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바나나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과일 중에서 교환가치가 가장 크게 변한 놈입니다. 예전에 바나나는 정말 귀하고 비쌌습니다. 저같은 보통 어린이들은 감기나 걸려야 한 번, 그것도 한 조각을 얻어먹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지천입니다. 특히 제가 사는 곳에서는 과일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싼 게 이 놈이 아닐까 싶습니다. 철을 타는 다른 과일들과는 달리 일년 내내 그렇습니다. 세계 시장의 글로벌화, 그로 인한 농산물 시장 개방과 수출입 자유화의 몇 안되는 특혜 중 하나인가요.

노랗게 잘 익었습니다. 바나나는 이 때가 제일 맛이 있습니다. 파란색이 아직 덜 가신 바나나는 맛이 좀 떫기도 하고, 아무래도 특유의 달콤함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파란 기가 빠지면서 노란색으로 막 물들었을 때 제 맛이 납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바나나는 아래와 같이 됩니다.

싱싱할 때를 지나 꽤 물러진 상태입니다. 껍질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이 보이죠?

바나나 껍질의 상처는 노랗게 다 익고 나서 생긴 흔적이 아닙니다. 파랄 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부딪치고 긁힌 흔적이 시간을 지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거지요. 어릴 때부터의 생채기를 소문 안내고 가만히 품고 있다가, 늙으면서 비로소 아프다는 표현을 합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이 항상 걱정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크게작게 많은 상처를 드렸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강하셔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연로해지시면서, 그동안의 상처가 조금씩 겉으로 드러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끼쳐드린 이런저런 상처가 그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양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분의 몸과 마음에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래된 바나나처럼.

덧글

  • 비안졸다크 2004/10/07 21:38 # 답글

    확실히 제가 어릴때만 해도 바나나는 개당 1000원을 가볍게 넘는 고급 과일이었죠. 그때 철없이 사달라고 졸르던 기억이 물씬 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 처럼 저희 어머니도 젊은 세월 고생을 지금에 겪고 계신 것을 보면서 참 가슴 아프고 후회되더군요. 지금이라도 잘 해드리려고 노력중입니다. 오래된 바나나는 분명 어딘가 곯아있고 선도도 떨어지지만 오히려 당도만은 더 좋듯이, 분명 언젠가는 좋은날이 올테니까요
  • 황소걸음 2004/10/07 23:07 # 삭제 답글

    잘 계시지요?
    글이 짠해서 그냥 못가고 끄적...
    우리 모친은 골다공증이 진행된 지 몇년...
    허리가 둥그렇게 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려니...

    요즘 그나마 밭농사에 재미를 붙이셔서
    도시 생활의 위험한 상황은 없으려니 위안을 하는데
    골다공증으로 굽은 허리가
    밭에서 호미질 하기에는 어울리는구나 싶은 생각에
    더욱 가슴이 미어지더라는...
  • deulpul 2004/10/08 05:45 # 답글

    비안졸다크: 졸다크님은 별로 속도 썩여드리지 않은 것 같구만요, 뭐... 하하. 지금도 여전히 잘 하시리라 믿어요.

    황소걸음: 그러고 보니 어머니 뵌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정말. 밭일도 일로 하면 만만치 않은데 쉬엄쉬엄 하시면 재미로는 괜찮으시겠습니다... 아 참, 주소는 책 보내 주시려고 물어보신 거죠? 헤헷~
  • 강직 2004/10/10 22:32 # 답글

    처음에는 그냥 바나나 놔뒀더니 검게 되었더라... 하는 포스팅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나는군요. 혈압도 높으신데 좀 나와서 사시면 좋으련만... 이제는 잘 해드려야 하는데 안부전화도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해드린답니다--;
  • deulpul 2004/10/12 14:48 # 답글

    아, 그래도 꼬박꼬박 연락하시는 게 어디신가요. 혈압이 높으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 덜 받으실 한적한 곳에 계신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CN 2005/08/18 20:54 # 삭제 답글

    식용 바나나는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귀한게 당연한 것이었죠.

    과학자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진게 "잠시"에 불과하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 이래 멸종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물중 하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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