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스러운 토론 행태들

무술이나 격기를 제대로 잘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신체를 단련하고 기본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상대와의 대결 자체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함께 몸 공부를 하는 도반들끼리 자유대련이나 결련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 많은 경우가 충분한 기본기를 갖추지 않은 상대와 맞붙었을 때입니다. 이들은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남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자신도 부상을 입게 됩니다.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마음가짐의 준비가 필요하고 연습도 필요합니다. 토론에서 이기기 위한 연습과 준비가 아니라, 토론 자체를 성립시키기 위한 기본기 말입니다.

혼자 하는 넋두리에는 훈련이며 연습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론은 상대를 놓고 상대와 벌이는 게임입니다. 상대란 흔히 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생긴 것도 다르고 삶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토론의 본질은 이렇게 자신과 여러 모로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여, 그 사람의 생각을 듣고 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립 구도가 첨가된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고 자기 생각을 설득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보면 누구나 한마디 하고 싶어집니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일수록, 또 자기 의견과 다른 정도가 크면 클수록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 충동은 커지게 마련이겠지요. 사람이 입이 있고, 컴퓨터라면 자판이 있으니 이런 충동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충동이 토론의 형식과 자세를 갖추지 않고 그냥 내뱉어질 때입니다. 자기 귀는 닫고 입만 여는 경우가 그런 사례입니다. 이럴 때 토론은 자기 의견(실제로는 흔히 감정)의 배설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그냥 흘러가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상대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는 외면하고, 지엽말단적인 부분의 잘못을 보고 쾌재를 부르며 달려듭니다.

2) 너는 얼마나 잘하냐, 얼마나 완벽하냐가 나옵니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일관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일관한 정도가 바뀌게 마련입니다. 이걸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지요. 그냥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겠습니다.

3) 주제와 상관없는 상대의 신상을 거론합니다. 가장 저열하고 유치한 방식입니다. 본인은 상대방의 약점을 찔렀다고 좋아할지 모르나, 보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얼마나 유치한 지적(知的) 코흘리개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4) 상대방의 생각을 자기 머리 속에서 자기 칼로 재단합니다. 상대의 생각(글)을 자기 입으로 되풀이 말하면서 왜곡과 과장을 가미하는 순서가 되겠습니다. "가만히 보니 보수주의자이신 것 같은데" 라든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 "당신의 글을 보니 ---- 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라는 형식의 언어가 동원됩니다.

5) 위의 것과 비슷한 종류로, "마치 ---을 보는 것 같군요" 라는 형식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복잡한 생각을 일차원으로 단순화해 찌그러뜨리고 그로써 상대의 논지를 왜곡하거나 깎아내리려는 발상입니다. 잘 살펴보면 이런 악의적인 직유나 은유는 원래의 것과 천양지차가 나기 마련입니다.

6) 자기도 못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상대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써먹습니다. 가증스러운 방식입니다.

7) 싫으면 떠나라고 합니다. 떠날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다른 생각의 존재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유치한 생각의 표현입니다. "자제하세요" 처럼 입을 틀어막는 유형도 여기에 속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삽질들이 치밀히 계산된 게 아니라 그저 즉흥적이고 말초적으로 나온다는 점이지요. 남을 그저 누르고 이기려는 충동만 앞서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이슈를 놓고 인터넷에서 덧글로 논쟁이 벌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함량 미달들도 역시 수두룩했습니다. 스스로 할 말은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고는 싶은데, 토론과 논쟁에 필요한 마음자세나 기본기를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또 약간 절망합니다.

덧글

  • 미나토모 2004/10/13 18:35 # 답글

    스크랩 해갑니다 :) 저는 항상 이런 토론/논쟁예절을 참고 또 참고하는편입니다. 이렇기때문에 아직은 깊이 파고들 시간적여유가 없지만 논리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편이고요.
  • 2004/10/14 07: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4/10/14 18:30 # 답글

    미나토모: 저도 저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쓰다보니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화끈화끈하네요...
  • happyalo 2004/11/24 20:41 # 답글

    이런 상황을 아주 웃기게 묘사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아마 짜장면, 짬뽕 뭐 이런 것과 A, B, C, D 등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등장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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