글

    이올로: 저희야 전문가들이 아니니까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테구요, 역시 나름의 전문가들인 저널리스트들이 잘 짚어줘야 할텐데 말여요.

    numa: 저도 궁금합니다...

    ZAKURER™: 가만히 생각하면, 보수 언론들은 부시가 적인지 아군인지 무척 헷갈려하고 있을 것 같아요, 헤헷-

    요아킴: 그렇기를...

    기불이: 그렇지 않기를...

    경이: 네... 흔히 모신문의 김모모가 대표선수로 꼽히고, 그밖에도 국제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곧고 소명의식 있고 흔들리지 않는 기자들도 많이 있음을 함께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astraea: 음, 고어는 모르겠지만, 케리가 인간적으로 확 땡기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아, 클린턴은 얼마나 멋졌나 (순전히 케리와의 상대 비교 측면에서)... 그 물씬물씬 풍기는 남성미... 그것 때문에 사고도 쳤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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