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누구를 위해서 올리나

작년 12월30일을 기해서 담뱃값이 5백원씩 올랐습니다. 꽤 높은 인상률입니다. 재작년(2003년) 여름부터 3000원, 5000원 등 대폭 인상안 타령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참 오래도 끌어오다 올렸습니다. 나름대로 고심했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니만치 그 놀라운 인상률에 비해 충격이 훨씬 덜한 것 같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염려해서 담뱃값을 올려 금연으로 이끌어주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그러나, 과연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이 줄어드는 것일까요?

한국금연운동협의회에 따르면, 담뱃값을 이번처럼 500원 정도 인상했을 때 담배를 끊으리라고 기대되는 흡연자는 전체 흡연자의 약 10% 정도라고 합니다. 이 흡연자들을 위해 나머지 90%의 흡연자들이 25% 정도에 이르는 엄청난 인상을 감수해야 합니다. 정책 치고는 매우 불공평한 게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과거의 예를 보면, 담뱃값이 인상되었으나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서민 애연가들은 어쩔 수 없이 품질이 낮은 값싼 담배를 선택하도록 내몰림으로써, 결국 건강에 더욱 해로운 형태로 흡연하도록 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담뱃값을 올렸을 때 실제로 금연 예상자들이 기대만큼 발생하는가도 의문입니다. 담배는 습관성 기호품입니다. 인상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참에 딱 끊어야지!" 하고 결심했더라도,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비싼 값을 내고 다시 피우게 됩니다. 이게 습관성 기호품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담뱃값을 올릴 때마다 정부나 담배회사는 국민 건강 운운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연율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언제나 애연가들의 호주머니만 털어가는 꼴이 되어 온 것이죠.

실제로 1990년 이후 4차례의 담뱃값 인상 때마다, 초기에는 흡연율이 떨어졌다가 3개월 뒤에는 원상복귀되는 현상이 되풀이됐습니다. 2002년에 담뱃값을 올렸지만, 2003년 연간 담배 판매량은 오히려 5.4% 늘었습니다. 판매량은 그 정도 늘었지만, 값을 올려놨기 때문에 판매금액은 그 두 배가 넘는 12.3%가 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담뱃값 인상과 담배 수요를 분석한 한 과학자에 따르면, 담뱃값을 인상한 초기에는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동안 사재기한 담배를 피우기도 하므로 외형상으로는 흡연율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단기 효과는 두어 달만 지나면 없어지고, 곧 값을 올리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담뱃값이 다른 물가에 비해 실질적으로 비싸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나 흡연 억제책 때문에 전체적 흡연율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설령 담뱃값이 부담이 되어 끊는다고 칩니다. 뭘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못해서 안하는 것은, 결과는 같더라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담배를 피울 수 있지만 끊는 것과 돈이 없어서 담배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담뱃값을 올리면 땡이라는 발상은 그 결과로 서민들이 겪게 될 비참한 자괴감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무작정 값을 올려서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담뱃값 인상이 낳는 가장 크고 명쾌한 효과는 금연 증가가 아니라 만드는 쪽(혹은 통제하는 쪽)에서의 수익 증대입니다. 정말 금연을 유도하려면 담뱃값을 올리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중요한 많은 방안이 있습니다. 주요 황금 시간대에 텔레비전 광고 같은 데서 담배 회사의 광고를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값만 올려 금연을 유도하겠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담뱃값 인상은 담배회사의 수익을 떨어뜨리지 않는 조건을 가장 중요한 전제로 하며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위 통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과거 경험으로 보면 담배회사의 수익은 담뱃값을 인상했을 때 금연자가 늘어남으로써 줄어드는 양보다 인상 가격 때문에 늘어나는 양이 컸습니다.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담배회사는 수요가 줄어들까봐 치열한 로비를 펼치며 공세를 가하지만, 결국 가격 인상이 언제나 남는 장사였다는 것이죠.

이번에 인상된 500원의 내역을 보면 이름부터 수상한 건강증진부담금이 대폭 인상되고 각종 세금도 조금씩 늘어서 정부 쪽에서 모두 409원의 인상분을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1원은 담배회사가 가져가겠죠. 정부가 세금과 부담금 명목으로 애연가들로부터 거둬가는 이 생때같은 돈 중에서 애연가를 위해 쓰이는 몫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애연가들의 호주머니를 턴 건강증진부담금은 어떻게 사용되나요. 한 기사에 따르면, 이름부터 모호한 이 부담금이 가장 많이 사용될 부분은 국민건강보험(의료보험)을 보조해주는 용도라고 합니다. 이미 부실화로 악명높은 건강보험의 뒷돈을 대는 데 이 돈을 쓰겠다는 겁니다. 참 넉살도 좋습니다. 부실 운영해서 바닥이 드러나면 또 모호한 명목을 달아 돈 거두어 메꾸면 되니 말입니다.

철저한 규제를 받는 공적자금까지 짬짜미해 나눠먹고 배째라 하는 판입니다. 별별 이름이 붙은 각종 기금이 온갖 부실로 운영되다 결국 쪽박차는 것을 숱하게 보아 온 우리로서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턴 돈으로 또 누구 배를 불리며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담뱃값이 인상되기 전부터 정부 각 부처들은 이 엄청난 돈을 어떻게 나눠먹기할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 다투어 왔습니다. 재경부나 행정자치부, 기타 관련 부서들은 담배로 얻어지는 수입을 보건복지부 혼자 독식하는 데 딴지를 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상분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여러 부처가 적당히 나눠먹기로 했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국 애연가들의 강제적 십시일반으로 누군가가의 배를 불리는 꼴이 되겠습니다. 딴 건 다 둘째치고, 담배에 붙이는 눈덩이같은 각종 세금이며 부담금 중에서 애연가들에게 쓰는 몫이 제대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부담자 수익 원칙 (수익자 부담 원칙의 역) 에도 맞는 게 아니겠습니까?

비싸면 안 살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 당신은 담배 끊어서 좋고 우리는 돈벌어서 좋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라는 기만, "억울하면 출세해!" 식과 다름없는 "담뱃값 올려서 서러우면 끊거나 돈벌어!" 식의 협박은 이제 그만하고,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좀더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덧글

  • 희재 2005/01/04 00:00 # 답글

    동감입니다!!!!!!!!!!+_+) 이렇게 문제점을 콕 찝으시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 알바트로스K 2005/01/04 01:17 # 답글

    내일 낮 이오공감에오를지도 (...)
  • A-typical 2005/01/04 02:21 # 답글

    금연을 장려하겠다는 것은 대외적 명분이지, 실제 이유가 아니겠지요. 정말 금연을 원한다면 못 팔게 하면 될 일이니까요.
  • 누드모델 2005/01/04 10:40 # 답글

    그런데 정말 흡연율은 어떻게 해야 내려갈지 ;;
  • trustno1 2005/01/04 14:02 # 답글

    어제는 회식을 하는데,선배들이 한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흡연자석 비흡연자석을 나눠앉는 거에요. 그런데 6:4로 비흡연자가 많아 놀랐습니다. 최고참 선배가 금연에 성공하신 분인데, 흡연자 선배들에게 "좀 끊어라. 인제 비싸기도 한 것을 뭐하러 그렇게 피워대냐." 그러니까, 한 흡연자 선배가 말하기를 담배 한 개피를 들어보이며 "왜 이러세요. 이제 이게 부의 상징이에요" 이러는 거 있죠? 푸하하하~
    가격 때문에 담배를 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쌀값이 오른다고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지 않겠어요...? -_-
  • deulpul 2005/01/05 04:45 # 답글

    희재: 그냥 짧은 생각인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알바트로스K: 에... 도박 없는 새해를... 하하-.

    A-typical: 담배를 아예 못팔게 하면 폭동이 날지도 모르니... 어쨌든 다른 좀더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은 A-typical님과 같습니다. UNC 올 시즌 선전하기를 바래요-.

    누드모델: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흡연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네요. 아주 옛날 영화나 기록 필름들 보면 정말 담배 무지많이 피워댑니다. 금연에 제일 효과적인 동기는 역시 스스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trustno1: 하하하- 재밌네요. 생생히 묘사해 주셔서 직접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으음... 담배, 위험하다는 소리가 많아서(사실이겠지만) 과감함, 만용의 상징은 진작부터 되어 왔지만, 이제 부의 상징까지...
  • fthero 2005/01/06 14:35 # 삭제 답글

    아마 비흡연자가 이번 일로 인해 많아진다면, 분명 담배값 도로 하락할 겁니다. 이득을 위해서 인상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보이거든요..
  • fthero 2005/01/06 14:36 # 삭제 답글

    아니.. 그들의 근시안적인 시각을 보아, 더 가격을 인상하여 손해분을 메꿀지도 모르는 일이겠군요..
  • 뽀니 2005/01/07 14:45 # 삭제 답글

    한가지 간과하고 계신게... 흡연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라도 주위분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간접흡연에 의한 피해는 말할것도 없고 공기오염도 될것이고... 꽁초에 의해 발생하는 쓰레기도 있고...

    물론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흡연을 하시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한 흡연자를 위해 분명히 막대한 지출을 하고있는건 사실입니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얼마나 지출되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드릴수는 없지만...

    물론 그중에 간접흡연에 의한 피해가 가장 크다고 판단하여 정부에서는 건강보험지원금으로 많은 부분을 사용하기로 했는지도 모르죠.. 물론 건강보험의 부실문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부담자 수익 원칙을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흡연자들에 의해 비흡연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개인별로 공기정화기와 쓰레기 제거기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절대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시는게 우선아닐까요?
  • deulpul 2005/01/11 21:55 # 답글

    fthero: 그런데 세상에 도무지 담뱃값이 내려간 적이 없어서 말여요... 아무래도 후자의 가능성이.

    뽀니: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자신의 필요나 즐거움 때문에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저도 경멸하고 있고, 담배를 별로 피우지 않는 저 자신도 흡연이나 다른 일에서나 항상 조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간접흡연 피해를 고려하여 담뱃값을 인상하여 건강보험 지원금으로 돌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은 너무나 코믹해서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하하-. (명확한 근거가 있어도 잘 움직이지 않는 게 정책). 혹시 지금 간접흡연 때문에 굉장히 고통을 받고 계신다면 따뜻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역시 싸워서 해결해야 하는 몇몇 일들 중 하나라는 개인적 경험을 함께 드립니다.
  • 정진현 2014/09/14 14:55 # 삭제 답글

    정부나 기업이나 경영합리화 할 생각은 안 하고
    자기 것 아니라고 막 퍼주는 짓거리하곤......끌끌
  • deulpul 2014/09/16 02:46 #

    눈먼 돈, 그래서 따먹는 게 임자고 못 먹으면 바보인 돈, 세금. 삽질로 퍼다버리는 것만 챙겨도 상당할 텐데, 예산 심의하는 국회부터 개혁 대상이라서 답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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