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정치적인 번호판 미국美 나라國 (USA)

지난 여름 미국 텍사스를 다녀온 한 친구가 전해준 말에 따르면, 이 남부의 거대한 주에서는 희한한 번호판을 단 자동차가 굴러다닌다고 합니다. 자동차 앞뒤에 붙은 공식 번호판에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에 자유를!" 따위 국수주의적 구호나 상징물이 새겨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작년(2004년) 이맘때 한국에서 번호판 사태가 벌어졌을 때, 많은 분들이 외국의 번호판이 어떻게 디자인되고 운영되는가에 대해 들으셨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번호판은 선택의 폭이 비교적 넓습니다. 주마다 제도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보통 형태의 번호판 말고도 돈을 더 내면 알록달록 예쁘게 디자인된 번호판을 달 수 있습니다. 또 제한된 글자와 숫자 안에서 번호를 마음대로 조합해 달 수도 있습니다. 제 주변 한 미국인 집의 차는 번호판에 숫자 대신 부인 이름인 SUSIE 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돈만 내면 좀 다양한 디자인이나 텍스트를 선택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부가 관리하는 공식 번호판에 저처럼 정치색이 강한 디자인까지 등록되어 있다는 것은 좀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텍사스주의 자동차 관리국 사이트를 뒤져본 결과, 다음과 같은 번호판 디자인이 실제로 등록되어 있고, 운전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사서 달 수 있는 옵션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샘플들).


첫번째 것은 "테러리즘과 싸우라" 라는 텍스트와 함께, 9-11 때 공격 당한 WTC 빌딩과 국방부 건물(펜타곤)이 디자인되어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작은 글씨로 "기억하라" 는 구호도 삽입했습니다.





둘째는 그 유명한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입니다. 함께 실린 이미지는 펄럭이는 미국 국기를 바탕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미국의 상징 독수리의 대가리입니다.





세번째 것은 더 가관입니다. 거짓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써먹은 군사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 작전" 을 아무런 이미지 없이 텍스트만 실었습니다. 자동차의 번호판이 가져야 할 기능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며, 어떠한 직접적인 메세지도 전달하지 않는, "그래서 대체 뭐 어쩌자는 거냐?" 하는 하품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저 단순한 군사용 프로퍼갠다 구호를 공식 번호판에 매달고 다니는 인간들은 대체 어떤 화상들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국민 절반 정도가 반대하고 있는 전쟁의 구호가 새겨진 번호판을 정부 기관이 버젓이 제공하고 시민이 떳떳이 사서 다는 것은 텍사스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 코딱지만한 공간에 우겨 넣은 미국 애국주의,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덧글

  • 비안졸다크 2005/01/20 13:05 # 답글

    미국도 사람 사는데니. 수구보수들이 없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저렇게 노골적일 수도 있군요..
  • 미나토모 2005/01/20 13:22 # 답글

    여튼 여러모로 텍사스는 무서운 동네입니다.
  • 아크몬드 2005/01/20 13:57 # 삭제 답글

    우월주의 냄새가 물씬 -_-;;
  • Xypher 2005/01/20 15:08 # 답글

    마지막 번호판 같은 것은, "뭐 어쩌자는 거냐"고 물으면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라고 답할 느낌이 드네요. 말그대로 뭐 이렇다할 주장은 없는 거니까,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네 하고 넘어가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그 미국인의 와이프는 스시군요. 회라... (수지잖아, 수지.)
  • 늘꿈속 2005/01/20 15:46 # 답글

    올블서 들어옵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이런 걸 허용한다면 혹시
    'OO전우회' 'OO동호회' 'OO조기축구회'같은 걸 서로 달고 다니지 않을까요? 짚차같은 데다가 그런 표상 같은 걸 많이 붙이고 다니잖아요. 로타리나 라이온스 클럽 같은 표시도.
    저는 '미국인들의 표현이 참 개성적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반전구호나 반부시구호를 달고 다니는 차도 물론 있겠지요?
  • happyalo 2005/01/21 01:04 # 답글

    흠...
  • ㄴㅇ 2005/01/21 10:14 # 삭제 답글

    우리로써는 아니꼽지만, 뭐.. 그동네 인간들 다수는 전쟁을 지지하고 있으니까 저런 사람들이 많을수밖에 없지요
    문제는.. 저 사람들 911 이후로 너무 피해의식이 있다는 거에요. 쩝~
  • deulpul 2005/01/26 10:25 # 답글

    비안졸다크: 너무 솔직해서 탈인가보네요.

    미나토모: 무섭고도 우습고... 마치 <무서운 영화> 시리즈 같네요. 아, 그건 무섭지 않던가요, 정말?

    아크몬드: 역시 별로 아름다운 냄새는 아니군요. 미국인이 아니어서 그런가...

    Xypher: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면 좀 재미없게 끝나고 말겠네요. 그렇더라도, "그냥 그런 거" 뒤에 뭔가 있다는 굳은 믿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늘꿈속: 물론이죠. 전쟁을 반대하거나 부시를 비꼬는 메세지를 달고 다니는 차도 많죠. 문제는, 그것들은 (그리고 해병전우회 등등은) 개인이 마음대로 붙이고 다니는 범퍼 스티커고, 저건 정부에서 공식으로 등록해주는 번호판 디자인이라는 점이군요. 번호판 디자인 중에 반전 메세지를 담은 것은 물론 없겠죠?

    happyalo: 콧물 튑니다!!

    은신초: 그 심오한 정서는 더 탐구거리군요...

    ㄴㅇ: 그 지지가 오만, 오만이라기보다 이기심, 이기심이라기보다 무지에서 나온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피해의식은 역시, 상습 구타를 당하는 사람보다 어쩌다 꿀밤 한대 맞은 사람이 더 크게 가질 수도 있겠죠?
  • 지나가던 이 2010/07/11 17:12 # 삭제 답글

    지역번호판 꼭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번호판 너무 밋밋하고 어딘가 많이 허전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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