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저격 게임과 미국의 이중성 미국美 나라國 (USA)


1963년에 저격으로 사망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피격 상황을 소재로 한 게임이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게임 회사 트래픽 게임즈 (Traffic Games) 가 제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JFK Reloaded 는 플레이어가 저격범으로 알려진 리 하비 오스왈드 (Lee Harvey Oswald) 가 되어 케네디에게 총을 발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윗 그림). 저격이 벌어진 텍사스 댈라스의 현장이 정교하게 3D 그래픽으로 재현되었다고 합니다. 이 게임은 케네디 피격 41주년을 맞아 11월22일 발표되었습니다.

게임은 오스왈드가 케네디에게 총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진 한 건물의 6층에서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는 오스왈드가 그랬던 것처럼, 창문 옆에서 조준경이 장착된 라이플을 들고, 리무진을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케네디를 향해 총을 발사합니다. 저격이 끝나면 화면은 탄환의 궤적을 보여주며 플레이어가 쏜 총이 저격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해 보여줍니다. 주변의 다른 지점에서도 입체적으로 저격 상황을 투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게임의 목표는 “성공한 저격” 인 오스왈드의 총격을 가장 비슷하게 재현하는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에서 9.99달러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이 게임은 오스왈드의 총격을 가장 정확히 재현한 플레이어에게 10만달러(약 1억원)를 시상하겠다는 경품도 내걸고 있습니다.

게임이 발표되자마자 미국에서 이 게임을 비난하는 볼멘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명문가인 케네디가(家)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컴퓨터나 대중 매체 관련 칼럼니스트들이 입을 모아 이 게임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비난의 내용은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게임이 미국의 역사를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켰다 (trivialize American history) 는 점이고, 둘째는 게임의 폭력성이 플레이어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며, 셋째는 역사적 비극을 돈놀이판으로 변질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게임 제작사인 트래픽 게임즈는, 이 게임이 케네디를 모욕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놀라운 3D 입체 기술로 생생하게 재현한 사건 상황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역사 교육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제2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등, 케네디의 피격을 둘러싸고 존재하고 있는 각종 의혹과 음모설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제작사의 주장이야 어찌됐든, 저격이라는 범죄 행위를 플레이어에게 다시 재현하도록 한 발상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존 인물이 되어 실존 인물이었던 사람의 머리 속에 직접 총알을 박아 넣는 것을 게임의 소재로 택한 것은 아무리 봐도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팔릴지 알 수 없지만,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범죄자와 최대한 똑같은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 게임의 구성은 “컴퓨터 게임이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일부의 탄식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를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킨다며 화내는 미국인들의 분노는, 이해는 갈지언정 설득력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끔찍한 비극인 케네디의 피격을 게임으로 만들어 즐기고 노는 것에 분노하는 미국인들이지만, 다른 민족을 대거 살상하는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고 신나게 즐기는 것도 역시 이들입니다.

세상에 미국의 역사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3세계는 제3세계대로, 저개발국은 저개발국대로, 소수 민족은 소수 민족대로 모두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가 미국인들에게 중요하듯, 이들의 역사는 당사자들에게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면, 이들이 다른 민족의 역사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걸프전을 소재로 한 베스트 셀러 PC 게임 Desert Storm 은 플레이어를 미국이나 영국 특공대로 분장시켜, 바그다드 시내를 누비며 폭파, 암살과 같은 파괴와 살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소말리아를 총칼로 휩쓸며 “질서를 회복하는” 게임 Delta Force: Black Hawk Down 도 마찬가지이고, 베트남 정글을 누비며 “수류탄을 되던지는 영악한 적” 베트콩들을 분쇄하는 Conflict: Vietnam 도 그렇습니다. 부지기수입니다.

저 게임 속에서 베트남 민중들의 백여 년에 걸친 피압박 역사, 누대에 걸쳐 겪어야했던 고난,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민족해방전쟁의 의미 같은 것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네… 그냥 게임이니까요. 맨발벗고 다니는 눈 찢어진 베트콩들을 열심히 죽이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게 목적인 게임이니까요. 이건 왜 그냥 게임이면서, JFK는 그렇게 보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 매체의 폭력물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하며, 이 게임도 똑같은 부작용을 갖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더구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흉내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런 걱정보다, 작년 이라크전쟁 때 바그다드에 들이닥친 자기 나라 병사들이, 수천 년 동안 어렵사리 전해 내려온 인류 전체의 재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는 박물관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파괴한 것을 더 걱정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케네디처럼 수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은 둘째치고, 지금 두 눈 뜨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다른 나라 국가 지도자도 온갖 방법으로 조롱하다 죽여버리는 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나라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만든 게임에는 분노합니다. 케네디가 젊고 의욕있는 멋진 대통령으로 많은 미국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율배반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저 게임 사이트에 가면 데모 버전을 다운받을 수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게임 맞아? 할 정도로 지루하고 단순한데다, 사람 잘 죽이도록 정확히 총을 서너 발 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이걸 쓰면서 시험삼아 게임을 들여다봤다가, 컴퓨터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모두 날리고 처음부터 새로 써야 했다는 사실도 추가해둡니다...

덧글

  • 마르스 2004/12/01 13:22 # 답글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오스왈드의 위치에선 절대로 케네디를 그렇게 맞출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요.
  • isanghee 2004/12/01 13:40 # 삭제 답글

    수사기록이 얼만큼 더 있어야 공개가 되지요?
    미국에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꽤 있더라구요.
  • 누드모델 2004/12/01 14:15 # 답글

    좋은 분석입니다. 미국 언론의 이중성은 정말 파렴치하군요... 그런데 이런 게임을 과연 10달러나 주고 플레이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래도 GTA와 같은 폭력성 짙은 게임이나 각종 에로게임의 정식발매조차 허락하지 않는 한국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군요. 매춘산업등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의 이중성이 아닌가 합니다.
  • nyxity 2004/12/01 16:29 # 삭제 답글

    JFK암살의 음모론에 대해서는

    http://www.rathinker.co.kr/paranormal/mystery/jfk/magic_bullet.htm

    이곳을 참고해보심이.
  • 카타 2004/12/01 18:33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하기에 유감이긴합니다만.
    오스왈트가 살인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ㅅ=;
    2039년이 되야 암살사건에 대한 자료가 공개될테니..
    그때까진 누가 진정한 범인인지는 모를일이죠..

    [미국에서 친부시성향이던 애니메이션 제작은 어떻게 됬나요.?
    거기서 다른나라 수반을 풍자한건 괜찮은건가.. ]
  • 비안졸다크 2004/12/01 19:06 # 답글

    ...뭐, 이현령비현령이라고, 자신들이 정의라 우기는 사람은 언젠가는 철퇴를 맞겠죠.
  • deulpul 2004/12/03 02:56 # 답글

    방문자 제현: 응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짤막한 응답을 드리는 게 본문 포스팅보다 더 어렵고 괴롭습니다, 쿨쩍.

    마르스: 바로 그 점 때문에, 저 게임 제작자 관계자들이 말하길, 비록 시뮬레이션이지만 치밀하게 재구성했으니 오스왈드의 총격과 유사한 결과가 나오면 의혹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네요. 한 가지 참고 정도는 되겠지요.

    isanghee: 수사 기록은 대부분 공개된 모양입니다. 다만, 수사가 미진했으며 오스왈드 뒤의 배후 세력에 대해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누드모델: 10달러 내고 잘 하면 10만달러 벌 수 있잖습니까!! "스타" 로 다져진 한국 사람들이면 훨씬 유리할지도... 하하~. (권하는 게 아님... 그 반대) 말씀하신 대로,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인 게임산업에 대해 정부와 사회의 시각도 좀 바뀌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형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 deulpul 2004/12/03 02:56 # 답글

    nyxity: 알려주신 사이트 잘 보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보니 올리버 스톤의 JFK 가 신중하지 못한 의혹과 음모론에 근거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카타: 오스왈드가 총을 쐈다잖아요!! 하하... 자료가 전면 공개되려면 76년이 지나야 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요 쪽은 관련 지식이 부족... 어쨌든 진실은 수사 기록에, 아니면 저 너머에. (아참, 그 애니도 다시 들여다봐야겠군요. 어찌 되었는지...)

    비안졸다크: 당분간은 물론 상당한 기간 동안 안 맞을 것 같아서 절망중...
  • happyalo 2004/12/11 11:19 # 답글

    얼마 전 피오넬님의 블로그에서 북한군과 싸우는 게임에 대한 포스팅을 읽었습니다. 배경도 한국적이고(옛궁궐스러운 것이) 사람도 뭐 북한, 남한 구별되는 거 아니니, 참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현실에서 전쟁이 있는 것만으로도 화나는데 폭력적인, 게다가 이상한 가치관까지 담은 그런 게임들은 제발 안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deulpul 2004/12/14 13:48 # 답글

    외계인만 때려잡다 보니 재미가 좀 덜한가 봐요. 아무래도 총칼로 쏴 죽이며 희열을 느끼기에는 사람이어야, 그것도 실제로 있음직한 특정한 민족이나 나라, 개인이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역시 문제는 다양한 정서적 부작용이겠지요. 폭력성과 관련한 영향은 논란이 있지만, 이 부분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 같습니다.
  • L 2007/03/16 22:41 # 삭제 답글

    마술탄환은 옛날부터 신기했는데 그걸 실현시켜서 1억원을 타는게 가능할까요?
    현실에서는 될지도 몰라도 게임의 프로그래밍에따라 안될듯
    대통령을 가지고논다는 생각밖에안듭니다.
    돈벌려는 수작으로밖에 안보입니다.
    10달러주고 저게임사는사람이 생각보다 적어도 그프로그램에서 만드는 이윤은 엄청날걸요.
  • deulpul 2007/03/16 23:22 # 답글

    프로모션이란 공익 캠페인이 아닌 한 다 돈 벌려는 수작이죠. http://en.wikipedia.org/wiki/JFK_Reloaded 을 참고하세요.
  • daw 2008/08/15 14:03 # 삭제 답글

    이거 950점 쐈는데요...................
  • deulpul 2008/08/15 14:46 #

    3년 8개월만에 덧글이... 950점이면 높은 건가요? 하도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10만달러 시상 행사는 옛날에 끝났을 테고, 저라도 시상해 드리고 싶지만, 계임 관계자가 아니라서 휘리릭.
  • ja0647 2008/08/15 16:50 # 삭제 답글

    ㅋㅋㅋ전해보지도않았음
  • deulpul 2008/08/15 16:55 #

    잘 하셨습니다...
  • -_- 2009/03/22 00:05 # 삭제 답글

    오스왈트 개인소행으로는 절대 볼수없다는것이 대다수의 의견같은데..


    배후세력에 누가 있었건 미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지도자중 한명이
    저렇게 생을 마감했다는것이 미국인도 아닌데 가슴아픕니다
  • deulpul 2009/03/22 14:56 #

    말씀대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스왈드 혼자 했다고 믿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위키에 따르면 200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케네디 암살에 사전 공모가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불행한 일이라서 아쉽기도 하고, 저는 이 사건을 볼 때마다 (정치적) 이해 관계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기도 합니다.
  • 삐져 2015/08/09 11:18 # 삭제 답글

    젤 마지막에 쏜 총알도 거리는 80m 입니다...저격총으로 그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영화는 영화로 받아들이고 (만든넘도 모두 사실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죠) 다큐중에 ngc서 만든 사라진 총알을 보면 의혹은 하나도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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