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시사뉴스적인 악몽

어젯밤 꿈:

쨍한 한낮에 광화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길가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도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우연히 동료를 만났는데, 그는 "미국이 인천 공항에 폭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인천 공항 근처의 군사용 공항 시설에 주기해 있던 헬기들이 북한군 공비들에 장악되었으며, 유사시 미군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판단하여 미리 폭격하고 있다" 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황당한 소식을 듣고, 현장을 가서 구경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침 미군 수송용 통근버스가 하나 와서 섰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그 차에 올라탔습니다.

좌석 배열이 일반 버스가 아니라 지하철처럼 되어 있는 차 안에는 백인 미군 두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빈 자리가 많았는데도 우연히 그들과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전쟁인지에 대해 신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눔이 제 옆구리를 살짝 쳤는데,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저는 이건 아무렇지도 않다, 신경쓰지 마라, 그보다 중요한 건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다,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이 두 사람의 신경을 거슬렀습니다. 이로부터 버스가 공항에 다다를 때까지 내내 전쟁을 놓고 이들과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전투 영어로 씨부렁거리며 한참 동안을 싸웠는데, 그게 가능했다는 게 스스로 믿기지 않습니다.)

막판에는 군번줄까지 꺼내 보여주며, "우리 아버지는 젊었을 때 베트남 전쟁에도 갔었단 말야. 너희가 전쟁 맛을 알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한 눔이 양말을 벗더니 자기 발목의 상처를 보여주며, 뭐라고 뭐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웬 헛소리인가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저 보고 넌 뭐하는 놈이냐고 합니다. 저는 "나는 자유인이야, 임마" 하고, 좀 황당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눔들이 "너 그럼 룸펜이군..." 하고 조롱하면서 버스를 내립니다.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미군들이 우르르 올라탔습니다. 버스는 공항에 거의 다 왔습니다.

버스가 공항 영내로 들어가자,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공항내 도로 옆에는 조종석이 시커멓게 타서 잔해만 남은 헬기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습니다.

내가 탄 버스가 갑자기 헬기로 바뀌었습니다. 동승했던 미군들은 모두 사라지고, 헬기 조종사는 말끔하게 생긴 한국인이었습니다(이 사람은 누군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일차 폭격이 끝난 공항 상공을 낮게 비행하며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 헬기 바로 밑에서는 미군 장갑차가 가로수 사이를 누비며, 나무 덤불에 숨었다가 도망치는 검은 옷을 입은 북한군 공비들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콩알만하게 보이는 검은 옷이 나무 사이로 달려가다 두두둑!! 총소리가 난 뒤 땅에 털썩 쓰러지는 게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조종사가 말을 건네왔습니다. 그는 공항 영내에 자기가 존경하는 한국인 선배의 관사가 있으니 만나러 가자고 합니다. 헬기가 착륙하고 저희는 근처의 조그만 한옥으로 다가갔습니다. 그가 대문을 열고 들어갈 때, "지금 공비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니 문을 잠가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괜찮다고 합니다.

조금 구불구불한 일본식 복도를 거쳐 한 방에 들어갔더니 중년의 한국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독립운동을 하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로 요인을 찾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매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첫인상으로 보아, 그 중년은 CIA의 한국인 직원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가 끝나자, 중년이 저를 보고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두 분이 먼저 이야기를 나누시고 끝나면 제 소개를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한 듯, 서로 팔을 툭툭 치며 잠깐 동안 정답게 이야기했습니다. 갑자기 한지로 바른 미닫이 방문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중년이 "누구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나타난 것은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 숯검댕을 칠한 공비였습니다. 손에는 꼭 수류탄처럼 생긴 권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살려주시라요."

그는 저 살려주시라요를 우리를 보고 말한 게 아니라, 중년을 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획 돌아서서 조종사와 저에게 손에 든 것을 발사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는데,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가 손에 든 것을 저에게 돌리는 순간 저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푹 꺾었는데, 그저 한없이 무기력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발사한 것은 총이 아니라, 물총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투용 화학물질을 넣은 스프레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저앉으면서, 머리와 목덜미에 액체 화학물질이 쏟아지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년이 소리쳤습니다. "그만해! 그거 많이 뿌리면 죽는단 말야!!"

짧은 순간에, 이걸 들이마시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저앉다 보니 옆에 얇은 이불이 있었습니다. 얼른 끌어다가 덮어썼습니다. 심장은 벌렁벌렁 뛰는데, 호흡을 최대한 얕고 짧게 하느라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화학물질 때문인지, 아니면 호흡을 억누르고 있는 탓인지, 숨쉬기가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아아,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얼마나 의식을 지탱할 수 있을까... 하며 절망하다가 잠이 깼습니다.

잠을 깨고 보니, 심장은 꿈에서와 같이 조급하게 뛰고 있어서 한동안 진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장마비 걸리는 꿈을 꾸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하여 한참 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깨고 나서 꿈을 기억하는 경우는 드문 편인데, 어젯밤 꾼 이 꿈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줄거리와 장면 하나하나, 사람들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자가진단:

1. 정신적 억압 상황에 살고 있는 처지의 반영 (억눌리면 악몽으로 나타난다)
2.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모두 어디서 본 듯한 장면)
3. 훤한 창밖의 영향 (낮밤 뒤집은 생활을 고쳐야 할 시기)
4. 어제 본 미군 병사의 이라크 포로 살해 기사와 화면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던 듯)
5. 영어의 압박 (...)
6. 노무현 LA 발언의 압박 (이라기보다 그에 대한 바보들 생각의 압박)


결론:

개꿈.

(보통 꿈 속에서 죽으면 길몽으로 친다. 그런데 이건 죽은 게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깬 거고, 설령 죽었다 해도 무슨 똥통 같은 데 빠져 죽은 게 아니라 어이없이 개죽음 한 것이니 개꿈으로 결론.)


뒷생각:

공비(?)에게 스프레이(?)를 맞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목놓아 외쳤어야 했던 거다... 그래서 여기저기 초등학교에 내 동상도 서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했어야 하는 거다... 하긴 내가 안 그래도 자기들이 다 알아서 그랬다고 써 주겠지만.

덧글

  • 마르스 2004/11/18 11:34 # 답글

    대단히 스펙타클한 꿈인데요.
  • deulpul 2004/11/18 17:11 # 답글

    영화로 만들어 볼까요? 표절이 되려나...
  • 강직 2004/11/20 01:49 # 답글

    엄청난 스케일과 일관성 있는 꿈의 전개가 정말 대단합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 저도 꿈이 과격해지더라구요^^; 아, 그리고 지금까지 "덜펄"인줄 알고 언제 사전에서 찾아보려 했는데 "들풀" 이셨군요, 히히....
  • deulpul 2004/11/21 16:42 # 답글

    네... 엄청난 스케일과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는... 개꿈이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저도 저렇게 줄거리가 잘 연결되는 꿈도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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